▲ 허승재. |
우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양한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정극 연기자로 활동 중인 개그맨들이 많다. 이들은 오랜 기간의 희극연기 경험으로 다져진 탄탄한 연기력을 기본으로 차근차근 밑바닥부터 정극 연기자로서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2004년경 높은 인기를 끌었던 ‘우격다짐’의 이정수. 그는 개그맨답지 않은 잘생긴 외모를 바탕으로 대박 터지기 힘들다는 ‘원맨’ 코미디를 들고 나와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이후 그는 개그 활동이 뜸해지며 한동안 대중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그동안 그가 있었던 곳은 바로 대학로. 그는 개그맨 출신 연기자들이 조연급 감초연기만 하는 틀을 깨고 싶어 밑바닥부터 정극 배우의 길을 새로 시작했다. 연극무대에서 수차례 주·조연을 맡으며 드라마나 영화를 통한 연기자 데뷔를 준비했지만 생각만큼 쉽진 않았다고 한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한테 주어지는 섭외는 결국 감초 내지 코믹한 역할이더라고요.”
결국 그는 공중파 방송사의 한 특집극에서 개그맨 지망생을 연기하며 오랜 기간의 꿈을 이루긴 했지만, 현재는 SBS <웃찾사>로 돌아와 다시 개그맨의 삶을 살고 있다. “연기자에 대한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는 그는 “관객들의 웃음이 그리웠다”며 복귀의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위해 이름을 바꾼 이도 있는데 그 주인공은 봉숭아학당의 ‘허필버그’ 허승재다. 2000년대 초중반 많은 사랑을 받은 개그맨 허승재는 현재 허태희로 변신해 드라마에서 조연급 배우로 왕성히 활동 중이다. 그는 개그맨 활동 당시 통통한 모습의 평범남이었지만, 현재는 식스팩을 자랑하며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풍기는 꽃미남으로 변신했다. 그가 말한 변신의 이유는 연기자로서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변신이 없으면 한계에 부딪힐 거란 생각에, 인기도 돈도 과감히 포기했어요”라는 허태희는 “혹독한 다이어트의 도움도 받았다”고 말한다. 또한 “인기 개그맨으로서 자존심도 버리고 각종 오디션에 응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그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파스타>를 통해 조연급 연기자로 좋은 점수를 받은 데 이어 현재는 SBS <커피하우스>에 출연 중이다.
아예 연예계를 떠나 사업가로서 새 출발한 이들도 상당수다.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불리는 이는 <개그콘서트>에서 ‘느끼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승환이다. 그는 현재 연매출 200억 원 대의 삽겹살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로 있는데, 그 역시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2002년 ‘느끼남’으로 주목 받게 된 그는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육아 교육 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차례 위기를 맞으며 개그 무대를 떠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개그무대 복귀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그는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삽겹살 프랜차이즈에 도전했고, 이런 도전정신은 결국 그에게 성공한 CEO의 자리를 허락했다.
▲ 이정수, 이승환, 황승환. |
최근까지도 <개그콘서트>에서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활동했던 개그맨 김시덕. KBS 희극인실에서 ‘아이디어 뱅크’로 불리던 그의 모습을 요즘 방송에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운영하는 요식업체가 순항 중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배 개그맨 박성호와 함께 시작한 닭갈비 사업이 대박이 나면서 순항 중인데, 사업이 잘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방송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물론 그가 개그계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업차 바쁜 와중에도 후배들의 아이디어 회의에 종종 참석해 후배들에게 격려와 질책을 아끼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사장님 나빠요” 등의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블랑카’ 정철규는 현재 ‘몸짱’으로 변신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는 데뷔와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인기 정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이어지는 슬럼프에 상당한 마음고생을 했다고 한다. “새롭게 선보이는 아이디어는 늘 PD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였다”며 “후속 아이템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너무 일찍 스타덤에 오른 게 더 큰 실패와 상처가 됐다”고 말한다. 야심차게 시작한 요식업에서 큰 손해를 봤으며, 사랑하던 연인과도 이별했다. 새로운 연예기획사와 계약해 새로 시작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자는 각오를 다지며 올해 초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10㎏ 이상 감량에 성공하며 남부럽지 않은 ‘몸짱’으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블랑카 캐릭터로 인해 행사시장에선 독보적(?)이라 아직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는 편”이라며 “조만간 연기력을 보강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시 한 번 도약을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후진양성에 힘쓰는 개그맨들도 여럿 있다. ‘허둥 9단’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개그맨 허동환은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허둥홀’을 설립한 뒤 극단을 창단해 후진양성을 시작했는데, 최근 그의 제자 두 명이 KBS 공채 개그맨으로 합격해 상당히 뿌듯해 했다고 한다.
90년대 중반 황승환 이병진 등과 함께 ‘아담패밀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두더지’ 김성규 역시 대학 강단에 서서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 서일대학교와 한림예술고등학교에서 후배들에게 현장의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는 것. 김성규는 “방송을 그만두고 허탈함에 빠졌으나 이를 대학원 공부로 메우려했다”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선배로서 후배들을 리드하게 되고, 교육의 기쁨을 느끼게 됐다”고 후진양성을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더불어 그는 개그맨들이 개그무대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첫째는 시청자들은 늘 새로운 얼굴을 원하기 때문에 갈수록 선배들의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둘째는 PD들과 고참 개그맨들의 나이차가 없다보니 서로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셋째는 자꾸 뒤처지다 보면 개그 무대에서 못 다한 한을 이루고자 자꾸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