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마음이 씁쓸해지기만 하네요. 오늘은 5타석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으며 타율도 3할로 복귀했는데 지난 일주일동안 무섭게 몰아친 방망이가 하루아침에 침묵하는 경험을 해서 그런지 오늘의 안타가 큰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더욱이 클리블랜드 타선이 희비쌍곡선을 달리고 있어 투수들한테 정말 미안해질 때가 많아요. 다 잡은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게 되거나 야수의 실책으로 점수를 내주게 될 때는 인간적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투수가 화를 내거나 실책한 선수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원망과 미움이 있어도 어차피 그것 또한 소속 선수이다 보면 안고 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번 시즌 일기를 시작할 때는 경기 결과에 따라 널뛰는 마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어요. 워낙 경기 수가 많기 때문에 매번 일희일비하다보면 제 자신이 흔들릴 것 같아 가급적이면 감정적인 노출을 자제하자고 생각했지만 일기를 쓰다보면 자꾸 제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들이 더 늘어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제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한 경기 못했다고, 안타가 없었다고 마음 쓰지 말자. 어차피 내일 새로운 해가 뜨면 다시 게임이 열리기 때문에 오늘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자’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열심히 합니다. 처음 미국에서 야구 시작할 때만 해도 게임이 안 풀린 날은 숙소에서 다시 방망이를 잡고 스윙도 해보고 내 폼이나 자세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재차 점검을 하는 시간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폼을 수정하거나 문제점이 있는지를 파악하기보단 제 자신을 다스리는 명상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어떤 기사에서는 제가 원정 경기에 유독 약한 징크스가 있다고 썼더라고요. 하지만 전 한 번도 원정과 홈경기의 차이에 대해 느끼질 못했어요. 원정이든 홈이든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건 마찬가지이고요, 항상 이동하며 생활하는 삶의 연속이기 때문에 원정경기라고 해서 심적인 부담이 크거나 더 힘들거나 어렵진 않습니다. 또 한 가지, 전 단 한 번도 제가 클리블랜드를 이끌어가는 중심 선수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제 성적에 따라 팀 성적이 좌지우지된다고 보지도 않고요. 선수 한 명에 의해 움직이는 팀이라면 존재 자체가 불안하거나 있으나마나한 팀이 아닐까요?
호텔 방으로 들어가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몸을 푹 담근 후에 심신을 릴렉스시키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메리칸리그 ‘이주일의 선수’로 뽑히는 등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가다가 며칠 죽을 쑤고 났더니 걱정만 가득 안고 있는 볼품없는 선수가 돼 버렸네요. 야구가 너무 아리송하다보니 저 또한 아리송한 야구에 감정 기복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건, 이런 고민과 걱정들, 저 혼자만 하는 걸까요?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들도 저처럼 이런 번민 속에서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을까요? 제가 어떤 마음으로 야구를 해야 되는 건지, 조언 좀 해주실래요?
정말 사람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오클랜드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