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혈관 질환의 주범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이다. 현미채식은 이들 질환으로 오랜 기간 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을 위해 그가 고심 끝에 찾아낸 대안이다. 1992년부터는 아예 매달 넷째 주 목요일에 건강강좌를 여는데,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이들이 참가하고 있다.
“혈압 약으로 혈압을 낮추면 좁아진 혈관이 혈전으로 막혀 뇌경색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부작용의 우려가 있다. 하지만 현미채식 등 식이요법으로 혈관 자체를 넓혀 놓으면 혈압이 내려도 혈관이 혈전으로 막히지 않는다”는 것이 황성수 박사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환자들은 물론 동료 의사들도 ‘괴짜’ 취급을 하고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현미채식으로 40년이나 먹어온 혈압약과 당뇨약을 끊은 환자도 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현미채식으로 건강을 되찾은 환자들이 가장 큰 보람이라는 그는 고혈압과 당뇨는 물론 비만, 신장병 뇌·심장혈관 질환, 파킨슨병, 치매 등을 가진 환자에게도 열심히 현미채식을 권하고 있다.
심지어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식물인간 상태가 된 환자에게 캔에 들어 있는 호스급식용 미음 대신 생현미가루와 녹즙, 생수를 섭취하도록 한 적도 있다. 호스급식용 미음을 먹은 환자가 계속 설사를 하면서 가족들과 상의해 선택한 방법이다. 이 환자는 현미식으로 바꾸면서 의식이 없을 뿐 다른 건강상태가 양호해 놀란 적도 있었다고 한다.
황 박사에 따르면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약을 복용 중인 경우, 현미채식을 시작하는 동시에 약을 끊는 것이 아니라 식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이 먼저다. 그런 다음 혈압, 혈당 등의 변화를 주의해서 살피면서 의사와 상의해 약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 고혈압, 당뇨병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뇌혈관 질환이 낫지 않고, 쉽게 재발한다.
현미채식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현미밥과 채식 반찬으로 매끼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먹던 간식은 끊고 과일 간식으로 바꾼다. 이와 함께 고기와 생선, 달걀, 우유 4가지와 이들 식품을 넣어 만든 가공식품을 먹지 않으면 된다. 해산물도 육류이므로 금하고 백미와 백밀가루로 만든 가공식품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흔히 현미는 환자만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환자만 현미밥을 먹게 하고, 가족들은 따로 백미밥을 먹는다. 현미를 먹다가 병이 나으면 그만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미밥은 환자만 먹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에게도 좋다. 계속 먹으면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현미채식을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강상의 이점이 있을까. 다음은 황 박사가 <현미밥채식>(페가수스 펴냄)이라는 저서를 통해 소개한 몇 가지 효능이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
우연히 건강검진 등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말을 들었다면 현미채식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혈액 중에 콜레스테롤이 많아지면 동맥의 안쪽 벽에 달라붙어 혈관이 좁아지고 굳어지는 현상, 즉 동맥경화증이 된다. 동맥경화증은 고혈압을 일으켜 혈관이 터지거나 막힐 수 있다. 심장동맥이 막히면 심근경색, 뇌동맥이 막히면 뇌경색, 신장의 작은 동맥이 막히면 신부전증을 일으킨다.
혈액 중의 콜레스테롤을 줄이려면 고섬유질 식사가 좋은데, 현미 100g에는 1.3g의 섬유질이 들어 있다. 하루 세 끼를 모두 현미밥과 채소, 과일로 섭취하는 경우 하루에 18g 정도의 섬유질 섭취가 가능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동맥경화증이 개선된다
심장의 혈관이 좁아져서 생기는 협심증과 완전히 막히는 심근경색, 뇌의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과 막히는 뇌경색 등을 심·뇌혈관 질환이라고 부른다. 현미식을 하면 심·뇌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는 동맥경화증이 개선된다. 혈액 중의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면 동맥 벽에 달라붙어 있던 기름때가 서서히 녹아 없어진다. 현미에는 비타민 E가 많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도 혈관의 손상을 방지해 동맥경화증 발생을 막고 개선시킨다.
▲ 황성수 대구의료원 신경외과 박사 |
뼈에 들어 있는 칼슘이 빠져나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혈액의 산성화다. 원래 약알칼리성인 혈액이 산성 쪽으로 조금 기우는 것이다. 우리 몸은 혈액이 산성화되면 뼈에서 알칼리성 원소를 빼내 중화시키려고 한다.
혈액을 산성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고기 같은 동물성 식품이다. 동물성 식품 속의 단백질 성분이 분해되면서 질소화합물, 유황화합물 같은 산성 물질을 많이 남겨 놓는다.
반면 백미보다 칼슘, 마그네슘이 풍부한 현미는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 현미 자체는 약한 산성 식품이지만 함께 먹는 채소 반찬과 과일 간식은 알칼리성 식품이므로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
우리가 흔히 골다공증 예방 식품으로 꼽는 것은 우유나 멸치 등 뼈째 먹는 생선이다. 하지만 황 박사는 “우유, 멸치에 칼슘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뼈에서 칼슘을 빼내는 단백질도 많이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대장암을 예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결장이나 직장, 항문 등에 생기는 대장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동물성 지방을 지나치게 섭취하고 섬유질을 적게 섭취하는 식습관 때문이다. 이것은 곧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고 동물성 지방을 줄이면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섬유질 섭취 권장량은 하루에 20~25g이다. 이 정도의 섬유질을 섭취해야 변비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서 정해놓은 수치다. 현미밥과 채소반찬을 먹고 과일 간식을 먹는 경우에는 15~18g 정도의 섬유질 섭취가 가능하다. 단순히 수치만 놓고 보면 섭취 권장량에 못 미치지만 이렇게 먹어도 변비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섬유질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고기나 달걀, 우유 등 동물성 식품을 어느 정도 먹는 사람을 기준으로 정한 섬유질 섭취량이기 때문이다.
현미밥을 먹을 때는 백미밥처럼 대충 씹어 삼키면 안 된다. 속껍질이 으깨지도록 충분히 씹어서 현미에 들어 있는 영양을 모두 흡수해야 한다. 밥을 입안에 넣고 100번 정도 충분히 씹어야 한다. 오래 씹으면 속껍질에 들어 있는 미네랄 성분 때문에 싱겁지 않고 씨눈에 들어 있는 지방성분 때문에 고소한 맛이 난다.
현미를 씻고 불려서 밥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간편한 현미 생식이다. 열로 영양소가 파괴되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소화·흡수가 느려지니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생현미는 아무리 물에 오래 불려도 현미밥만큼 부드럽지 못해 치아가 약한 사람들은 먹기 힘들다. 하지만 치아가 건강한 사람은 별 문제가 없다. 현미 생식을 할 때는 반찬도 생채소로 먹는 것이 좋고, 이것이 어렵다면 살짝 삶거나 데친 채소를 먹는다.
현미생식보다 더 간편한 것은 현미가루 생식이다. 현미가루에 땅콩 등의 견과류, 채소, 과일을 넣고 믹서에 갈아 마시면 된다. 이때 한 모금을 입에 넣고 몇 번 씹어서 침과 섞이게 해서 삼키는 것이 좋다.
하지만 환자나 노인 등 현미밥을 먹기 힘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미죽을 끓이거나 가루를 만들어 미음을 만들어 먹는 방법이 있다. 섬유질이 파괴되기는 해도 백미밥을 먹는 것보다는 건강에 훨씬 좋다.
죽을 끓일 때는 밥을 할 때보다 물을 충분히 붓고 끓이되, 더 부드러운 죽을 만들려면 물에 불린 현미를 살짝 갈아서 죽을 끓인다.
죽도 먹기 힘든 환자나 노인, 이유식을 하는 아기에게는 죽보다 부드러운 미음을 준비한다. 방앗간에서 현미를 가루 내어 두고 조금씩 미음을 끓여 먹는다. 가루 낸 현미는 공기와 접촉하는 면이 커져서 쌀알로 보관할 때보다 빨리 상하므로 냉동보관한다.
아이들이 현미식을 하는 것은 어떨까? 현미의 소화·흡수율이 백미보다 낮아 현미만 먹으면 영양이 부족할까봐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우려와 달리 현미밥을 먹는 아이들은 살찌지 않고 건강하게 야윈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은 통통해도 병치레를 자주 하는 아이들보다 훨씬 건강하다.
보통은 단백질을 칼로리 비율로 20% 정도 섭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동물성 식품에는 현미의 7배가 넘는 과도한 단백질(50%)이 들어 있어서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황성수 박사의 주장이다.
갓난아기들이 먹는 엄마 젖에는 칼로리 비율로 단백질이 7% 들어 있는데, 이 정도 양으로도 성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현미에는 이보다 많은 8%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 때문에 갓난아기 때보다 성장 속도가 느린 청소년기에는 현미밥 외에 단백질을 더 섭취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현미밥을 먹일 때는 꼭꼭 씹어서 삼키는지 살펴보고 오래 씹는 습관을 들여 준다. 현미밥을 한 수저 입에 넣은 뒤에는 아예 숟가락을 내려놓고 100번 정도 씹게 한다. 숟가락을 들고 있으면 국이나 반찬을 먹을 생각에 덜 씹고 삼키게 된다. 이가 다 나지 않거나 제대로 씹을 수 없는 어린 아이는 현미를 빻아 밥 또는 죽을 쑤어 먹인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황성수 대구의료원 신경외과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