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덕군 지품면은 지금 복사꽃이 한창이다. 오십천을 따라 가는 34번 국도변 마을들에 복사꽃 붉은 물결이 넘실댄다. |
국도변 복사꽃불 활활
혹시 안동에서 청송을 거쳐 영덕으로 이어지는 34번 국도를 달려본 적이 있는지? 다른 계절, 다른 시기라면 평범한 국도에 불과할 뿐인 도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영덕군 지품면으로 접어들면서부터 34번 국도는 붉은 ‘화염’ 속을 통과한다. 화염의 정체는 복숭아꽃. 활활 타오르지만 결코 뜨겁지는 않은 복사꽃불이 지품면에서부터 영덕읍까지 10여㎞ 넘게 이어진다.
벚꽃이 하나둘 떨어질 때 지품면 복사꽃은 피기 시작한다. 예년 같으면 4월 중순경 한창이었을 꽃이다. 그런데, 올해는 날씨 탓에 많이 늦었다. 4월 20일을 넘어서야 개화하기 시작했다. 꽃은 약 15~20일가량 간다. 이번 주 남은 기운을 긁어모아 확 타오를 것이고, 다음 주부터는 질 일만 남았다.
지품면은 서로 청송 진보면, 북으로 영양 석보면에 닿아 있는 과수특산단지다. 포도 사과 배 복숭아 감 등이 지품면에서 난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복숭아. 34번 국도를 타고 청송 진보면에서 황장재를 넘으면 지품면으로 들어서는데,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눈앞에 빨간 융단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바로 복사꽃이다.
전남 순천의 월등면 등 복사꽃 마을이 적지 않지만, 지품면은 그 면적이 훨씬 넓다. 황장리, 지품리, 복곡리, 수암리, 낙평리, 신안리, 삼화리, 신애리, 구미리 등 무려 10㎞가 넘는 한길을 따라 오밀조밀 들어선 마을마다 복사꽃구름이 뭉게뭉게 앉아 있다. 어느 한 곳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마을이 없지만, 그중 복사꽃이 가장 인상적인 곳이 삼화리다.
▲ 복사꽃 구경 나온 모자(위 사진). 동광어시장 세자매집 맏언니가 박달게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지품면사무소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오십천이 흐르고 이내 오천솔밭을 지나 삼화리에 이른다. 삼화리는 1리와 2리로 이루어져 있다. 1리가 복사꽃을 감상하기에는 보다 낫다.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 1리로 들어서면 마을회관 우측으로 조붓한 콘크리트길이 뻗어 나간다. 길은 산등성이에 이르자 여기저기로 분화하는데, 어느 길로 들든 복사꽃밭이다. 그러나 도중에 새지 않고 계속 가던 길만 고집하기로 한다. 길은 언덕을 타고 오르며 나아가는데, 조금 더 가자 복사꽃 천지다. 여길 보고 저길 봐도 모두 복사꽃밭이다. 복숭아나무 아래로는 민들레며 들꽃들이 만발했다. 도무지 눈 둘 데가 없다.
삼화1리의 복사꽃밭은 개방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다. 주말이면 이 마을은 전국에서 찾아온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특히 사진가들에게는 최고의 봄꽃출사지. 복사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각지에서 모여든 사진가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작품담기에 여념이 없다. 평지가 아니라 비스듬한 언덕이 계속 이어지는 삼화1리는 작품을 담기에 좋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전경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사꽃사진은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 역광으로 찍는 것이 좋다. 해가 중천에 머물러 있으면 사진이 심심하다. 정면에서 비스듬히 해가 비칠 때 복사꽃은 붉은 가운데서도 하얗게 반짝반짝 부서지며 아름답게 빛난다.
대나무처럼 생겨서 대게
34번 국도는 영덕읍에 이르러 복사꽃과 함께 소멸하면서 7번 국도에 합류한다. 꽃길이 끝났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7번 국도가 곧 강구항에 이르고, 군침 도는 대게가 기다린다.
영덕 하면 대게, 대게 하면 강구항이다. 예전에 최불암, 박원숙, 송승헌 등이 출연했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했던 곳이다. 하얀색과 빨간색 등대가 마주보며 서 있고, 새벽마다 대게를 실은 배들이 쉴 새 없이 들어와 짐을 부린다. 대게는 그날그날 경매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어떤 때는 가장 비싼 박달대게가 1㎏ 기준으로 1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그 반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새벽에 강구항 수협어판장으로 가면 생동감 넘치는 대게 경매현장을 볼 수 있다.
흔히들 대게는 ‘큰 게’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대게는 다리 모양이 대나무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맛 좋은 것은 색이 불그스름하면서도 맑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클수록 맛이 좋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크다꼬 다 좋은 게 아니라예. 다리를 살짝 눌러보믄 물이 움직이는 게 보이지예. 이기는 ‘수기’라 카는 거라예. 물기(물게)말입니더.”
▲ 영덕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 |
영덕대게 맛볼 수 있는 마지막 달
영덕까지 와서 대게 맛을 보고 가지 않을 순 없다. 강구항에는 대게집이 그야말로 즐비하다. 큰 다리를 건너 강구항으로 가면 입구에서부터 대게집들이 양옆으로 수백 미터나 이어진다. 어느 집이든 다 똑같은 대게다. 다만 주머니사정을 고려한다면 동광어시장이 좋다. 1층의 어판장에서 대게를 직접 구입한 후 2~4층의 식당에서 쪄먹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찜 비용’은 수산시장에서 사온 대게 값의 10%(5만 원 이하일 때는 5000원), 자릿세는 1인당 2000원이다. 대게껍데기에 밥을 비벼주는데, 1인당 1000원을 받는다. 대신 밑반찬은 별 게 없다. 대게를 먹으러 가서 밑반찬으로 배를 채울 일은 없으니 별 상관은 없다.
그런데, 진짜 국내산 대게를 맛보려면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대게는 어족자원보호를 위해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잡지 못 하도록 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달이 지나면 러시아 등지에서 잡은 냉동대게를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단 냉동과정을 거친 대게는 살이 쪼그라들고 퍼석퍼석한 것이 ‘생물’과 맛 자체가 비교불가다. 아 쫄깃쫄깃 입안에서 녹는 그 맛, 말로 설명한다고 전달될 수 있을까. 탤런트 신구가 어느 CF에서 했던 카피가 생각난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