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당승마장에서 조랑말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체험객들. |
박물관에서 시작하는 여행
97번 국도는 일명 ‘동부산업도로’라고 불리는 길이다. 제주시와 표선면을 잇는 총연장 35.4㎞의 도로다. 요즘은 확장공사가 한창인데, 그 이전에는 우거진 숲과 목장지대를 가로지르는 맛이 최고였던 도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확장공사 결정이 내려지자 반대의견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기도 했다.
어쨌든 이 도로에는 수많은 재미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것은 고맙게도 한 가지 맛이 아니다. 마치 한 봉지에 담긴 딸기맛, 포도맛, 사과맛, 오렌지맛 사탕처럼 다양한 맛이어서 골라먹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제주시를 기점으로 삼았을 때 97번 국도는 국립제주박물관 사거리에서 시작된다. 어느 지방을 여행하든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사실은 그 지역 박물관이다. 지역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특별한 것이라 한들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하는데, 97번 국도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국립제주박물관에 들러보도록 하자.
박물관에는 육지의 것과는 너무도 차별적인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담겼다. 중앙홀 정면에는 제주목 관아와 읍성을 재현한 모형이 있고, 그 자리의 돔형 천장에는 개국설화를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화가 그려져 있다. 전시관은 선사실, 탐라실, 고려실, 조선실, 탐라순력도실, 기증실 등 모두 여섯 개로 이루어졌다. 선사실에서부터 조선실까지 시간의 흐름대로 제주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여주고, 탐라순력도실에서는 조선 숙종 28년(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그린 채색화첩인 탐라순력도(보물 제652-6호)을 통해 제주의 자연과 군사시설, 도민들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증실에는 제주에 표류한 외국인 또는 유배자들의 기록이 전시돼 있다. 안이 아닌 바깥 사람들의 눈에 비친 제주의 모습이 흥미롭다.
도깨비와 놀고 동굴서 차 한잔
박물관을 나서면 97번 국도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널찍한 도로는 제주시 봉개동을 지나 조천읍 선흘리 방면으로 이어진다. 남조로교차로 넘어서까지 길이 확장돼 있다. 도중에 코끼리랜드와 도깨비공원을 지난다. 코끼리랜드는 제주 안의 작은 동남아를 연상시킨다. 라오스산 코끼리와 현지 조련사들이 각종 쇼를 연출한다. 코끼리들이 서커스를 하고, 코에 관람객을 태우기도 한다. 코기리트레킹도 있다. 단순히 코로 관람객을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등에 태우고 주변 한 바퀴를 돈다. 아주 짜릿하고 특별한 경험이다.
▲ 성읍민속마을을 둘러보고 있는 가족. |
도깨비공원을 지나면 곧 선흘입구사거리다. 이곳에서는 거문오름 쪽으로 좌회전을 해야 한다. 거문오름은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제주도의 보물이다. 이 오름을 지나면 ‘선녀와나무꾼’과 동굴카페가 있다. 선녀와나무꾼은 추억의 테마공원이다. 기억에서도 잊힌 옛 사진을 보여주는 추억의 사진관과 옛 장터거리, 달동네마을, 닥종이인형관 등이 있다.
동굴카페는 선녀와나무꾼에서 약 2㎞ 전방에 자리하고 있다. 좁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30m쯤 걸어가면 그 안에 거짓말처럼 카페가 있다. 카페 바깥에는 녹차밭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에서 수확한 유기농녹차를 이용한 음료와 아이스크림, 쿠키, 전, 국수, 수제비, 돈가스 등을 메뉴로 내놓는다. 동굴 안은 바깥이 아무리 덥더라도 시원하다. 반면 겨울에는 바깥에 얼음이 얼어도 따뜻하다.
동굴카페를 이용한 후에는 녹차밭 산책을 빼놓지 말도록 하자. 물론 순서는 바뀌어도 상관이 없다. 낮은 구릉을 이용해 조성한 유기농 녹차밭이다. 퇴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질소비료를 쓰지 않기 위해 콩을 심어 땅에 질소를 공급한 정성 기특한 녹차밭이다. 녹차밭에는 기쁨의 연못, 무인으로 운영되는 또 하나의 동굴카페인 그린루체, 샤롯데트레비분수, 영원의 동산, 사랑의 길 등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플래시 터뜨려도 되는 미술관
동굴카페에서 나가서는 다시 97번 국도에 합류해 가던 길로 향한다. 5㎞쯤 달리면 대천동 사거리가 나오고 이후에는 승마장과 ATV체험장 등이 즐비하다. 조랑말 승마장들이 대부분이다. 조랑말은 일반 경주마보다 짜리몽땅하다. 그렇다고 승마의 재미가 덜한 것은 아니니 걱정일랑 접어두도록 하자. 만약 속도감을 원한다면 사륜오토바이인 ATV(all-terrain vehicle)를 타자. 제주의 목장지대를 씽씽 달리는 기분이 그야말로 최고다.
▲ 트릭아트뮤지엄. 액자 밖으로 튀어나온 그림 등 재미있는 작품들로 가득하다(위). 동굴카페. |
착시효과를 이용한 것들이 많은데, 관람객을 좇아 그림의 눈동자가 움직이거나 표정이 변하는 것은 예사다. 액자 밖으로 그림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마치 거울에 반사시킨 듯 대칭의 그림이 똑같이 그려진 방도 있다. 3D 기술을 도입한 그림도 보인다. 그림들이 재미있다보니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 보통의 미술관이라면 카메라를 꺼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제지를 할 텐데 이곳에서는 친절하게 그림이 제대로 나오게 찍는 법까지 가르쳐 준다. 플래시를 마음대로 터뜨려도 무방하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한편, 미술관 밖에도 트릭 세상이다. 가짜 동물들이 봄을 즐기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고, 또한 물거나 덤비지 않는 동물모형들이다.
트릭아트뮤지엄 다음은 성읍민속마을을 둘러볼 차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다섯 채의 초가를 비롯해 원님의 전용 우물인 ‘원님물통’과 그 옛날 집에서 길렀던 제주토종 흑돼지도 볼 수도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제주좁쌀막걸리인 오메기술을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마을에서 준비한 각종 체험도 해볼 수 있다. 갈옷만들기, 집줄놓기, 오메기술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성읍민속마을과 분위기 비슷한 표선민속마을은 97번 국도의 끄트머리에 있다. 성읍에서 약 10㎞를 더 달리면 이곳에 닿고 97번 국도 여행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