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쥬르카페(위), 폐역이 된 능내역. |
서울에서 양평 방면으로 6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보면 덕소를 지나면서부터 강변길이 시작된다.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을 윈도브러시로 쓸어내며 비 내리는 강변 풍경에 젖어든다. 그렇게 한 10분간 달렸을까. 봉안터널이 나오고 곧 조안면 다산유적지로 빠지는 길이 오른쪽으로 열린다. 6번 국도와 그렇게 안녕을 고하고 내려선 다산로. 그 길을 따라 돌며 남양주 조안면 우중여행의 묘미를 즐겨볼 참이다.
길은 먼저 소화묘원을 지난다. 소화묘원은 예봉산 등성이에 조성된 천주교 신당동교회 묘역으로 그 정상부에 서면 두물머리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 때문에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하는 두물머리의 물안개와 해오름을 담기 위해 수많은 사진가들이 찾는다. 소화묘원은 예봉산 등산로상에 있기도 해서 산사람들의 방문도 꾸준하다. 예봉산~적갑산~갑산 또는 예봉산~적갑산~운길산으로 선택 산행이 가능하다.
묘원의 북적임은 그러나 날 좋을 때의 이야기다. 비 내리는 날은 사진가들도 산사람들도 거의 없다. 묘원에는 을씨년스러움만이 감돈다. 그러나 빗속을 뚫고 묘원의 정상으로 올라보는 것도 괜찮다. 임도가 정상까지 나 있어 자동차로도 접근이 가능한데 묘원의 정상에 서면 멋진 풍경이 반갑게 맞을지도 모른다. 비구름이 잔뜩 낀 두물머리의 흔치 않은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비구름은 발아래를 완전히 지웠다가 다시 열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프레임을 짠다. 그중 마음에 드는 풍경 하나 건질 수 있다면 비구름 속에 서 있느라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워진 몸도 이내 가벼워질 것이다.
다시 다산로. 왕복 2차선의 길이 정취가 참 좋다. 봉안마을과 한확선생 신도비를 지나자 오른쪽에 능내역이 나타난다. 중앙선 노선이 직선화되면서 2008년 12월 폐쇄된 역다. 1956년 5월 1일 무배치간이역으로 출발한 능내역은 1967년 보통역으로 승격해 역무원들이 근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승객을 취급하지 않는 신호장으로 변경되었다가 결국 2년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운명의 동반자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길거리에 걸린 능내역 입간판 또한 대단히 낡고 녹이 슬어 있다. ‘능내역’이라 씐 글자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역사는 문이 단단히 걸려 잠겨 있다. 능내역의 희생 덕분에 이 우중에 추억을 쌓을 거리가 하나 생겼다. 무엇이냐면 바로 철길걷기다.
팔당역~능내역~운길산역으로 돌아가던 중앙선 철길은 능내역이 폐쇄되고, 팔당역~운길산역으로 바로 이어지면서 옛 철도구간은 걸어도 좋은 길로 바뀌었다. 남양주시에서는 팔당길, 조안길, 와부길, 피아노길, 화도길, 수목원길, 광릉길 등 ‘걷는 길’ 164.6㎞를 조성하고 있는데, 모두 12개 구간으로 준비되고 있다. 아직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팔당역~능내역~운길산역의 철길도 그중 한 코스로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거리는 8.8㎞로 세 시간 길이다. 기차펜션, 풍경열차, 레일바이크 등을 만들어 재미를 더하겠다는 생각인데 지금도 충분히 좋다. 강을 끼고 도는 철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 비구름 아래의 조안면과 두물머리 풍경(위), 봉쥬르카페 앞쪽의 연꽃마을과 이어진 산책로의 한옥이 운치 있다. |
다산유적지는 연꽃마을 입구에서부터 1㎞ 떨어져 있다. 토끼섬과 연꽃관찰데크를 경유하면 2.2㎞로 거리가 늘어난다. 능내1리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다산 생가인 여유당과 다산문화관, 실학박물관 등이 있다.
다산문화관에는 다산의 생전 업적인 수많은 저서들과 유품,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수원성 축조 때 썼던 거중기도 볼 수 있다. 지난해 개관한 실학박물관은 그 이름처럼 실학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실학사상이 어떻게 싹 트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유물 등을 통해 설명한다. 혜강 최한기 가문 기증품과 연암 박지원 가문 기증품 등 1000여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비오는 날 조안면 여행을 행복하게 하는 또 다른 것들이 있다면 푸근한 카페와 갤러리들이다. 먼저 봉쥬르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능내역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소화묘원에서 능내역 방면으로 달리다보면 오른쪽으로 카페 봉쥬르 이정표가 보인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500m쯤 들어가면 통나무로 지은 봉쥬르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앞으로 철길이 지나고, 그 너머로 강이 흐른다. 2층 카페 창가에 앉으면 허술한 옛날식 유리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서 더 운치 있다.
음악 감상하기 좋은 갤러리 겸 카페도 있다. 마현갤러리가 그곳이다. 다산유적지에서 맞은편으로 1㎞쯤 더 들어가면 오른쪽에 마현갤러리가 있다. 명동 롯데백화점 미술관장을 하던 주인장이 12년 전 차린 것이다. 공간은 좁다. 차를 마실 수 있는 5개가량의 테이블이 놓여 있고, 벽면에 작품 네댓 점이 걸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음악을 진종일 들을 수 있다. 소파에 묻히듯 앉아 하염없이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클래식의 바다를 헤엄쳐본다. 소장하고 있는 클래식앨범만 약 800장이 넘는데, 야간에는 빔프로젝트를 이용해 연주실황도 보여준다. 이곳 역시 강을 끼고 있다.
<여행안내>
▲길잡이: 서울→양평 방면 6번 국도→덕소→팔당유원지→봉안터널→우측으로 진출→다산로→소화묘원→봉쥬르→능내역→다산유적지
▲먹거리: 서울→양평 방면 6번 국도→덕소→팔당유원지→봉안터널→우측으로 진출→다산로→소화묘원→봉쥬르→능내역→다산유적지
▲잠자리: 남양주종합촬영소 근처에 ‘올리브펜션’(031-576-8800), 운길산역이 있는 진중리에 ‘초록향기펜션’(031-576-8702)이 있다.
▲문의: 남양주시청 문화관광과 031-590-247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