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준희 해설위원 |
유럽축구 전문가로 불리며 마니아층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SBS 박문성 축구해설위원. 그는 지난 2002년 송종국의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데뷔전을 시작으로 8년 가까이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축구 전문 기자 출신답게 해박한 지식과 안정된 말솜씨로 실수 없는 해설을 들려주는 그에게도, 시청자들이 눈치 못 챈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 그가 박지성의 출전 경기를 중계하던 새벽이었다. 새벽시간이라 출출했던 그에게 마침 방송국 책상 위에 있는 군침 도는 떡이 눈에 들어왔고, 그는 떡 한 입을 맛있게 먹은 뒤 중계석에 앉았다. 전반 45분이 끝나갈 무렵, 아뿔싸! 그의 배에서 신호가 왔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을 가려했지만 ‘곧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이 앞서면서 그는 그냥 그렇게 후반전 중계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가 맛있게 먹은 그 떡이 상한 떡인 줄 누가 알았으랴. 시간이 계속 흐를수록 그의 배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고, 그는 머릿속으로 ‘중계석에서 큰일을 저질러도 시청자들에게까지 냄새는 안 나겠지’라는 생각으로 될 대로 되라며 더 큰 목소리로 해설을 해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지켜보던 캐스터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에게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손짓을 보냈고, 그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단 2분 만에 볼일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해설을 이어갔다고 한다. 지금도 박문성 위원은 그 짧은 찰나에 만일 박지성 선수가 골이라도 넣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한다.
역시 유럽축구 전문가로 불리며 이른바 샤우팅 해설로 유명한 KBS 한준희 해설위원. 그가 “드록바~ 드록바~ 왼발! 아악~”이라고 외치던 소리가 한때 휴대폰 벨소리로 나왔을 만큼, 그의 몰입도 100% 샤우팅 해설은 매번 화제가 되곤 한다. 더불어 그는 여자 축구 선수들의 프로필까지 꿰고 있을 만큼 선수 정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이런 그에게도 선수 이름을 몰라 우왕좌왕했던 경기가 있었다.
지난 2003년 볼리비아와 우루과이의 월드컵 지역예선 중계 당시의 일이다. 남미지역 선수들이라 유럽축구 전문가인 그의 주종목(?)과 거리가 있었지만, 그는 열심히 공부하며 중계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믿고 있었던 또 하나, 바로 현지 방송사에서 보내주는 두 팀의 스타팅 멤버 명단이었다. 하지만 애꿎게도 이날 두 팀의 스타팅 멤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계진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중계를 시작해야만 했다고 한다. 준비한 자료와 스타팅 멤버가 매치가 안 되다 보니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 이내 벌어졌고, 그는 결국 자신의 소신대로 화면에 나오는 이름 모를 선수들에게 과감히 작명(?)을 해주며 해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캐스터 또한 한준희 위원의 해설을 적어가며 선수 이름을 호명했고, 두 사람은 결국 비 오듯 진땀을 흘리며 전·후반 90분의 경기를 그럴듯하게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경기 후 검토 결과 그는 볼리비아 선수들 대부분을 맞추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노련함이 빛을 발한 순간이기도 했지만 그는 그 당시를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찔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축구뿐 아니라 야구 중계에서도 해설위원들의 실수가 종종 벌어지곤 한다. 특히 방송사에 길이 남을 만한 위기의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KBS 야구 해설위원인 이용철 위원의 지난 2006년 케이블 중계 당시 손가락 욕설사건이었다.
▲ 이용철 해설위원, 박문성 해설위원 |
경기가 후반부로 넘어갈 무렵 캐스터가 잘못된 정보를 전해주자 그는 수정된 정보를 적어 캐스터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 모습을 중계차에서 보고 있던 현장 PD는 그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색다르겠다고 판단해서였는지 헤드셋을 통해 “(중계석의 모습을) 잡는다!”라고 외쳤고, 실제로 중계석의 모습이 잠시나마 화면에 비춰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뿔싸! PD의 말을 그저 농담이겠거니 생각한 이용철 위원은 카메라가 넘어오는 그 순간 카메라를 향해 “장난치지 마”라며 장난삼아 애교 섞인(?) 가운데 손가락 내밀기를 했고 이 모습은 그대로 전국에 생중계되고 말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아챈 이 위원은 결국 방송 말미에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거듭 사죄했지만 불과 2주 앞두고 있던 그의 공중파 해설 데뷔는 이 사건으로 인해 취소되고 말았다.
선수 출신 해설위원들은 넘치는 열정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지만, 때론 방송이 익숙지 않은 탓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올해 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특정종교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제갈성렬 위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 때 레슬링 해설을 맡았던 심권호 당시 해설위원의 경우도 떠오르는데, 당시 그는 ‘막말해설’ ‘반말해설’ 등으로 수많은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 억울할 법한 사연이 숨어 있다.
그가 2004올림픽에 이어 2008올림픽해설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의 일이다. 평소 연예계와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그는 스타 해설위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적절히 살리기 위해 주위의 친한 연예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그와 절친한 개그맨 현병수의 조언에 귀 기울였다고 한다. 당시 현병수가 전해준 조언은 “형! 요즘 방송은 독설, 그래 막말이 대세야! 김구라 선배가 사랑받는 거 좀 봐! 세상은 달라졌지? 형도 다른 생각 말고 거침없이 말해! 그게 요즘 트렌드잖아!”였다. 현병수의 조언을 곧이곧대로 실천해버린 심권호는 결국 한동안 그와 소원한 사이를 유지해야 했다고 한다. 막말해설 속에 감춰진 그의 순수함이 빚은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