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최북단 고성 대진항의 새벽풍경. 요즘 안개가 자주 끼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그 어느 때보다 남북 간의 긴장감이 고조된 탓이라서 그럴까. 우리나라 내륙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강원도 고성으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평소에도 별반 주목받지 못 하던 지역이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 하지만 안타깝다. 물안개에 휩싸인 포구와 호수, 그리고 향기 아름다운 라벤더농원의 멋진 그림을 놓치고 이 계절을 보낸다는 게.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포구. 이곳은 대한민국 최북단 포구다. 바로 위가 남북출입국사무소이고, 그 너머가 북측 땅. 더는 올라가고 싶어도 올라갈 수 없는 대한민국 영토의 북쪽 끝, 여기에 대진포구가 자리하고 있다.
포구의 하루는 첫새벽부터 드리워진 해무 속에서 시작된다. 위도가 높아서 그런지 여름임에도 새벽의 공기가 차고, 그 때문에 해무의 발생 빈도가 상당히 높다. 동이 터오기 훨씬 전부터 몽실몽실 피어오른 해무는 바다와 하늘과 땅의 경계를 모두 지우며 사위를 어디인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헤어나기도 힘든 하나의 늪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포구 사람들은 그 늪이 친숙하다. 먼 바다로 나갔던 배는 등대의 불빛마저 삼킨 해무를 헤치며 속속 포구로 들어오고, 바다로 나가지 않은 이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 배가 정박할 자리에서 간밤의 수확을 기다린다. 한편에서는 어둠 속에서도 능숙하게 그물 손질을 한다.
▲ 대진항은 우리나라에서 문어가 가장 많이 잡히고 거래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
본래 대진포구는 명태가 많이 거래되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지역이지만 지금은 철이 아니다. 요즘은 참숭어, 대구, 문어 등이 잡힌다. 특히 문어는 우리나라에서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 5㎏ 정도의 중간 것에서부터 10㎏이 넘는 대형 문어까지 크고 작은 문어들이 상인들의 간택을 기다리며 위판장 바닥 여기저기를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털게, 심퉁이, 망챙이처럼 별 인기가 없거나 소량으로 잡힌 것들은 경매에 끼지 못 한 채 한쪽에 처량하게 놓여 있다. 여행자들은 이것들을 노려볼 만하다. 한눈에 보아도 양이 제법 많아 보이는 고기들을 어부들이 떨이하는 셈치고 헐값에 주기도 한다.
경매가 끝나 한산해진 포구를 뒤로하고 화진포를 찾는다. 화진포는 대진포구에서 남쪽으로 2㎞가량 내려가면 닿는 거진읍의 호수다. 대진포구를 덮쳤던 해무는 화진포에서 더 오래 머문다. 바다 쪽은 이미 거의 걷힌 상태지만, 호수 위에 내려앉은 안개는 쉽사리 걷히지 않는다. 호수 주위를 두르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과 낮은 높이의 산 때문이다. 안개는 수면뿐만 아니라 소나무숲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바다와 바로 붙어있다시피 한 화진포는 후빙기에 해면상승으로 해안침수가 진행되면서 생긴 것이다. 이러한 호수를 석호(潟湖)라고 한다. 동해안에는 화진포와 같은 석호가 18개 있다. 이중 원형이 비교적 잘 보전된 것이 7개로 화진포 외에 송지호, 영랑호, 경포호 등이 있다. 그중에서 화진포는 생물종다양성이 가장 양호하다.
▲ 하늬팜 라벤더농원. |
화진포를 비롯한 고성 일대는 한국전쟁 이전에 북측의 영역이었다. 이곳에는 ‘화진포의 성’이라 불리는 유럽풍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일명 ‘김일성 별장’이라고도 불린다. 조선로동당 간부와 김일성이 종종 휴가를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화진포콘도 뒤쪽의 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이 건물은 현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건물이 서 있는 이 절벽에 오르면 말발굽처럼 휜 해안과 그 북서쪽의 화진포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진포에는 또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부통령을 지낸 이기붕의 별장도 있다. 화진포의 성에서 나와 화진포교를 건너 조금 가다보면 금강송림 속에 이 두 별장이 있다. 이들 건물도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안개가 대진포구와 화진포의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이 계절, 하늬팜의 라벤더도 활짝 만개했다. 하늬팜은 우리나라 유일의 라벤더농원이다. 고성군 간성읍 어천3리에 자리한 이 농원은 2007년부터 약 1만 평의 대지에 라벤더를 재배해 오고 있다.
라벤더는 프랑스 프로방스와 일본 홋카이도 후라도 등에서 대량 재배되는 것으로 유명한 허브의 일종이다. 보통 보라색꽃이 피는데 흰색, 분홍색, 노란색꽃도 있다. 라벤더는 향기가 오래가 방향제로 널리 쓰인다. 주머니에 꽃을 넣어 두면 그 향기가 3년은 간다. 쑥향과 비슷한 탓에 벌레들이 싫어해 방충효과도 크다. 라벤더는 향수와 화장품, 목욕용품 등으로도 활용된다.
현재 하늬팜에서는 라벤더축제가 한창이다. 6월 12일 시작된 이 축제는 7월 11일까지 계속된다. 온갖 꽃이 만발한 작은 정원과 허브용품 판매점을 지나면 보라색 라벤더꽃물결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올해는 개화가 늦어 축제 이후에도 라벤더꽃을 감상할 수 있다. 축제는 라벤더사진전과 허브수채화전 등으로 이루어진 전시회, 라벤더오일 추출 시범과 라벤더 키우기 특강 등으로 짜여진 시연회, 라벤더 요정 선발대회와 음악가 초청 연주회 등이 펼쳐지는 이벤트행사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한편, 하늬팜에는 라벤더 외에도 꽃양귀비를 비롯해 관상용 화초들이 곳곳에 피어 있다. 라벤더만으로는 다소 단조로울 수 있다는 판단하에 심은 것들이다. 메밀도 한쪽에서 자라고 있다. 6월 초 파종한 메밀은 빨리 자라는 특성상 7월 중순쯤이면 하얀 꽃을 피울 것으로 기대된다.
여행안내
▲길잡이: 서울→6번 국도→양평→44번 국도→홍천→인제→46번 국도→진부령→하늬팜 라벤더농원→7번 국도→화진포→대진항 ▲먹거리: 대진항 근처에 부두식당(033-682-1237)이 있다. 각종 생선매운탕을 잘 하는 집이다. 특히 아침에 대진항에서 생선을 싸게 사서 가지고 가면 일정 금액을 받고 푸짐하고 맛있게 매운탕을 끓여준다. ▲잠자리: 대진항을 바라보는 곳에 겨울바다펜션(033-682-7792)이 있다. 최근 지어 깔끔하다. 가격도 비수기엔 5만~6만 원 선으로 저렴하다. ▲문의: 고성군 문화관광과 033-680-3361
김동옥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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