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관련 사건을 담당하면 진급에 유리하다.’
경찰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말이다. 연예인처럼 유명인 관련 사건을 담당하면 그만큼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고 수사가 잘 진행될 경우 인사평점도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0년대 초반 여러 건의 연예인 관련 사건을 담당했던 강력반장이 진급하는 등 연예인 사건 담당 경찰의 진급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이젠 다 옛말이다. 오히려 최근 몇 년 새 경찰들은 연예인 관련 사건을 두려워(?) 할 정도다. 심지어 동료 경찰들이 연예인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을 위로할 정도다.
“권상우는 현행범이었는데 현장에서 그를 검거하지 못한 것은 경찰관의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내사 결과 담당 경찰의 근무가 소홀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서울 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은 이런 이유로 권상우 뺑소니 사건을 담당한 청담지구대와 강남경찰서 소속 경찰관을 상대로 징계를 내렸다. 권상우를 현장에서 검거하지 못한 데다 음주 의혹도 밝히지 못한 부분이 근무 태만의 원인이 됐다.
이번 조치에 청담지구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청담지구대 관계자는 “비가 많이 내려 추격에 실패한 것”이라며 “영화 같은 추격전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 경찰은 안전사고 등을 고려 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징계를 받은 경찰을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그의 동료 경찰은 “연예인 사건이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라며 “통상적으로 이번처럼 사건사고 후 미조치 사건을 두고 경찰청이 감찰까지 하진 않는 것으로 안다”고 얘기한다.
이처럼 징계까지 받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연예인 관련 사건을 담당하다 인사 조치를 받는 경우는 종종 있다. 물론 징계성 인사 조치는 아니지만 수사 도중에 인사가 이뤄져 괜한 의혹을 사곤 하는 것. 대표적인 경우는 지난 2002년 대대적인 연예계 비리수사를 담당했던 김규헌 서울지검 강력부장(현 서울고검 부장검사)이 갑작스럽게 충주지청장으로 발령 나면서 수사가 흐지부지됐었다. 서울지검 강력부장이 충주지청장으로 발령이 난 것을 두고 징계성 인사라는 말도 많았다. 비슷한 위치로의 이동이나 진급이 아닌 터라 연예계 비리 수사가 PR비 파문에서 성접대로까지 확대된 데 대한 징계성 인사이동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자연 문건 파문’ 수사를 담당했던 분당경찰서 오지용 형사과장은 사건이 모두 마무리된 뒤 시흥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인사이동 됐다. 연예관계자들 사이에선 오 과장 역시 ‘장자연 문건 파문’ 수사가 의혹만 남긴 채 끝난 데 대한 징계성 인사 조치를 받은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돌았다. 그렇지만 경찰 관계자들은 분당경찰서에서 시흥경찰서로의 이동을 징계성 인사이동으로 보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인다. 비슷한 위치 이동일 뿐이라는 것. 오 과장은 이후 시흥경찰서에서 인기 그룹 리더인 전 아무개의 성매수 사건을 담당했다. “분당서에서 연예인 사건으로 너무 힘들어 여기(시흥경찰서)로 온 뒤에는 한동안 그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연예부 기자들이 경찰서에 몰려들어 난처했다”면서 “연예인 관련 사건은 워낙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데다 매스컴 취재 열기까지 뜨거워 수사에만 집중하기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연예인 관련 사건에서 가장 취재진의 성토가 이어진 현장은 서울 성동경찰서였다. 그룹 H.O.T 출신 가수 이재원의 성폭행 사건으로 몰려든 취재진에게 담당 형사는 ‘이재원’이라는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았을 정도로 취재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사무실 문을 잠가 기자들의 출입을 막았을 정도다.
다시 찾은 성동경찰서. 이번에도 담당 형사는 당시 사건에 대해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경찰을 통해 당시 얘기를 건네 들을 수 있었다. 취재에 응한 성동경찰서의 한 형사는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합의가 되면 더 이상 사건 성립이 안 돼 조심할 수밖에 없는데 그 사건의 경우 피해자 측에서 고소할 당시부터 이재원이라는 이름이 매스컴에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면서 “합의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사건이 매스컴에 보도됐는데 피의자가 유명 연예인이었던 터라 오히려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당하는 상황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실제 최근 들어 매니저들이 ‘사생활 보호’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해 달라며 경찰을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 강남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지역 특성상 연예인 사건이 많은데 매스컴에 보도된 사건보다 보도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사건이 더 많다”면서 “몇 년 전에만 해도 연예인 사건은 적어도 보도자료는 배포하던 것과는 상반된 풍경”이라고 말한다.
연예인이 음주 관련 사건사고에 휘말려 경찰서에 올 경우에는 꼴불견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04년 동대문경찰서가 탤런트 이유진이 음주 단속 중인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사건이다. 최근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 음주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최철호의 경우 수지지구대 담당 경찰이 취재진에게 “찍어요. 찍어가지고…. 완전 경찰한테 욕하고 난리네. 완전히 안하무인이야”라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공개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연예 미디어의 지나친 취재 열기다. 연예인 사건만 벌어지면 100여 명의 취재진이 경찰서로 몰려들어 경찰서 로비를 완전 점령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연예부 기자들에게 경찰들은 다소 냉담한 편이다.
그나마 연예인 사건이 많지 않은 노원경찰서는 고 안재환 자살 사건 초기 취재진에게 다소 호의적이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노원경찰서 형사1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최대한 협조하려 노력했지만 그만큼 실망도 컸다”고 얘기한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방송 인터뷰에도 최대한 응해줬는데 보도(방송) 내용이 계속 자극적으로만 흘렀다는 것. 심지어 “이젠 연예인 사건은 피하고 싶다”는 하소연까지 들려줬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