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앤절리나 졸리는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배우가 되었다. 섹스 심벌인가 싶으면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있고, 액션 블록버스터의 여전사 이미지가 졸리를 지배한다고 생각할 즈음, 우린 그녀가 10년 전에 <처음 만나는 자유>(1999)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줬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할리우드가 여배우를 구분하는 모든 스타일을 만족시키면서도, 그 어떤 범주에도 갇히지 않는다. 졸리는 졸리일뿐이다. 그만큼 그녀는 독보적이다.
1975년 6월 4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그녀의 부모는 모두 배우였다. 아버지는 <귀향>(1978)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대배우 존 보이트였고, 어머니 마르셀린 버트란드도 배우였다(졸리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졸리가 다섯 살 때 부모는 이혼했다. 이후 어머니와 함께 여러 도시를 떠돌던 졸리는 성인이 되자 아버지와 연관되는 것을 거부하며 미들네임인 졸리를 성으로 삼았다.
12세 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던 졸리는 연극 무대를 거쳐 1993년에 <사이보그 2>라는 싸구려 SF 영화로 데뷔한다. 스무 살 때 출연한 <해커즈>(1995)는 그녀의 존재감을 알린 작품. 이 영화에서 만난 자니 리 밀러와 스물한 살 때 첫 번째 결혼을 하지만 3년 후에 이혼했고 <에어 컨트롤>(1999)에서 만난 스무 살 연상의 빌리 밥 손튼과 스물다섯 살 때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지만 역시 3년 만에 이혼했다.
배우경력 초기의 졸리는 특유의 ‘쎈’ 이미지에 가슴 노출 정도의 섹스어필을 보여주었던, 어떻게 보면 그저 그렇게 흘러가 버릴 수도 있는 배우였다. 이때 그녀를 구원한 작품은 슈퍼모델 지아의 삶을 그렸던 영화 <지아>(1998)였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단순한 글래머를 넘어 육체와 정신에 걸친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비운의 삶을 살았던 지아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그 어떤 영화보다 과감한 노출을 보여주었지만 이 영화에서 화제가 된 것은 그녀의 연기력이었다.
블록버스터와 인디펜던트 영화를 오가며 ‘백만 달러짜리 입술’ ‘서늘한 눈빛’ 등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키던 앤절리나 졸리는 <툼 레이더>(2001)에서 라라 크로프트가 되면서 평생의 닉네임인 ‘여전사’ 타이틀을 얻었다. 게임을 영화화한 <툼 레이더>는 ‘과연 누가 라라 역에 어울릴 것인가’라는 마니아들의 걱정 속에 기획되었는데 졸리는 그 모든 근심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여전사 졸리’는 놀라웠다. 그녀에게 총은 마치 여배우에게 귀걸이가 그런 것처럼 자연스레 어울리는 액세서리 같았다.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2005) <원티드>(2008) <솔트>(2010) 등의 액션 영화에서 그녀는 분신처럼 총을 사용하고 남자들 틈에서 그들을 장악하며 마초들의 사타구니에 강력한 킥을 날려줄 것 같은 이미지를 선보였다. 그녀는 남성 관객들의 시각적 쾌락에 사로잡힌 ‘여신’이 아니라 거세 공포를 일으키는 거대한 육체의 느낌이었다. 특히 몸 구석구석에 아로새겨진 문신들과 노동자를 연상시키는 굵은 심줄의 팔뚝은 육체를 보호하고 다듬는 데 열중인 다른 여배우들과는 다른 그 무엇을 느끼게 했다.
앤절리나 졸리는 노출 없이도 남성 관객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유일한 여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사생활에서 보여주는 강인한 모성애는 그녀의 여성성이 남성성을 뒤엎는 깊은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드러냈다.
브래드 피트와의 결혼으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육체 커플을 이룬 앤절리나 졸리. 그녀는 여배우의 성적 매력이 단지 예쁜 얼굴과 환상적인 바디 라인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보다는 육체가 지닌 복합적인 이미지와 그 충격으로 어필해야 한다는 걸 증명한 흔치 않은 배우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