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 33×-×1에 위치한 S 빌라는 지난해 11월 작고한 고 박용오 전 회장이 생전에 머물던 곳이다. 얼마 전까지 이 빌라 B동 ×01호는 고 박 전 회장의 아들 박경원 성지건설 회장 명의였으며 ×02호는 고 박 전 회장 소유였다. S 빌라 한 채당 전유면적은 약 240㎡(약 73평)로 시가 11억 원 정도로 평가 받고 있다.
부동산등기부 확인 결과 지난 7월 8일 B동 ×01호의 명의가 박경원 회장에서 한국투자신탁으로 이전됐다. 등기부엔 등기원인이 ‘신탁’이라 돼 있고 한국투자신탁은 ‘수탁자’로 기재돼 있다. 그런데 이 집에 대해 지난 8월 11일자로 서울중앙지법이 ‘사해행위 취소로 인한 원상회복 청구권’ 가처분 결정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채권자는 신용보증기금으로 등기부에 기재돼 있다.
사해행위란 ‘채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감소시켜 채권자가 충분히 변상을 받을 수 없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즉, 채무자의 재산처분 행위에 의해서 그 재산이 감소돼 현 채권의 공동담보에 부족함이 생기거나, 이미 부족 상태에 있는 공동담보를 한층 더 부족하게 함으로써 채권자가 채권을 완전하게 회수할 수 없게 하는 행위다. 채무상환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재산 빼돌리기인 셈이다.
기한 안에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시키는 것이 사해행위의 가장 흔한 경우다. 박경원 회장의 한국투자신탁으로의 소유권 신탁이 사해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법원에서 판단해 가처분 결정을 내린 셈이다. 법원은 이 집에 대해 현재 매매와 증여, 전세권 저당권 임차권의 설정 등 일체의 처분행위를 금지시킨 상태다.
▲ 고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의 아들 박경원 회장 명의의 부동산이 지난 8월 법원으로부터 가압류 조치를 당했다. 사진은 가압류된 시가 11억 원 상당의 성북동 S 빌라 전경. |
취재 결과 이는 박경원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H 택배라는 회사가 채무 상환을 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고 한다. 신용보증기금 측은 “H 택배에 대해 신용보증기금이 채무 보증을 섰는데 이 회사 경영상황이 악화되면서 채무 상환을 하지 못하게 되자 이 회사 대표이사인 박경원 회장을 상대로 채무이행 청구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라 밝혔다.
신용보증기금은 박 회장이 채무이행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외부기관에 신탁했다고 보고 소송을 제기했으며 법원이 신용보증기금 입장을 받아들여 박 회장 개인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박 회장 부동산의 명의 신탁 배경, 신용보증기금과의 소송과 관련해 성지건설 측은 “(박경원 회장의) 개인적인 일이라 자세히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경원 회장의 최근 상황을 볼 때 당장 부동산 가압류를 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성지건설 주식 146만 1111주의 소유권을 사실상 제일이상호저축은행 등 10개 저축은행들에 빼앗긴 상황이다.
고 박 전 회장 명의였던 S 빌라 B동 ×02호는 지난 4월 13일 국가의 압류 처분을 받은 것으로 등기부에 기재돼 있다. 같은 날 고 박 전 회장 명의로 돼 있는 신림동 산 12×-×0 임야 2분의 1 지분(2559㎡, 약 775평)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소재 용평 제2차콘도 M동 2××3호 5분의 1 지분 역시 같은 날 국가에 압류됐다. 신림동 땅과 평창 콘도는 고 박 전 회장과 두산가 인사들 공동 명의로 돼 있는데 압류 처분은 고 박 전 회장 명의 지분에 대해서만 행해졌다. 이어서 지난 8월 10일엔 고 박 전 회장 명의 성북동 8-×8 소재 2층 주택(대지 면적 959㎡, 약 290평)도 국가에 압류됐다.
고 박 전 회장 명의 부동산의 압류 처분기관인 성북세무서 측은 “(고 박용오 전 회장 측이)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해서 압류한 것”이라 밝혔다. 정확한 체납 내역은 납세자 개인 정보라서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 성북세무서 관계자는 “유족이 밀린 세금을 납부하면 압류를 풀 수 있다”며 “그렇지 못할 경우 자산관리공사에 의뢰해 공매 처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고 박 전 회장 명의 S 빌라 B동 ×02호 등기부엔 고 박 전 회장 생전에 2억 원 때문에 집을 가압류 당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일요신문> 882호 보도). 이는 지난 2008년 10월 17일 수원지방법원이 가압류 처분을 내린 것이었는데 당시 채권자는 하나캐피탈, 청구금액은 2억 775만 6347원이었다. 한때 재계 서열 10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 두산그룹 총수였던 고 박 전 회장이 2억 원 조금 넘는 돈 때문에 자택 가압류를 당했던 것이다. 이 가압류는 이듬해인 2009년 9월 22일 해제됐지만 박 전 회장 사후 국가에 압류되는 비운을 맞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선친 빚에 포위…회장직도 위태
신용보증기금과의 소송 외에도 박경원 회장은 선친에게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들의 빚 독촉까지 받고 있다. 선친인 고 박용오 전 회장이 성지건설 인수를 위해 차입한 280억 원에 대한 연대보증을 박 회장이 서 줬는데 지난해 11월 박 전 회장 사망 이후 그 빚을 박경원 회장이 떠안은 것이다.
지난 2008년 2월 고 박 전 회장은 성지건설 주식 146만 1111주를 주당 5만 원씩 쳐서 총 730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주가 3만 5450원보다 40% 이상의 프리미엄을 얹었던 셈이다. 2005년 두산그룹 ‘형제의 난’으로 그룹에서 퇴출된 뒤 절치부심 끝에 성지건설을 인수한 고 박 전 회장은 업계 10위권 도약을 다짐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 지난해 사망한 고 박용오 전 회장 장례식장에서 장남 박경원 회장(맨 오른쪽)과 차남 박중원 씨. |
고 박 전 회장의 성지건설 지분을 담보 삼아 돈을 빌려줬던 저축은행들은 기업회생절차 개시에 맞춰 박경원 회장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성지건설 주식을 담보처분권을 사용해 장내에서 팔고 있다. 성지건설 측은 “저축은행들이 채권 회수를 위해 담보로 갖고 있던 박경원 회장 명의 지분을 (박 회장 의지와 무관하게) 팔고 있는 것”이라 밝혔다. 8월 5일 공시에 따르면 현재 박 회장 명의 성지건설 지분은 종전의 25.45%에서 10.10%로 줄어든 상태다.
박 회장은 기업회생절차 개시 이후 법원으로부터 회사 관리인 자격을 받아 계속 경영을 하고는 있지만 성지건설 최대주주 자리는 8월 5일자로 알지투자개발(지분율 14.53%)에 넘어간 상태다. 성지건설 측은 “고 박용오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박 회장 명의 주식이 채권은행들에 의해 조만간 모두 매각될 예정”이라 밝혔다. 결국 머지않아 박 회장에겐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을 제외한 1% 지분만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가가 워낙 낮아진 까닭에 박 회장이 물려받은 주식을 다 처분해도 고 박 전 회장이 진 빚을 다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주식 매각 대금으로 빚을 다 상환하지 못할 경우에 대해 성지건설 측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히지만 결국 부동산 등 박 회장 개인 재산에 대한 압류 가능성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용보증기금과의 소송에 이어 또 다른 채무이행 소송을 겪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선친이 두산그룹에서 퇴출된 이후 절치부심하며 사들인 성지건설의 최대주주 자리마저 빼앗긴 박경원 회장이 그를 조여 오는 재정위기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에 재계의 시선이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