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애마의 시대’가 열렸을 때 애마라는 역할은 당대 최고의 섹시한 육체에 허락되던 영예였다. 안소영과 오수비에 이어 ‘3대 애마’ 자리에 등극한 김부선은, 그런데 조금은 달랐다. 169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35-23-35라는 완벽한 몸매의 여배우는 남편의 외도를 참으며 외로운 몸부림으로 욕망을 다스리기보다는 훨훨 날아갈 것 같은 날렵한 이미지였다.
1963년에 제주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부선(본명 김근희)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모델 생활을 시작한다. 이때 그녀를 이끌어 준 사람은 고향 선배이자 당대 최고의 모델이었던 윤영실. 여배우 오수미(본명 윤영희)의 동생이었으며 이후 의문의 사건으로 실종되었고 아직까지 생사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1982년부터 시작된 모델 생활은 승승장구했고 패션 디자이너 하용수는 단번에 그녀를 메인 무대에 올렸다. 첫 영화는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1983). <여자는 안개처럼 속삭인다>(1982)의 윤영실에 이어 두 번째 모델 출신 배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쏘았다>(1983)는 이어 세 번째 영화인 <애마부인 3>(1985)는 ‘염해리’로 이름까지 바꿔가며 도전했던 영화로 그녀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렸으며 TV로 씨름 중계를 보면서 묘하게 몸을 뒤틀며 마스터베이션을 하던 장면은 애마 시리즈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 시기 그녀는 연극 <에쿠우스>에서 최재성과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오수미와 함께한 <토요일은 밤이 없다>(1986)에서 매끈한 몸매로 율동미를 과시하며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세간의 입에 올랐고 싱글맘의 힘든 생활도 시작된다. 1980년대의 유망주였던 그녀의 1990년대 필모그래피는 빈약해졌고 역할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그 성격도 훨씬 더 협소해졌다. 이른바 ‘마담 이미지’는 어느새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 <게임의 법칙>(1994)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리허설>(1995) <비트>(1997)에서 그녀에게 허락된 공간은 술집 카운터뿐이었다.
혹은 그녀는 부정한 여인이었다. <삼인조>(1997)에선 남편 몰래 다른 남자를 불러들였고 <H>(2002)에선 얽혀 있는 사연 속에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하지만 관록의 여배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말죽거리 잔혹사>(2004)는 한 여배우가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가지게 된 임팩트가 강하게 어필했던 작품. 자신의 청춘을 사로잡았던 여배우로 심혜진과 김부선을 꼽던 유하 감독은 분식집의 인심 좋은 글래머 주인아줌마 역을 김부선에게 맡겼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발정기 고등학생들의 싱싱한 육체를 탐하는 농익은 여인으로 등장해, 현수(권상우 분)가 떡볶이를 먹고 있을 때 옆에서 맥주 한 잔 걸치며 말을 던진다. “한 잔… 할래?”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무슨 고민 있어? 여자친구랑 잘 안 돼?” 마지막 멘트가 이어진다. “또래 여자애들은 남자를 잘 몰라서 그래” 그리고, 몸을 밀착시킨다.
이후 김부선은 짧은 봄날을 즐긴다. <인어공주>(2004)에선 일상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었고, 드라마 <불새>(2004)에선 서문수(박근형)의 아내 역을 맡아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친절한 금자씨>(2005) <너는 내 운명>(2005)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등 흥행작에 연달아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 외적으로는 대마초 합법화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어느덧 40대 후반이 된 김부선. 사연 많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한참 연기력에 물이 올랐던 30대엔 고정된 이미지로 소모되었고 충무로가 그녀에게 요구한 건 오로지 퇴폐미였다. 그녀에게 존재했던 왠지 모를 해방감과 감수성 풍부한 표정은 그렇게 묻혀갔으며, 시크한 느낌도 그 색이 바래졌다. 요즘은 활동이 뜸한 그녀. 하지만 언제 갑자기 카리스마 강한 목소리로 들이닥칠지 모른다. 딸인 이미소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