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구름바다와 어우러진 안반데기의 배추밭 풍경. 배추들이 햇발을 받아 마치 장미꽃처럼 피어난다. |
사진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한 컷’을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린다. 시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한마디로 요즘 ‘꽂힌 곳’이 있다. 새벽마다 구름이 바다처럼 깔리는 하늘 아래 가장 높은 배추밭 ‘안반데기’다.
안반데기는 강원도 강릉과 평창의 경계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속한다. 안반데기의 ‘안반’은 떡메를 칠 때 받치는 넓고 두꺼운 나무판을 가리키고, ‘데기’는 평평한 구릉을 뜻한다. 마을이 자리 잡은 곳이 높은 구릉지면서도 아늑하고 평평한 곳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안반데기는 고루포기산(1238m)의 남쪽에 형성돼 있다. 안반데기는 1960년대 강원도 산간 화전민들을 불러 모아 경작시키면서 조성됐다. 그 면적이 무려 60만 평(200만㎡)에 이르니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넓다. 국내 최대 규모다.
안반데기에서는 감자와 배추 등 고랭지 채소를 재배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감자를 더러 심었지만, 요즘에는 거의가 배추밭이다. 1000m가 넘는 안반데기에서 키운 채소들은 무르지 않으며 달다. 마을에는 여남은 채의 집들이 보이지만, 항상 사람들이 살지는 않는다. 봄부터 늦여름까지 농사를 지을 동안만 거주한다. 여름배추의 수확이 끝나고 나면 가을을 건너뛰다시피 삭풍과 함께 겨울이 찾아오는데, 그 때면 마을이 텅 빈다.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지 않다. 눈이라도 한번 내리면 차가 오르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옴짝달싹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고랭지 채소가 심어진 안반데기 전경(왼쪽)과 도암댐 가는 길 숲 너머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 |
강릉에 적을 두고 있지만, 안반데기는 오히려 평창에서 가깝다.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에서 안반데기 올라가는 임도가 나 있는데, 약 3㎞가 채 안 된다. 횡계에서 용평리조트 방면으로 가다보면 수하리 가는 길이 갈린다. 그 길을 따라 약 10㎞쯤 달리다보면 왼쪽으로 안반데기 이정표가 나타난다.
안반데기는 운해와 어우러진 해오름을 보기 위해 새벽에 찾아야 하는 곳이다. 새벽잠이 많다면 평생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 안반데기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 요즘 해 뜨는 시각은 새벽 5시30분경이다. 그러나 정확히 그 시간을 맞춰서는 안 된다. 적어도 30분은 여유를 두고 도착해야 한다. 해가 떠오르기 전의 여명이 무척 아름답다.
횡계에서 안반데기를 향해 가노라면 날씨에 대한 의심이 계속해서 들곤 한다. 횡계 시내를 지날 때만 해도 하늘에서 햇빛에 부서지는 유리가루처럼 별이 반짝이며 쏟아질 듯했는데, 수하리길을 따라 들어가면 갈수록 별은커녕 하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불안정으로 인해 이 모양인가 싶은 생각이 열두 번도 더 들며 길을 돌리느냐 마느냐 갈등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물안개 때문이다. 길 오른쪽으로 흐르는 송천계곡에서 피어올라 하늘을 가리는 물안개는 점점 더 짙고 무거워지며 마치 비처럼 차창에 이슬을 내린다.
송천계곡길과 작별을 고하고 안반데기로 오르는 임도에 들면 이번에는 나무들이 하늘을 가린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된 숲을 길이 관통하는데, 나무들의 키가 아주 크다. 숲은 마치 밀림처럼 울창하다. 길가에는 물봉선이 융단처럼 깔린 곳들도 있지만, 어둠 속에서는 보통의 풀더미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올라 안반데기에 다다르자 비로소 하늘이 열린다. 이제껏 뚫고 온 안개는 서로 끌어안으며 구름바다를 이루었고, 여명의 하늘은 1초가 다르게 검은 색을 지우며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배추밭. 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처음에는 마치 목초지처럼 보이지만,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평면에 불과하던 그 ‘풀밭’이 입체감을 띤다. 능선의 사면을 따라 촘촘히 심어 놓은 배추들이 황금색 햇발을 받아 장미꽃처럼 활짝 피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구름바다 위로 만개한 수천만 송이의 장미꽃을.
안반데기의 배추밭 풍경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구름바다는 도암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수하리 앞을 흐르는 송천계곡은 안반데기 갈림길을 지나 약 3㎞쯤 더 흘러가 도암댐에 의해 한 곳에 모인다. 도암댐은 1989년 생긴 댐이다. 이 댐이 생기기 전만해도 안반데기의 구름바다는 볼 수 없었다. 구름의 진원인 도암댐의 새벽 풍경도 아주 일품인데,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하늘색으로 살짝 채색을 한 수묵담채화를 연상시킨다.
한편, 안반데기 여행길에는 둘러볼 곳들이 많다. 횡계 일원의 양떼목장과 대관령목장, 월정사 등은 익히 알려진 여행지다. 반면, 한국자생식물원은 그에 비해 유명세가 덜 하지만 꼭 한 번 들러볼 만하다. 토종 꽃과 나무들로만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이다. 오대산 자락의 월정사를 향해 가다가 우측 갈림길을 택하면 금방이다. 이 식물원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는 식물군에서부터 희귀 멸종 위기 식물, 한국 특산식물 등 수천종의 우리 식물을 원래의 식생 환경에 가장 가깝게 보존하고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횡계IC→우회전 후 용평리조트 방면→도암댐 방면→안반덕→도암댐 ▲먹거리: 횡계에 꿩만둣국을 잘하는 집이 있다. 토박이들이 인정하는 ‘가시머리식당(033-335-5818)’이 그곳. 횡계 시내에서 양떼목장 쪽으로 가다보면 고랭지농업연구소 지나 있다. 꿩 특유의 냄새가 조금 있지만 고기맛이 담백하니 좋다. 양도 푸짐하다. 1인분 6천원 ▲잠자리: 횡계 시내에 ‘대관령호텔(033-335-3301)’이 있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모텔이라고 보면 된다. 시내에서 안반덕 방향으로 가는 길에 ‘대관령펜션 하늘지기(033-336-6485)’, ‘용평리조트콘도(033-335-5757)’ 등도 있다. ▲문의: 평창군 문화관광과 033-330-2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