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삼성가 일원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가 인사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바로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손자이자 이제는 사라진 새한그룹 계열사 사장을 역임했던 이재찬 씨(46)의 죽음에 얽힌 안타까운 시선들이다.
지난 2000년 워크아웃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고인은 이후 투자활동을 벌여왔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최근에는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가 과연 어떤 사업에 투자를 했는지, 또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그가 마지막까지 매진했던 사업의 실체를 포착할 수 있었다.
지난 18일 오전 7시경, 서울 이촌동의 한 아파트 1층 주차장에서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손자 이재찬 씨(46)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 씨가 자신이 거주하던 5층 집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씨는 오래전부터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부인과 별거하며 혼자 살았으며 최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이 씨는 경복고와 미국 디트로이트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 곧바로 아버지 고 이창희 회장이 설립한 새한미디어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창희 씨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차남. 이재찬 씨는 1992년 ㈜새한 계열사인 디지털미디어를 설립해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새한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새한가(家)는 그룹의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겨주게 된다. 이에 따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 씨는 이후 특별한 직업 없이 투자활동만 전념해 왔고 수익성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가 새한그룹 몰락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연 어떻게 생활을 해 왔는지, 무엇이 그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만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바가 없다.
▲ 지난 20일 고 이병철 회장의 손자인 이재찬 씨의 발인식에서 유가족이 영정 사진을 선두로 고인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이런 가운데 이 씨가 회사를 설립해 지난해 6월까지 운영하며 재기를 꿈꿔왔던 정황이 포착돼 관심이 쏠린다. 지난 2006년 2월 이 씨가 광고, 출판 및 DVD, 영화 제작,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찬월드미디어주식회사(찬월드)를 설립해 운영했던 것으로 확인된 것.
찬월드 법인등기부를 살펴보면 대표이사는 박 아무개 씨로 등재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 이재찬 씨가 지분 51%(2만 400주)를 보유해 실질적 사주였던 것으로 보인다. 등기부상 1주의 액면가는 5000원, 발행 주식 총수는 4만 주(액면가 총액 2억 원)다. 회사명 역시 이재찬 씨 이름의 끝 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찬월드가 유지된 것도 잠시였을 뿐, 회사는 설립된 지 불과 2년여 만에 폐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여행사로 사업 방향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역시 불과 1년여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C 빌딩 3층에 위치해 있던 해당 사업장은 지난 2009년 6월경 짐을 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새한그룹에 몸을 담고 있을 때부터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이 씨가 직접 설립해 운영했던 새한그룹 계열사 디지털미디어 역시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주력으로 삼았던 업체다.
이에 비춰볼 때 이 씨가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으로 재기를 꿈꾸다가 지난 2009년 6월 이조차 실패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지인들에 따르면 이 씨는 그나마 자산으로 남아 있던 웅진캐미칼(옛 ㈜새한) 주식 전량을 이미 2004년 다 팔아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로 찬월드마저 폐업에 이르면서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망 직전 이 씨가 살던 집 역시 월세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자살한 이재찬 씨가 살았던 아파트에서 한 주민이 사건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
한편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새한가의 다른 구성원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씨의 형이자 장남인 이재관 씨(47)는 새한그룹이 무너진 이후 지금껏 특별히 벌이는 사업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에서 이 씨의 거의 유일한 재산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용산구 이태원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뿐이다. 이 씨는 이곳에서 모친 이영자 씨(73)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택은 지난 2005년부터 세금 문제 등으로 인한 가압류와 해제를 반복하고 있다. 부동산등기부상 가장 최근 가압류를 당한 것은 지난 2008년 5월 16일. 채권자는 서울보증보험으로 청구금액은 22억 7500만 원이다. 해당 압류가 해제된 것은 불과 한 달여 전인 올 7월 13일. 2005년, 2006년에 이어 세 번째 압류였다.
삼남 이재원 씨(44)는 현재 서울 한 지역에서 석유 도매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에 따르면 이 씨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막내이자 장녀인 이혜진 씨(43)는 새한그룹이 공중분해된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새한그룹 몰락 이후 이들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할 법한 재벌가, 그것도 범삼성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다. 빈소도 차리지 않은 채 장례를 마친 고 이재찬 씨의 시신은 지난 20일 발인됐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
IMF 때 공격경영 ‘화근’
새한그룹은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차남인 고 이창희 회장이 설립한 기업집단이다. 이 회장은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와 마찰을 빚다가 삼성그룹 경영에서 배제됐고 1967년 삼성으로부터 독립해 오디오·카세트테이프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를 설립했다. 이후 1980년 새한전자를 인수·합병하면서 사명을 새한미디어로 바꿨고 1996년 CI(기업 이미지 통합) 작업을 거쳐 새한그룹으로 최종 사명을 교체했다.
1991년 이 회장이 불과 58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그간 경영일선에 참여하지 않았던 부인 이영자 씨(73)가 새한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당시 불과 28세에 사장을 맡았던 큰아들 이재관 씨(47)는 1997년 부회장직에 오르며 새한그룹의 실질적인 오너가 됐다. 막내인 이혜진 씨(여·43)를 제외하고, 경영일선에 참여하고 있던 차남 고 이재찬 씨(46), 삼남 이재원 씨(44) 등 가족들이 차례차례 새한그룹의 고위급 임원으로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새한그룹은 1997년 이후 급속히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IMF 위기 속에서 이례적인 공격경영을 펼친 것이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구조조정 등 축소경영에 주력했지만 새한은 공장 투자, 계열사 설립 등 오히려 규모를 확장했다. 이런 와중에 주력으로 삼았던 화학섬유와 비디오테이프 사업마저 침체기를 맞으면서 손실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5년 말 7000억 원대였던 부채는 1999년 말 1조 5000억여 원(부채비율 257%)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일본 도레이사와 합작법인 설립으로 수억 달러에 달하는 외자를 유치해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2000년 채권 금융기관들이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새한은 끝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재관 씨가 경영권을 맡은 지 불과 3년여 만의 일이었다. 한때 범삼성가로, 재계서열 27위에 계열사만 12개에 이르던 새한그룹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