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장례식장에선 많은 이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고인이 된 그를 기리며 안타까움에 모두들 한숨짓는 사이, 한곳에서는 또 다른 이들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바로 연예인들의 스타일리스트들. 그들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고인의 넋을 기리며 슬퍼하였으나, 그들에겐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바로 때마다 찾아오는 블랙 의상 구하기 전쟁. 그들은 연예계의 잦은 사망 소식에 의상 구하기가 가히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연예인들의 특성상 빈소에 조문을 올 때도 품위를 지켜야 하므로 검정 계통의 의상에 늘 신경을 쓰게 되고, 그 고민은 늘 스타일리스트 몫이라는 것. 문제는 시간적 여유 없이 동시에 수많은 연예인들이 한정된 협찬사에서 옷을 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때문에 시상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스타일리스트들의 눈치 보기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후문이다. 레드카펫과 블랙카펫의 유일한 공통점인 셈이다.
마땅한 옷을 구하지 못한 연예인들은 자신의 옷을 입거나 미처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조문을 오곤 하는데, 이는 곧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다. 앙드레 김과 각별한 인연을 자랑했던 김희선의 장례식장 해골스카프 논란(팬들 사이에선 앙드레김의 생전 선물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이나 원더걸스 멤버 선예의 부친상에 미니스커트와 하이힐 차림으로 온 동료멤버 소희, 고 이언의 장례식장에 짧은 팬츠를 입고 나타난 소녀시대 효연 등이 본의 아니게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은 것. 애써 준비한 검정색 조문 복장임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에게 꼬투리를 잡히기도 한다. 때문에 10년차 중견 개그맨 K는 아예 자신의 차량에 검정색 의상을 준비해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K는 “잊을 만하면 자살, 사망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니 안타깝다”며 “블랙 의상을 늘 갖고 다녀야 하는 이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한편 최근 고 앙드레 김의 장례식장에서 네티즌들로부터 진정한 조문객다웠다는 평가를 받는 이는 바로 고현정이다. 취재진을 의식한 여배우들의 의상과 화장 경쟁에서 저만치 떠나 쉽게 공개하기 힘든 민낯의 창백한 얼굴은 물론 정돈되지 않은 헤어스타일과 마른 입술, 그리고 안경을 착용한 모습 등 고인을 향한 슬픔이 가장 절절하게 묻어났다는 평을 받았다. 고인을 향한 슬픔과 애도의 마음에 순위를 매길 수야 없겠지만, 다른 연예인에 비해 진정성이 묻어났다는 게 네티즌들의 평가다.
스타 조문객들의 가장 큰 부담은 누가 뭐래도 방송사의 과열 취재 경쟁이다. 슬픔에 못 이겨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마당에 코 앞까지 들이대는 방송사 카메라가 그들에겐 여간 불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예민해진 스타들은 종종 카메라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곤 하는데, 2년 전 생을 마감한 배우 이언의 장례식장에 조문 온 이선균과 이천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선균은 자신에게 막무가내 인터뷰를 시도하는 방송팀을 향해 평소 이미지와는 다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항의한 바 있다. 이천희 역시 “더 이상의 인터뷰를 하지 말아 달라는 표시로 담배를 피우겠다”는 말로 언짢은 심경을 취재진에게 전하기도 했다. 고 최진실의 장례식장에선 그의 절친이었던 엄정화에게 취재진의 질문과 카메라 세례가 쏟아지자 엄정화도 “정말 할 말이 없으니 그런 줄 알아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취재진의 성화에 못 이겨 애써 인터뷰를 해주었으나, 해당 인터뷰를 편집해달라는 스타들의 부탁도 종종 있다. 이유는 대부분 슬픔을 이기고자 마신 술 때문인데, 혀가 꼬인 목소리로 횡설수설한 모습이 방송에 나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최근 안타깝게 자살한 고 최진영의 장례식장에서 술에 취해 고인의 이름을 울부짖었던 배우 K는 매니저를 통해 정중히 인터뷰 내용을 편집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해외 일정으로 인해 고 앙드레 김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비추질 못해 네티즌들의 오해를 샀던 장동건의 경우처럼 스타의 조문 불참은 억측을 낳기도 한다. 지난 2007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 정다빈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비추질 않았던 서민정과 한예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다빈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한 바 있는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정다빈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나타내질 않았는데, 이를 두고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던 것. 당시 서민정은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으며 한예슬 역시 미국 출국 직전 공항에서 소식을 접해 조문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이들의 소속사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만 했다.
조문을 안 가도 문제요, 가도 문제가 되는 상황이 있으니 바로 물의 연예인들의 경우다. 각각 뺑소니 논란과 폭행 논란에 휘말려 공식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권상우와 이혁재는 고 앙드레 김의 장례식에 모습을 비추기까지 상당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참석해야 한다는 본인들의 의지와는 별개로 조문 방법과 시기 등에 대해서 소속사에선 내부회의까지 거쳤다는 후문.
그런가 하면 별다른 친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장례식장에 나타나 연예관계자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이도 있는데 개그맨 Y가 대표적이다. Y는 연예인 경조사에 늘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Y의 측근에 따르면 예전과 달리 특별한 방송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 Y 입장에선 장례식장에 가는 이유는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함이라고 한다.
한편 톱 여배우 K는 너무 가식적인 조문으로 동료 연예인들의 비난을 사기도 한다. 심지어 인기 개그우먼 L은 사석에서 K의 조문 모습을 흉내 내며 ‘가식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L에 따르면 K는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 일단 취재진 앞에서 5초가량 멈춘 채 하염없이 슬픈 표정을 지어 취재진에게 좋은 그림(?)을 제공한다고 한다. 이어 최대한 느린 발걸음으로 빈소를 향해 걸어간다고. L은 “한 장례식장에서 K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고 뒤에서 혼잣말로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