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앙드레 김의 빈소에는 수많은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그 조문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재벌가와 정관계 상류층 인사들과 연예인이다. 고가의 의상을 디자인하는 까닭에 유명 디자이너의 인맥이 크게 상류층과 연예계로 분류되는 것. 이는 다른 유명 디자이너 역시 마찬가지다. 유명 디자이너들은 상류층과 연예계 중간 자리에 위치한 까닭에 두 부류 인사들이 친분을 쌓아가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왜유명 디자이너들이 연예인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을 것일까. 물론 기본적으론 의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이너 입장에선 자신의 옷을 유명 연예인이 입음으로써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스타 입장에선 유명 디자이너가 자신을 위해 만든 의상을 입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관계는 의상을 뛰어 넘어 사생활까지 공유할 정도로 가까워지곤 한다. 연예관계자들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연예인과 같은 셀러브리티(유명인사)들과 자주 접하다 보니 그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데다 디자이너 고유의 섬세함까지 갖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유명 디자이너의 인맥, 특히 재벌가를 비롯한 상류층과의 친분도 연예인 입장에선 매력적이다. 유명 디자이너와 각별한 사이가 되면 그와 친한 상류층 여성들과도 자연스레 친분을 쌓아갈 수 있는 것.
이런 까닭에 최근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는 정구호다. 유명 디자이너인 그는 현재 제일모직 크리에이티브디렉터(전무)로 활동하고 있다. 의상 디자인 뿐 아니라 요리 인테리어 등에서도 빼어난 재능을 자랑하는 그는 삼성 일가와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다. 장동건과 고소영의 결혼식을 통해 드러난 고소영과 호텔신라 이부진 전무,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와의 친분이 주목을 받았는데 여기서 제일모직에 소속된 정구호 디자이너의 존재감이 다시 한 번 부각됐었다. 그는 고소영 결혼식 피로연의 집기를 직접 담당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그와 친해지려는 연예인이 상당수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와 각별한 사이인 연예인으로는 장미희 정도가 손에 꼽힌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미스지컬렉션의 지춘희 디자이너가 가장 탄탄한 상류층과 톱스타 인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지춘희 디자이너는 직설적인 충고를 잘하는 성격인 데다 의리도 있어 친한 연예인들에게 인생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많이 해주는 편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연예계는 물론 상류층과도 오랜 친분을 쌓아온 저력이 엿보인다. 양쪽을 다 잘 알고 있는 만큼 가장 실질적인 상담과 충고를 해줄 수 있는 것.
고현정의 경우 외부 노출을 최대한 피하던 결혼 기간에도 미스지컬렉션을 자주 찾아 지춘희 디자이너를 만나곤 했고 때론 두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혼한 뒤에는 4년가량 지춘희 디자이너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심은하 역시 2000년대 초 한 기업가와 결혼 얘기가 오가다 헤어지고 은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춘희 디자이너를 자주 만나며 크게 의지했다고 한다. 지상욱 전 서울시장 후보와 결혼할 당시에도 마찬가지. 게다가 지춘희 디자이너는 심은하에게 결혼식에서 입을 이브닝드레스까지 선물했다. 이런 성의 있는 배려에 심은하는 한국에선 구하기 힘든 외국 명품 시계를 지춘희 디자이너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고현정도 명품 선물을 종종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나영희 강수연 황신혜 전도연 채시라 박경림 최지우 김하늘 한채영, 고 장진영 등이 지춘희 디자이너 계보에 속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상류층과 연관된 연예인들만 유명 디자이너와 사적인 내용을 상담할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강희숙 디자이너는 친한 연예인들에게 다정다감한 언니로 통한다. 김희애 이영애 윤석화 등 3인은 강희숙 디자이너의 쇼가 열리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참석하는 직계 라인이다. 이영애의 추천으로 CF에 동반 출연하기도 했다. 이들 역시 결혼 생활 등 모든 사생활을 상의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이외에 오연수 김선아 이태란 등도 강희숙 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연예인이다.
손정완 디자이너는 가까운 연예인들과 아예 친구처럼 지낼 정도다. 특히 최화정과 막역한 친구사이다. 그러다 보니 연예계 마당발인 최화정과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들과 두루 인연을 맺고 있다. 또한 김태희 윤은혜 정려원 황정음 제시카 등 젊은 여자 연예인들도 로맨틱한 그의 의상을 좋아한다.
때론 유명 디자이너와 인연을 맺어 상류층 인사로부터 결혼상대자를 소개받거나 기업 CF모델로 발탁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연예인도 있다. 과거에는 유명 디자이너를 매개로 친분을 쌓아 연예인들이 자연스레 이런 도움을 받곤 했다고 하지만 최근엔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연예인이 많아진 것.
디자이너들 입장에선 연예인과의 친분이 마케팅을 위해 필수적이다. 디자이너의 개인 쇼에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주느냐가 그가 유명 디자이너인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확실한 자기 라인 연예인을 갖추지 못한 디자이너들은 쇼를 앞두고 연예인 섭외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의상 협찬 약속에 값비싼 선물, 그리고 거마비는 기본이다. 이 정도로는 섭외가 힘든 톱스타들에게 마지막 카드인 상류층과의 인맥을 활용하는 것. 게다가 요즘에는 몇몇 디자이너들이 직원이나 친분 있는 스타일리스트 등을 통해 남자 연예인과 상류층 여성의 부적절한 만남을 소개해주기도 한다는 소문이 있다.
연예인과 유명 디자이너의 인연이 사적인 친분을 뛰어 넘어 아름다운 미담을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혜자와 이광희 디자이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김혜자와의 친분으로 인해 2009년 3월 남부 수단 톤즈지역을 방문했다. 김혜자가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친선대사인 까닭에 구호 현장을 직접 찾은 것. 이를 계기로 이광희 디자이너는 직접 사단법인 ‘희망의 망고나무’를 만들어 배고픈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아프리카에 영양가 풍부하고 열량 높은 망고나무 심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