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골목. 동피랑은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
통영은 바다의 도시다. 조선수군통제영이 들어섰던 곳이라고 해서 통영이다. 300년 전 이곳 앞바다에서는 나라의 명운을 건 큰 싸움이 있었다. 한산대첩이다. 푸르디푸르고 바람마저 잠든 이 바다에서 그 치열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도남동에서 유람선을 타고 통영반도가 품은 한려수도의 비경을 휘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관광은 충분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발길은 통영시 동호동의 작은 마을을 성지순례하듯 찾기 시작했다. 한국의 산토리니 동피랑이다.
동피랑은 동호동 중앙시장 뒤편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40여 가구가 모여 산다. 집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많은 곳들이 비어 있다. 동피랑은 ‘동쪽 비랑’이라는 뜻이다. 비랑은 벼랑의 경남사투리다. 동비랑이라 불리다가 자연스럽게 동피랑으로 바뀌었다.
지금이야 동피랑이 통영의 제1명소로 자리 잡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마을은 철거될 예정이었다. 마을 꼭대기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었는데, 이 동네를 철거하고 그 포루를 복원해 공원화한다는 계획이 잡혀 있었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운명의 마을은 그러나 벽화와 함께 되살아났다.
고창의 안현돋움볕마을과 함께 전국에 벽화 붐을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이곳 동피랑이다. 벽화마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통영지역의 환경운동단체인 푸른통영21이 벽화공모전을 열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솔직히 볼품없는 달동네를 보기 좋게 한번 치장해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한 것인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졌다. 2007년 10월부터 전국의 미술대학 18개 팀이 벽화작업에 동참했다. 후줄근하던 벽에 꽃이 피었고, 새가 날았고, 구름이 흘렀고, 파도가 출렁였다. 이 작업은 1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해마다 비어 있는 새로운 벽을 찾아내어 그림으로 채워 나가고 있다.
▲ 동파랑에서 보이는 통영의 푸른 바다(위). 동피랑 마을의 골목은 벽화와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아래 왼쪽). 마을로 오르는 길 입구에 위치한 구멍가게 이름이 재미있다. |
통영항 초입의 나폴리모텔 옆길로 조금 오르자 동남쪽을 내다보는 볕 잘 드는 언덕 위 마을이 보였다. 동피랑이다. 마을은 집과 담벼락마다 알록달록 그림으로 가득했다. 바로 그림이 있는 집의 계단 쪽으로 오르려 하니 한 주민이 입구는 따로 있다고 말해준다. 100m쯤 더 가면 그곳에 카페가 있고 오른쪽으로 마을로 오르는 길이 있단다.
카페의 정체는 다름 아닌 구멍가게다. ‘동피랑 파고다 카페’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잡화와 과자, 술, 담배 따위를 판다. 카페라 할 만한 구석이 있다면 한 잔에 500원을 받고 직접 탄 커피를 판다는 것 정도. 하긴 카페라고 한들, 또는 구멍가게라고 한들 그 누가 시비를 걸 것인가. 다만 보고 즐거우면 그뿐인 것을.
파고다 카페 바로 위쪽으로 난 길을 따라 마을로 든다. 입구의 담벼락에 ‘동피랑에 꿈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이 크게 씌어 있다. 그 꿈은 아마도 영원히 마을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꿈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마을을 돌아본다. 파스텔 톤으로 치장한 지붕과 벽이 참 곱다. 순간 지중해 어느 바닷가 마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정신을 깨우는 것은 느닷없이 담벼락에서 ‘튀어나온’ 물고기다. 눈에 하트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사랑에 빠진 물고기다. 그래 이 참에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동피랑에는 유독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을 따라 걸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전망 좋은 어느 집 옥상에 올라 그 경계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서로에게 기대고픈 마음이 불현듯 들고 사랑의 감정이 움튼다. 그래서 우리는 동피랑을 ‘사랑의 메신저’라고도 부른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다보면 타박타박 들리는 발소리가 어느 집 누구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데 이제 동피랑은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되면서 누군지 알 수 없는 발자국소리들로 시끄럽다. 사람들의 방문이 귀찮지나 않을까. 그러나 올해 동피랑에 시집온 지 59년째라는 이양순 할머니는 사람구경하고 좋기만 하단다. 여행객들이 지나가다가 말이라도 걸면 할머니는 이것저것 옛날이야기도 끄집어내고 속에 맺힌 것도 풀어낸다. 그것이 그날 하루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동피랑에 가면 꼭 그렇게 해보자. 파고다 카페 앞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면 더 좋고, 그곳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전망이 좋은 곳에 앉아 그저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비룡분기점→대전통영간고속국도→통영IC→14번 국도→미늘삼거리에서 좌회전→통영항 나폴리모텔 옆길 ▲먹거리: 푸짐한 해산물에 술 한잔 하고 싶다면 다찌집을 찾아볼 일이다. 육고기는 하나도 없이 바다에서 나는 것들로만 안주로 한 상을 가득 채운다. 기본으로 나오는 것들이 각종 회와 석화, 해삼, 멍게, 개불, 볼떼기구이, 생선구이, 돌멍게, 물메기 알… 등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들다. 안주로만 배를 채울 수도 있다. 보통 5만 원으로 시작하는데, 특별한 해산물들을 추가하면 가격이 올라간다. 동피랑에서 충무교를 건너 봉평동으로 가면 탑마트 인근에 울산다찌(055-645-1350)가 있다. 동피랑에서 10분쯤 걸린다. ▲잠자리: 통영항 여객선터미널 뒤편에 충무비치호텔(055-642-8181)이 있다. 주변에는 윈저모텔(055-648-8980) 등 모텔들이 많다. 한려수도유람선터미널이 있는 도남동으로 가면 충무관광호텔(055-645-2091), 마리나리조트(055-646-7001)가 있다. ▲문의: 통영시청 관광과 055-650-4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