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위원장 김응석)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외주제작드라마의 전면 촬영거부 입장을 밝혔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8월 31일, 외주 드라마 촬영 중단 돌입 하루 전 한예조 사무실은 무척 분주했다. 집행부가 연이어 삭발을 했고 촬영 중단 돌입을 위한 실무 준비도 한창이었다. 그러는 한편 공중파 방송 3사와의 협상도 계속됐다.
이날 한예조 사무실을 찾은 기자는 외주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외주 리베이트 의혹이란 편성권을 가진 공중파 방송사와 편성을 받아야만 캐스팅 및 투자 유치가 가능한 외주 제작사 사이에 불법적인 거래가 존재하느냐를 둘러싼 의혹을 의미한다.
한예조 김영선 수석 부위원장은 “부실한 외주제작사가 방송사에서 편성을 받아 드라마를 제작했다가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연결된 사례가 많다”면서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편성을 주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방송사는 정반대 입장이다. MBC는 한예조의 외주 드라마 촬영 거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며 “외주제작사가 신고제인 까닭에 탄탄한 회사인지 아닌지 검증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예조 사무실에서 만난 다른 관계자는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술 접대는 기본이고 뒷돈으로 로비를 하는 경우는 물론 심지어 방송사 퇴직 이후 임원급으로 취업을 보장 받는 등의 뒷거래가 무성하다는 얘기가 많다. 소속 연기자들이 실제로 룸살롱에서 외주제작사 대표가 PD 등 방송국 관계자를 접대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이런 불법적인 외주 리베이트가 결국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이어져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연기자의 몫이 된다는 것. 폭풍 전야와도 같던 이날 한예조 사무실 분위기에선 외주 리베이트 의혹이 커다란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까지 엿보였다.
9월 1일 오후 1시 한예조의 기자회견이 열렸지만 그 직전 KBS와의 협상이 타결됐고 SBS도 협상 타결이 임박해졌다. 3개 공중파 방송사 가운데 두 곳이 한예조와 협상을 타결하면서 외주 리베이트 의혹을 쟁점화할 필요가 사라졌다. 방송사와의 협상을 전담해온 김 부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방송사와 외주 제작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점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에도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지면 자연스레 외주 리베이트와 관련된 의혹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MBC와의 협상 결렬로 촬영 중단이 진행하며 한예조 김응석 위원장이 “MBC 외주 편성 시스템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외주 리베이트 의혹을 간접적으로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외주 리베이트 의혹이 아닌 실제로 비정상적인 MBC의 외주 시스템을 언급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설명은 한예조 문제갑 정책위원이 들려줬다.
문 위원에 따르면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2009 외인구단> 이후 MBC가 방영권만 구입하는 형식으로 외주제작사에 회당 6000만 원가량만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대개의 외주 제작 드라마가 편당 1억 5000만 원가량의 제작비를 받는 데 반해 크게 모자라는 액수다. 게다가 MBC가 자회사인 MBC 미술센터에 회당 3000만 원가량의 미술 제작비를 직접 지급해 외주 제작사가 실제로 받는 돈은 회당 3000여만 원에 불과하다. 이는 스타급 배우 한두 명의 출연료도 안 되는 액수다.
게다가 저가에 방영권만 구입한 MBC가 해외 판권까지 행사하려 한 사례도 있다. “<2009 외인구단>은 일본 방송사에 수십억 원에 판매될 예정이었지만 벌써 일본 비디오 시장에 16부작 가운데 12부 분량이 배포돼 있었다”는 문 위원은 “해외 판권이 없는 MBC가 먼저 일본 비디오 시장에 판 것이었는데 제작사의 항의에 MBC는 실수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말한다. 결국 외주 제작사는 MBC에 소송을 제기했고 출연료는 미지급 상태다.
김 위원장은 “MBC는 직원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넘고 후생복지 기금도 매년 1인당 수천만 원에 이르는 데다 지난해 순수익이 746억 원으로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런데 20여억 원 남짓한 배우들의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이다”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지난 9월 2일 MBC <글로리아> 일산 촬영 현장을 방문해 촬영 중단을 성사시킨 뒤 김 위원장은 “우리뿐 아니라 작가 등 스태프, 보조출연자 등 외주 시스템으로 인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이들이 많다”면서 “만약 이번에도 출연료 미지급 사태를 비롯한 외주 제작 시스템의 문제점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면 다른 직군 단체들과의 정책연대까지 고려 중인데 이럴 경우 자칫 방송 민란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한예조는 출연료 미지급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실제 목표는 다시는 출연료 미지급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송국이 외주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예조는 이번에도 외주 시스템이 정상화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외주 리베이트 의혹 관련한 물증 확보까지 고려중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