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멀라 앤더슨만큼 급경사로 점철된 인생 곡선을 지닌 스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그녀는 연예계에 전혀 관심 없는 그냥 예쁘고 순박한 캐나다 처녀였다. 스물두 살 되던 1989년 여름, 캐나다 풋볼 리그의 브리티시 콜럼비아 라이언스 게임을 보러 갔던 그녀는 우연히 카메라에 잡혔고 전광판을 가득 채운 그녀의 모습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당시 라바트 맥주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그녀는 라바트의 홍보 담당자에게 픽업되어 광고 모델이 되었다.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가 그녀를 놓칠 리 없었고 1989년 10월호 표지 모델이 된 후 그녀는 총 11번에 걸쳐 <플레이보이>의 커버걸이 되었다(<플레이보이> 사상 최다 기록).
이후 앤더슨은 승승장구했다. 1991년에 시트콤 <아빠 뭐하세요(Home Improvement)>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SOS 해양 구조대>의 C.J. 파커 역에 캐스팅되었고, 이 프로그램이 전 세계 140여 개국에서 방영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되면서 패멀라 앤더슨은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거듭되는 성형수술로 36인치에 다다른 가슴 덕분에 글래머 스타로 각광받게 된 앤더슨의 황홀한 육체와 섹시함에 찬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패션 디자이너 미스터 블랙웰은 “우리 시대의 마릴린 먼로”라고 불렀고, 패션 디자이너 리치 리치는 “그녀는 옷을 입지 않아도 마치 섹시한 드레스를 입은 듯하다. 그녀는 먼로와 브리지트 바르도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만난 지 3일 만에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와 결혼한 것도 쇼킹한 뉴스였다. 하지만 더 쇼킹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은밀한 홈 비디오가 유출된 사건이었다. 집 공사를 할 때 인부들이 훔쳐갔다는 설과 자작극이라는 설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인터넷에 유출된 이 비디오는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후 아예 상업화되어 30만 부 이상 팔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미 육체파 여배우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패멀라 앤더슨과 록 뮤지션의 성 생활은 만천하에 알려졌고 그녀는 기네스북에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스타’로 기록되었다. <바브 와이어>(1996) 촬영 땐 유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고, 1998년엔 토미 리와 이혼했다(토미 리는 앤더슨을 폭행한 죄로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뮤지션 키드 록과, 패리스 힐튼의 전 애인인 릭 살로몬과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했다. 게다가 문신을 새길 때 썼던 바늘이 문제가 되어 그녀는 C형 간염에 걸렸다.
1999년에 “나는 성형수술은 절대로 권하지 않는다. 여성의 몸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나는 내 가슴에 애증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가슴에 넣었던 보형물을 제거한 앤더슨은 동물 보호 운동의 열렬한 투사가 되어 누드로 시위를 하고 캠페인 광고를 찍었다. 하지만 섹스 비디오 스캔들 이후 그녀는 악취미로 가득한 패러디 영화에서 조롱당하고 실명으로 등장한 <보랏>(06)에선 보랏(사샤 바론 코헨)의 스토킹에 시달리는 악몽을 겪어야 했다.
“나는 인생에서 온갖 페미니스트적 경험을 겪었다.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는 강한 여성적 이미지를 사용해 사회에 강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했던 패멀라 앤더슨. 하지만 그녀는 광기에 가까운 대중의 관심 속에서 원래는 흑갈색 머리를 타고났지만 끊임없이 염색을 해가며 전형적인 ‘블론드 백치미’의 여배우로 살아가야 했다. 어느덧 43세의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섹스 심벌로 소비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이젠 조금은 안쓰럽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