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동열 감독 |
“양팀 응원하러 왔습니다.” 9월 30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삼성 김평호 주루코치는 “어쩐 일로 잠실까지 왔느냐?”라는 질문에 농담으로 응수했다. 이날 삼성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 롯데-두산전에 김 코치를 포함해 4명의 전력분석원을 파견했다.
“정말입니다. 어느 팀이 이기든 5차전까지 가라고 응원하러 왔어요.” 농담 같지만 김 코치의 말은 진심이었다. 준플레이오프 5차전은 10월 5일에 열린다. 플레이오프는 7일부터 시작한다. 휴식 기간이 고작 이틀이다.
5차전까지 혈투를 치르면 투수진이 소모되고, 체력은 바닥나게 마련이다. 9월 26일 정규 시즌 최종전 이후 줄곧 휴식을 취하는 삼성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성은 “준플레이오프가 3차전으로 끝나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는 자세다. 여기서 대세는 삼성의 한국시리즈 진출이다. 야구전문가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이다.
투수 출신의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삼성의 한국시리즈 진출 예상 근거를 선발진에서 찾는다.
“23승을 합작한 왼손 원투펀치인 장원삼, 차우찬의 구위가 무척 뛰어나다. 특히나 두 선수들은 왼손 투수임에도 오른손 타자에게 강하다. 외국인 투수 팀 레딩도 메이저리그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여느 외국인 투수처럼 포스트 시즌이라고 지나치게 긴장해 난조를 보일 가능성이 작다.”
정확한 지적이다. 올 시즌 장원삼과 차우찬의 오른손 타자 상대 타율은 각각 2할6푼2리, 2할3푼8리였다. 리그 평균 2할7푼3리에 비해 훨씬 낮았다.
현역시절 3년 연속 홀드왕을 차지했던 차명주는 정현욱, 권혁, 안지만으로 이어지는 불펜진을 삼성의 최대 강점으로 꼽는다.
“SK 불펜진보다 유일하게 뛰어난 불펜진이 바로 삼성이다. 단기전에선 5회 이후 역전과 재역전 등 반전을 거듭하므로 결국, 추가실점을 하지 않는 팀이 이긴다. 롯데와 두산보다 득점력이 떨어지는 삼성은 점수를 내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실점을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 불펜진은 상당한 이점이 있다.”
▲ 지난 9월 10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 2-2로 맞선 연장 10회말 1사 3루에서 삼성 조동찬이 끝내기 안타를 치고 동료들의 축하세례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투수진과 비교하면 타선이 약하다는 게 삼성의 고민이다. 올 시즌 삼성의 팀 타율은 2할7푼2리였다. 4강 팀 가운데 가장 낮았다. 특히나 득점 생산력이 떨어졌다. 삼성의 득점권 타율 2할6푼5리는 꼴찌팀 한화보다 단지 2리가 높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삼성 타선을 얕봐선 안 된다. 되레 그 반대다. 아기 사자였던 박석민-최형우-채태인은 이제 리그를 대표하는 중심 타자들이 됐다. 올 시즌 박석민은 데뷔 첫 타율 3할을 기록했다. 최형우는 24홈런, 97타점으로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과 타점을 올렸다. 타율 2할9푼2리, 14홈런, 54타점으로 지난 시즌보다 다소 성적이 떨어진 채태인은 그러나 잔부상만 없었다면 최고의 한해를 보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삼성 타선의 강점은 빠른 발이다. 올 시즌 삼성은 팀 도루 158개로 SK(161)와 LG(169)에 이어 이 부문 3위에 올랐다. 팀 도루 124개의 롯데와 128개의 두산에 비하면 30개가량 많았다. 도루의 질만 따진다면 타팀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롯데와 LG가 대부분의 도루를 김주찬, 이대형이 책임진 반면 삼성은 20도루 이상이 4명이나 될 만큼 특정 선수의 발에 의지하지 않았다. 성공률도 높았다.
정규 시즌보다 긴장도가 2~3배나 높은 단기전에선 주자들의 화려한 주루플레이는 상대 투수진과 야수진을 크게 흔들 수 있다. 삼성 선동열 감독도 그걸 알아선지 “플레이오프에서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타자 출신의 이순철 MBC SPORTS+해설위원은 “홈런 한방에 의존했던 삼성의 ‘뻥 야구’가 기동력의 ‘발야구’로 업그레이드하며 타선의 힘이 더 강해진 느낌”이라며 “단기전에서 삼성의 기동력 야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현되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상황이 변수다. 선발과 불펜의 중심인 장원삼과 권혁의 구위가 좋지 않고, 허벅지 부상으로 시즌 내내 고전했던 윤성환은 여전히 지난 시즌의 좋았던 투구 밸런스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동안 뇌진탕으로 고생했던 채태인도 “귀에서 ‘윙윙’소리가 난다”며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시즌 말미 왼쪽 엄지 부상으로 출전이 뜸했던 조동찬은 회복 여부가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핵심 주전 선수들이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선지 선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러나 선 감독은 부정보단 긍정으로 선수단을 독려했다.
“붙박이 유격수였던 박진만이 2, 3루 수비 훈련을 착실하게 받고 있다. 주전 포수 진갑용의 어깨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투수들은 플레이오프가 시작하면 기존 구위를 회복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2012년인 만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플레이오프를 맞을 생각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있다. 2012년이다. 선 감독은 “지금은 우승 전력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2012년쯤이 돼야 과거의 어느 팀처럼 한 번이 아닌 몇 년 동안 우승을 거머쥐는 최강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과거의 팀은 바로 해태(KIA의 전신)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