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5일 커밍아웃을 한 박우식 씨(왼쪽)가 홍석천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
지난 10월 5일 밤 11시, 홍석천이 운영하는 이태원 소재의 레스토랑 마이타이에서 홍석천과 박우식 씨가 만났다.
먼저 박 씨가 주위 동성애자들 가운데 커밍아웃을 격려해주는 이들도 있지만 왜 못생긴 데다가 노래도 못하면서 거기 나가 동성애자 망신을 시키느냐는 질타를 받고 있다고 말하자, 홍석천은 자신 역시 커밍아웃 직후 다른 잘생긴 동성애자 연예인도 많은데 왜 하필 ‘문어 대가리’가 커밍아웃을 해서 동성애자 망신을 시키느냐는 얘길 많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들에게 자신이 질투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시고 있지만 아버지는 어느 정도 이해해주려 한다는 박 씨의 얘기에 홍석천은 크게 다행이라며 반색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동성애자 자녀를 다 이해해주는 부모가 거의 없는 한국 사회에서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부모님은 동성애가 뭔지도 잘 모르는 분들이라 커밍아웃을 하자 엄청나게 놀라고 화를 내셨다. 그래서 내가 하나도 행복하지 않아 그랬다고, 가만있다가는 죽어버릴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결국은 부모님을 설득했다. 지금도 다 이해하신 건 아니다. 요즘도 왜 결혼 안 하냐고, 빨리 결혼해서 애 낳아야지 왜 누나 애들을 입양하느냐고 말씀하고 계시니까.”
홍석천은 커밍아웃 이후 힘겨워하는 박 씨를 크게 걱정했다. 커밍아웃은 반드시 홀로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일로서나 경제적으로 준비가 된 뒤에 해야 하는데 박 씨가 별다른 준비 없이 커밍아웃을 한 것 같아 더욱 걱정이라고 한다.
“난 어느 정도 연예인으로 이름을 알리고 아파트와 현금, 그리고 뉴욕 유학 준비까지 마친 뒤 커밍아웃을 했다. 그런데도 너무 힘들었다. 자살까지 생각하고 마포대교에 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마포대교에 서서 보면 한강이 날 부르는 듯했다. ‘힘들지? 들어와. 2분이면 끝나’라고.”
지난 2000년 커밍아웃을 한 뒤 홍석천은 4년가량 연예계를 떠나 있었다. 그 4년 동안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방송국 윗선에서 반대했다며 출연이 번복됐다. 결국 그를 다시 연예계로 이끈 이는 방송국 윗선에 휘둘리지 않는 영향력을 가진 김수현 작가였다. 마이타이를 오픈해 외식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업 역시 쉽지 않았다. 가게를 열고 14개월 동안 내리 적자였단다.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어렵게 마이타이가 자리를 잡은 뒤 계속해 가게를 하나 둘 더 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는 분들과 같이 하는 가게까지 총 8개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돈을 벌자면 마이타이 프랜차이즈를 하는 게 더 손쉬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늘 새로운 가게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받는 나도 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다행이 그런 감각을 좋아해준 분들이 많아 장사도 잘되고 있다.”
기자는 살며시 박 씨가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겨워하고 있다는 얘길 꺼냈다. 그러자 박 씨가 자신보다 훨씬 힘들었을 홍석천 앞에서 감히 자신이 힘들다는 얘긴 꺼낼 수 없다고 기자를 만류한다. 이런 모습을 보는 홍석천의 얼굴이 이내 어두워진다. 그러면서 왜 자신이 매년 큐어 축제에 참여하고, 또 얼마 전엔 트위터에 동성애자 비난 광고 반박 글을 올렸겠느냐고 물었다.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게 개인적으론 훨씬 좋다. 그렇지만 자살까지 생각하는 분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앞에 나서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13세부터 40대까지 수많은 동성애자분들의 죽고 싶다는 상담 편지를 받았다.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답장해드리며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려고 노력했다. 박우식 씨 얘기처럼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내가 겪었을 고통을 떠올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내가 자살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무너지고 망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살았다.”
▲ <슈퍼스타K 2>에 출연한 박우식 씨 영상 캡처. |
“절대 그런 모습 보이면 안 된다. 우린 어쩔 수 없이 남들보다 더 많은 핸디캡을 갖고 살아야 한다. 뭔가 잘못하면 ‘게이라서 저런다’는 얘길 들어야 하니까. 그런 얘기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 어쩌면 커밍아웃으로 힘든 건 이제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 더 힘든 건 무관심이다. 누군가 알아보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 같은데 겉으론 모두 무관심한 척할 때가 더 힘들다. 그럴 때마다 더 오기를 갖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두 시간여의 만남을 끝내고 마이타이를 나온 박 씨와 기자는 10년 뒤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은 불투명하고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10년 뒤를. 10년 전 너무나 힘들었을 홍석천을 생각하고, 지금의 박 씨의 상황을 얘기하고, 다시 10년 뒤를 그려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