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예계에서 아역배우의 중요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아역배우들이 출연하는 초반부 시청률이 드라마 종영 때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스타급 아역배우를 두고 캐스팅 전쟁이 벌어지고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영입 경쟁까지 벌일 정도다. 그렇지만 이는 극소수 스타급 아역배우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역배우나 아동 모델로 활동하려다 몸과 마음에 상처만 받고 돌아서는 아이와 부모들이 훨씬 더 많다. 심지어 최근엔 아역배우 노예계약 논란까지 불거져 눈길을 끌고 있다.
장면 1.
한 지방 도시에서 열린 아동 모델 선발대회에서 수상을 한 A 군의 모친은 기쁘면서도 왠지 찜찜했다. 이런 저런 상 수상식이 이어지다 보니 대회 참가자 50명 전원이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 수상자는 전국대회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데 참가하려면 일정 기간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단다. 교육비는 220여만 원. 잠시 아이를 아역배우로 키워볼까 생각을 했던 A 군의 모친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참가비 15만 원이 아까웠지만 그냥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한 셈 치기로 했다.
장면 2.
유난히 예쁜 딸을 자랑하고 싶었던 B 양의 모친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 딸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인터넷에서 사진을 봤다며 아이를 아동 모델로 데뷔시키자는 전화를 받았다. 다만 반년가량의 트레이닝 교육비 200만 원은 부모 부담이란다. 아동 모델은 4~5년가량 활동할 수 있고 잘 되면 아역배우가 될 수도 있단다. 결국 아이를 등록시킨 B 양의 모친은 깜짝 놀랐다. 그렇게 모인 아이들이 너무도 많았던 것. 과연 아이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아역배우로 성공할 수 있을까.
장면 3.
9월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4부(부장판사 김성곤)는 아역배우 C 양과 그의 모친을 상대로 아역배우 전문 연예기획사에서 제기한 전속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이 판결에서 더욱 눈길을 끈 사안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C 양과 소속사 사이의 전속계약서 내용이었다. C 양이 자신의 위치를 매니저에게 통보해야 하고 언제든 연락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사생활 통제 사안까지 포함돼 있었던 것.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설 정도로 연예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노예계약의 검은 그림자가 아역배우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톱스타가 있으면 무명 연예인도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는 아역배우들 역시 매한가지다. 요즘 워낙 아역배우 열풍이 거세다 보니 전문 아카데미마다, 각종 오디션 현장마다 아역스타를 꿈꾸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넘쳐난다.
그렇지만 공급은 많고 수요는 적은 구조적 한계는 아역배우 지망생과 부모들을 불리한 위치로 몰아넣고 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전문 연예기획사에 수업료(대개 200만 원 안팎)를 내고 트레이닝을 받은 뒤 해당 기획사 소개로 아역 모델 활동을 시작하는 것인데 힘든 촬영에 비해 모델료는 매우 적다. 게다가 교육비만 챙긴 뒤 모델 자리는 잘 알아봐주지 않는 악덕 기획사도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이 아닌 여러 연예기획사에서 트레이닝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전속계약을 맺는 방법도 있지만 아역배우 지망생 부모들은 이를 다소 경계하는 편이다. 한 아역배우 지망생의 모친은 “아이가 트레이닝 받는 동안 밖에선 엄마들끼리 정보교류를 한다”면서 “전속계약을 하고 믿고 일을 맡겼다 잘 안된 얘기를 종종 듣는데 엄마들은 특히 아이를 엄마가 아닌 회사에서 좌지우지하는 것을 꺼려한다”고 얘기한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해 스타덤에 오르고 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톱스타들이 대거 소속된 대형 연예기획사와 좋은 조건으로 전속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지빈은 배용준 이나영 등이 소속된 키이스트 소속이고 왕석현은 정준호가 소속된 다즐엔터테인먼트, 서신애 김유정 김소현 등 소위 아역 트로이카는 김수로 장혁 등이 소속된 싸이더스HQ 소속이다.
음반기획사의 연습생들이 매우 불리한 조건으로 전속계약을 체결해 노예 계약 논란이 일기도 하지만 스타급 아역배우의 경우에는 성인 연기자와 유사한 조건으로 계약이 되는 편이다. 소속사에서 키우는 연습생과 달리 스타급 아역배우는 이미 유명세를 얻어 소속사와 계약하기 때문. 아역배우의 부모 입장에선 촬영 현장에 늘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며 작품 선정부터 스케줄 관리까지 모두 소속사가 담당한다. 수익을 배분하지만 매니저가 작품 계약을 하면 더 높은 출연료를 받게 돼 수입도 큰 차이가 없다.
일반적으로 아역배우는 당사자와 보호자(대개 부모)가 동석해 전속 계약을 체결한다. 최근 송사에 휘말린 왕석현 군은 이로 인해 문제가 된 상황. 왕석현 군의 부친이 공동양육권을 가진 아내가 자신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다며 계약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면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경쟁적으로 아역을 영입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키이스트의 신효정 과장은 “가능성과 장래 발전 능력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라며 “음반기획사의 연습생과 비슷한 개념으로 제2의 문근영 유승호를 키우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다만 장래를 보고 투자하는 개념으로 전속계약을 맺을 경우 계약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연습생 시절을 거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전속계약 기간이 10년 이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정거래위가 제시한 표준계약서는 전속계약 기간이 7년을 넘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신 과장은 “계약기간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결정된다”면서 “계약기간보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스타급 아역배우가 모두 소속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엄마 매니저의 도움을 받는 아역배우도 많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배출한 스타 진지희 양의 어머니는 “학업도 챙겨야 하고 혹 아플지도 몰라 같이 다닌다”며 “아무래도 회사는 이익창출 위주일 수밖에 없다. 아직 아이가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터라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 할지 미래를 알 수 없어 쉬엄쉬엄 하려 한다”고 말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