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린다 러블레이스와 <데블 인 미스 존스>(1973)의 조지나 스펠빈 그리고 마릴린 챔버스는 포르노그래피가 산업적으로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3인방이었다. 특히 마릴린 챔버스는 독보적이었다. 그녀의 미모는 메인 스트림에서도 통할 수준이었고 특유의 순수한 매력은 관객들에게 묘한 쾌감을 주었다.
1952년 로드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마릴린 브릭스. 아버지는 광고 기획자였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던,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이었다. 학창 시절 다이빙과 체조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치어리더를 하며 남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던 마릴린의 관심사는 연기와 모델 분야의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크게 반대했다. 극심한 경쟁 체제인 연예계에서 딸이 겪을 고통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모 몰래 16세 때부터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그녀는 결국 모델이 되었고 17세 땐 과감히 가출을 시도해 뉴욕에 도착했다.
그녀의 첫 영화는 포르노가 아니었다. 18세에 ‘에블린 랭’이라는 예명으로 출연한 첫 영화 <올빼미와 새끼 고양이>(1970)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주연을 맡은 메이저 작품. 단역이었고 하프 누드로 등장한다. 이후 그녀는 좀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해 LA로 간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고, 샌프란시스코로 무대를 옮긴 그녀는 낮에는 웨이트리스, 밤에는 토플리스 걸과 누드 댄서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간혹 모델 일도 했는데 당시 그녀의 얼굴을 크게 알린 광고는 ‘아이보리 스노우’ 비누. 아이를 안고 있던 순백의 천사 같은 그녀의 모습 밑엔 ‘99.44퍼센트의 순수함’이라는 카피가 있었다.
일하던 식당에서 우연히 접한 신문 광고엔 메이저 영화의 여주인공을 뽑는다는 오디션 공고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포르노 영화를 기획 중이던 미첼 형제의 사기였고 그런 영화인지 몰랐던 마릴린은 2만 5000달러라는, 당대 포르노 배우 최고의 개런티에 혹해 영화에 출연한다. 그리고 1972년 <녹색 문 뒤에서>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마릴린 챔버스’라는 이름을 얻은 그녀는 스무 살에 포르노 퀸이 된다.
글로리아 역을 맡은 챔버스는 영화 내내 단 한마디의 대사도 하지 않는다. 단지 녹색 문 앞의 스테이지에서 온갖 콘셉트의 성 행위를 할 뿐이다. 특히 이 영화는 극장에 걸린 장편 상업 포르노 사상 최초로 인종 간의 섹스를 선보이며 터부를 깼다. 전직 복서인 흑인 배우 쟈니 키즈와 금발의 백인 여배우 챔버스가 벌이는 섹스 신은 시대의 파격이었다. 평론가들은 그녀가 진짜로 오르가슴을 느꼈는지에 대한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아이보리 스노우’의 제조사는 제품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다며 소송을 준비했으나, 그녀가 스타덤에 올라 매출이 증가하자 계약을 5년 연장했다. 이후 챔버스가 출연한 영화엔 카메오처럼 ‘아이보리 스노우’ 비누가 화면 한편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브의 부활>(1973) <인사이드 마릴린 챔버스>(1975) 등의 하드코어 포르노로 승승장구했지만 그녀는 1976년에 돌연 포르노계 은퇴를 선언하며 메인 스트림 진출을 다시 꿈꾸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래비드 Rabid>(1977)에 출연하고 디스코 싱글을 발표하며 라스베이거스에서 쇼를 했던 때가 이 시기. 하지만 이미 X등급으로 낙인찍힌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1980년에 <만족할 수 없는>으로 다시 어덜트 필름으로 돌아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다.
이후 그녀는 여러 번 메인 스트림으로의 귀환을 꾀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약과 알코올에 손을 댔고 1985년엔 생계를 위해 스트립 클럽에서 라이브 쇼를 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엉뚱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는데, 2004년에 개인선택당(Personal Choice Party)이라는 정당의 부통령 후보로 나오기도 했다.
포르노 업계에선 여러 차례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지만 챔버스는 ‘포르노 아닌 영화’에서 단역이라도 하기를 바랐다. 몇 편의 영화에서 꿈을 이루는가 싶더니 그녀는 2009년 4월 12일 뇌출혈로 5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화장된 재는 말리부 해변에 뿌려졌다. 그녀에게 포르노는 유명세를 안겨주면서 동시에 꿈과 인생을 파괴한 애증의 대상이었다. “포르노 배우가 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내 충고는 이것이다. 절대로 하지 마라! 그 일은 커다란 공허감을 안겨 줄 것이다.” 챔버스의 말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