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대물>에서 서혜림 역할을 맡은 고현정. 작은 사진은 박근혜 전 대표(왼쪽)와 박영선 의원. |
SBS수목드라마 <대물>에 대해 가장 발 빠른 반응을 보인 곳은 정치권이었다. 지난 6일 첫 회가 방영되자마자 다음 날 오전 민주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전병헌 정책위의장이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보인 것. 문제는 드라마 속 정당 이름 ‘민우당’이었다. 전 의원은 “‘민’자가 아니라 ‘한’자를 써야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들려온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드라마 속 정당 이름은 정당 이름일 뿐이다. 시청자들도 그 정도는 분간한다. 문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고현정이 맡은 극중 서혜림이라는 역할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 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허웅 SBS 드라마국장은 “외모나 성격, 인생 스토리 등을 볼 때 서혜림과 박 전 대표 사이에 유사점을 찾을 수 없다”면서 “여성 정치인과 지도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세계적인 흐름을 소재로 한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을 뿐 특정 정치인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고 설명한다.
서혜림과 박 전 대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생 스토리다. 시골 출신의 아나운서에서 미망인이 돼 정치권에 투신한 서혜림의 모습과 청와대에서 자란 대통령의 딸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한 박 전 대표는 전혀 다른 성장기를 거친 것. 오히려 민주당 박영선 의원 같은 아나운서 출신 여성 의원들이 오히려 서혜림과 더 가깝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여성 정치인들은 대체적으로 드라마 <대물>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여성 정치인에게 미디어의 관심도 집중됐는데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은 “드라마가 정치 현실에 미칠 영향은 모르겠지만 여권 신장에 관심이 적은 이들에게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화제가 되는 것만으로도 여성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이 높게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분명 인간 서혜림과 인간 박근혜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우선 박 전 대표를 염두에 두고 서혜림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볼 만한 공통점이 거의 없고 만화 <대물>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임을 감안할 때 현실 정치에 뭔가 영향을 미칠 의도로 만든 드라마라 볼 수도 없다.
그렇지만 정치인 서혜림과 정치인 박근혜는 유사점이 많다. 먼저 여성 대통령을 소재로 했던 작품은 장진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였다. 이순재, 장동건, 고두심 세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 이 영화에서 고두심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한경자’로 출연한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한경자의 고민은 다름 아닌 남편 최창면(임하룡 분)이다. 역대 대통령의 배우자들처럼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최창면은 남성이기에 괴롭다. 그런 압박감을 떨쳐 내기 위해 노력하던 최창면은 엉뚱하게도 엄청난 비리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영화 속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게 가장 큰 인간적·정치적 고민은 바로 남편이었던 셈.
그렇지만 <대물>의 서혜림은 종군 기자였던 남편을 억울한 죽음으로 잃은 미망인이다. 이 부분은 박 전 대표 역시 비슷하다.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이라는 부분은 서혜림과 다르지만 남편이 없다는 부분은 같다. 영화 속 한경자 대통령과 같은 고민은 없다는 부분이 서혜림과 박 전 대표의 공통점인 것.
소속 정당과의 관계에서도 유사점이 발견된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소속 정당이자 여당인 한나라당 주류인 친이계와 관계가 편치 않다. 심지어 지난 총선 당시엔 친박연대라는 새로운 정당이 한나라당 밖에서 창당됐을 정도다. 이 부분은 극중 서혜림 대통령도 유사해 보인다. 민우당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서혜림은 결국 대통령이 되고 민우당은 여당이 된다. 그렇지만 민우당이 서혜림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고, 오히려 야당 대표인 민동호(최주봉 분)가 탄핵 정국에서 서혜림 대통령의 편에 설 전망이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을 가슴 아프게 잃었다는 부분도 유사하다. 종군 기자인 남편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당한 것은 첫 회에서 나왔듯 굴욕 외교에 전쟁까지 불사하며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서혜림의 통치 철학으로 연결된다. 박 전 대표 역시 한국 현대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국가적인 사건들로 부모를 잃었다.
결국 사랑하는 가족인 남편을 잃은 아픔을 극복하고 정치인이 된 서혜림이 소속 정당과의 불편한 관계까지 이겨내며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돼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차기 대선을 준비 중인 박 전 대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지만 정치 평론가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직 드라마가 초반부라 정확한 평을 내릴 순 없다며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평론가는 “본격적인 정치 드라마는 아니지만 과거에도 몇 편의 사극 드라마가 비슷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음에도 현실 정치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고 설명한다.
다만 여성 대통령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여성 대통령에 대한 친숙한 이미지를 더해 실제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노리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게다가 앞서 살펴봤듯이 서혜림과 박 전 대표가 정치적으론 유사점도 여럿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정치 평론가는 “행여 서혜림 캐릭터가 무게감을 잃고 희화화될 경우 이미 대중적이고 신뢰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면서 “드라마가 더 진행돼야 알 수 있겠지만 요즘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다소 가볍고 코믹한 성향이 강한 편이다”라고 분석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