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가을 영평사로 가면 구절초향에 취한다. |
세상에 대한 시각은 입장에 따라 다른 법이다. 어떠한 일이나 사물도 한 가지로 정의 내리기란 불가능하다. 고기를 잡는 어부는 생활이기에 처절하지만 먼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은 평화롭다고 느낀다. 안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생활에 불편을 주는 불청객에 다름없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선물이다.
금강이 도시를 관통하는 공주는 요즘 물안개가 지상의 모든 존재를 지우기라도 할 양으로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안개 때문에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해를 보는 그곳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 물색없는 나그네들은 그 안개가 마냥 좋은 것을.
묵직한 안개의 길을 겨우겨우 헤쳐 가다가 든 곳은 곰나루다. 소나무숲의 부름 때문이다. 곰나루는 2006년 12월 명승 제21호로 지정된 곳이다. 공주는 538년 성왕이 부여로 천도하기까지 64년간 백제의 중심이었던 곳으로 옛 이름은 웅진(雄津), 한자를 그대로 풀면 곰나루다. 수상교통로이자 적군의 남하를 막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 나루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읍이 바로 웅진이다.
▲ 연미산 정상에 서면 금강을 끼고 있는 공주 시내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
아무 때나 가도 좋은 숲이지만, 압권은 역시 물안개 핀 새벽이다. 안개는 어느 날이라고 할 것 없이 거의 매일 올라와 솔숲에 오래도록 머물다 간다. 안개가 그린 곰나루 소나무숲은 먹의 농담만으로 완성한 수묵화처럼 차분하고 신비스럽다. 일찌감치 그에 매료된 사진가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곰나루를 찾아와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나무와 안개를 해석하며 사진에 담아낸다.
곰나루에서 안개를 떠나보낸 후 달릴 곳은 영평사다. 조선 중기에 창건된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다. 1987년부터 새로 짓다시피 한 까닭에 절 차체에서 느껴지는 세월감은 많지 않다. 삼성각, 대웅전, 설선당, 적묵당 등의 건물이 야트막한 장군산 아래 여기저기 앉아 있다. 이곳에서는 템플스테이가 꾸준히 열리기도 한다.
영평사로 찾아가는 것은 부처를 만나기 위해서라기보다 구절초 때문이다. 마치 하얀 구름이 산을 휘감고 있는 것처럼 구절초가 온 사방에 만발해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게 한다. 평소 꽃을 좋아하던 이 절의 주지스님이 길가에 핀 구절초를 옮겨 심었더니 절로 번식한 것이다. 구절초는 국화과의 다년초로 흔히 들국화라고도 불리는 꽃이다. 산기슭이나 풀밭에서 자라는데, 9~11월 흰색이나 연분홍색 꽃을 피운다.
구절초는 영평사 초입 약 1㎞ 지점에서부터 길섶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주말이면 구절초를 구경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이 길이 주차장으로 활용되는데, 절에서 먼 곳에 자동차를 세우게 되더라도 불만스럽지 않은 이유는 길에 핀 구절초 때문이다.
이 길도 아쉽지 않지만, 진짜 구절초 산책로는 영평사 대웅전 뒤편이다. 장군산 허리를 타고 도는 조붓한 길들이 나 있다. 겨우 한 사람 걸어다닐 정도의 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면이 구절초로 덮여 있다. 이 길을 걷노라면 어디선가 살랑 불어온 바람이 구절초 특유의 쑥향 같은 것을 실어와 흐리마리한 정신을 확 깨운다.
▲ 금강에서 올라온 안개에 곰나루 솔숲이 젖어들었다. |
영평사에서는 그렇게 가을 내내 딴 구절초를 말려 절을 찾은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새끼손톱만 하게 바짝 말랐던 꽃이 뜨거운 찻물에 담기자 신기하게도 스르륵 다시 핀다. 꽃만 그런 게 아니다. 향기도 마법처럼 함께 올라온다. 찻잔 속에 오롯이 담긴 가을을 마시는 것 같아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한 군데 더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면 그곳은 연미산이다. 선선한 이 계절에 산책하기 참 좋은 산이다. 연미산은 곰나루에서 북쪽으로 강 건너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 버티고 있는 산이다. 산세가 제비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제비 연(燕), 꼬리 미(尾) 자를 써서 연미산이다. 산은 거의 동네 언덕 수준이다. 해발고도가 192m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산에서는 현재 금강자연예술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2004년부터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행사로 연미산 등산로 주변에 기발한 미술작품들을 설치해 놓았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비엔날레에는 15개국 17명의 작가가 초대돼 연미산을 자신들의 작품으로 장식했다. 기존의 작품들과 더불어 연미산은 더욱 풍성해졌다. 자연과 어울리는 이곳의 작품들은 이질적이기보다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연미산은 정상까지 오르는 데 30분이면 족하다. 거리로는 800m에 지나지 않는다. 거의 산책 수준이다. 등산로 초입에 울타리가 양쪽으로 쳐져 있는데, 각 기둥마다 제각기 다른 신발을 신고 있다. 픽 하고 절로 웃음이 나온다.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무덤 옆에 자신도 무덤인 양 설치된 ‘세포’라는 작품과, 쌓여 있는 통나무 틈에 나팔관을 설치한 ‘숲의 소리를 듣다’, 커다란 음표를 누르면 멜로디가 튀어나오는 ‘즐거움을 위한 제안’ 등의 위트 넘치는 작품들이 곳곳에 있다. 길도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작품을 감상하며 설렁설렁 걷는 것이어서 땀도 거의 나지 않는다.
그렇게 독특한 작품들에게 말을 걸며 연미산 정상에 오르면, 시원한 전망이 반갑게 맞는다. 동쪽으로 쌍신지구가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곰나루와 공산성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곰나루: 경부고속국도→천안-논산 간 고속국도→공주분기점→당진대전고속국도→공주IC→우회전 후 계속 직진→곰나루 ▽영평사: 경부고속국도→천안-논산 간 고속국도→공주분기점→당진대전고속국도→동공주IC→36번 국도→온용교차로에서 우회전→691번 지방도→영평사 ▽연미산자연미술공원: 경부고속국도→천안-논산 간 고속국도→공주분기점→당진대전고속국도→공주IC→우회전→농고사거리→우회전→연미산 ▲먹거리: 공주대학교 인근에 식당들이 많다. 이중에서 특히 청운숯불갈비(공주시 신관동 656-2번지 041-853-2844)가 소문난 곳이다. 1인분 250g으로 양도 제법 많고, 밑반찬이 잘 나온다. 공산성 근처 새이학가든(공주시 금성동 173-5번지 041-854-2030)도 유명하다. 다 구워 나오는 석갈비가 일품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찾았던 곳이라고 한다. ▲잠자리: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숙박시설이 많다. 금강관광호텔(041-852-1071), 르네상스모텔(041-852-0777), 필름모텔(041-857-7532) 등이 있다. ▲문의: 공주시청(http://www.gongju.go.kr) 문화관광과 041-853-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