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왼쪽)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 사진은 지난 6월 2일 지방선거 투표가 끝난 후 방송사의 출구 조사 결과를 함께 지켜보는 모습. |
두사람의 지지율 경쟁은 표면상 어느 한쪽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이 내려가는 제로섬의 관계에 있지는 않다. 야권 차기 주자 1위 자리를 손 대표에게 내어준 유 원장은 최근 지지율 역전에 대해 “내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아니고, 손 대표의 지지율이 많이 올라간 것으로 야권후보들의 지지율 총합이 커지는 것”이라며 “매우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는 “과거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지지율 합계가 최대 3배까지 격차가 났었으나 최근 1.5배까지 좁혀졌다”면서 “진보성향의 야권에서 지지율 높은 주자가 생기는 것이 야권 전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나중에 연합해 다시 한 번 정권 교체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손 대표가 마땅한 차기 주자를 찾지 못했던 중도·진보 성향의 유권자층에서 새롭게 지지층을 개척한 것이 직접적인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고, 이는 결국 본선에서 누가 후보가 되건 야권표 결집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증인 만큼 앞서 견제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손 대표의 지지율을 놓고 ‘연내 20% 돌파’ 전망이 나오는 맥락을 살펴보면 사정이 사뭇 다르다. 손 대표의 최근 지지율은 9~14%로 ‘부동의 1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29~34%와 20%포인트 안팎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 내 선거전략통들은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그동안 30% 전후에서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여온 만큼 손 대표의 지지율이 20%를 돌파하는 순간, 두 사람의 간격이 10%포인트대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손 대표의 지지율이 연말쯤 20%에 육박할 경우 박 전 대표와 차이는 5~10%포인트 정도로 좁혀진다”면서 “이는 박근혜-손학규의 양자대결 구도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여권과 야권 내부의 판도까지 바꾸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 대표 지지율 상승에는 호남에서 시작된 ‘비호남 주자론’에 기반한 야당지지층의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다. 손 대표의 지지율이 연말쯤 20%를 돌파할 경우, 이는 결국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당 지지층의 응집력이 손 대표로 일찍 정리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 원장으로선 손 대표의 역전극을 “내게도 좋은 것”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이들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10·27 재·보궐선거다. 이번 선거에서는 국회의원 선거는 없고, 영·호남 5곳에서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다. 그러나 광주 서구청장 재·보궐선거는 의외의 경쟁으로 선거전이 뜨거워지고 있다. ‘야권 대표’ 자리를 놓고 손 대표와 유 원장 간의 이른바 ‘대리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는 민주당의 텃밭이고, 민주당은 이곳에선 사실상 ‘여당’이다. 민주당은 그런 프리미엄을 업고 광주 시의원 등을 지낸 김선옥 후보를 내세웠다. 이에 맞서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역임한 국민참여당 서대석 후보를 비(非)민주 단일후보로 내세웠다. ‘민주당 대 반민주당’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손 대표와 유 원장은 다른 재·보궐선거 지역에서는 야권연대에 따라 상대 후보를 지원하는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유 원장은 광주 서구청장 재보선이 두 사람의 대리전일 것이란 시각에 대해서도 “기자분들이 재미삼아 하는 말씀”이라고 가볍게 받아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실제 선거현장의 분위기는 대권 경쟁의 ‘전초전’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호남에서 손 대표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시험장이 될 수 있다”면서 “서구청장을 지낸 무소속 김종식 후보가 민주당의 표를 갉아먹는다는 점도 부담”이라고 전했다.
민주당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도 광주 지역에서 ‘반민주당’ 연대 바람에 혼쭐이 난 적이 있는 만큼, 손 대표를 중심으로 중앙당의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손 대표로서도 대표 취임 이후 치르는 첫 선거여서 양보할 처지가 못 된다.
모처럼 광주에서 당의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국민참여당도 유 원장을 투입해 표심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존재감 부각에 고심하고 있는 참여당에서 ‘유시민의 파괴력’을 보여줄 때이기도 하다.
유세장에서도 손 대표는 “민주당에서 사상 처음 호남 출신이 아닌 당대표가 나왔는데 이는 혁명이고 기적”이라며 “김선옥 후보를 당선시켜 기적을 확인시켜 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비호남 주자론’에 대한 노골적인 확인 요구인 셈이다.
이에 맞선 유 원장은 “경남이 김두관(지사)을 뽑아줬으니 호남이 이제 화답해야 한다”며 “광주 시민들이 맏아들(민주당)이 아닌 다른 아들들에게도 사랑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막대기만 꽂아도’라는 텃밭 인식에 대한 반감을 자극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패자가 져야 할 부담은 적지 않다. 야권이 2012년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하려면 야권연대가 필수적이다. 이번 광주 서구청장 선거에서 국민참여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이는 곧 손 대표를 겨냥한 야권통합, 그것도 국민참여당과의 선통합 요구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빌미로 전개될 정동영 최고위원 등의 파상 공세를 예상해볼 수 있다. 손 대표로선 당 운영 리더십의 안착 여부도 이번 선거에 달려 있는 셈이다.
유 원장 역시 야권연합에 대해 “2012년 총선연합과 대선연합을 이루기 위한 상설 협의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적극적인 호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손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일단 손 대표에 대한 광주의 지지여론이 거듭 확인되면서 그의 당권장악력이 강한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광주에서만큼은 손 대표의 비호남 주자론이 전당대회에 이어 선거를 통해 범야권 차원에서 공인을 받은 것이어서,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에도 가속도가 붙게 된다. 당연히 야권통합의 주도권은 손 대표에게로 넘어가게 되고, 유 원장과 국민참여당은 자신들의 존재감 확인을 위해 또 다른 ‘모험’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선거 결과가 향후 야권 연대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저조한 성적을 거둘 경우 ‘민주당만으로는 안 된다’는 정서가 확산되면서 야권 연대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