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수목드라마 <대물>은 물 오른 고현정의 연기력과 현실 정치를 반영한 에피소드를 곳곳에 배치하는 과감한 전개로 단 2회 만에 시청률 20%(TNmS 집계)를 넘었다. 게다가 방송 4회 만에 24부작 전체 방송 분량 할당 광고까지 모두 팔아치워 무려 104억 원의 광고 수익까지 올렸다.
그러나 시청률 순풍을 타고 매회 화제를 만들 것이라는 예상은 작가 교체라는 변수가 등장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지난 14일 드라마 기획안인 시놉시스를 만들고 1회부터 4회까지 대본을 집필했던 황은경 작가가 물러나고 유동윤 작가가 투입되면서 ‘정치 외압설’부터 ‘제작진 불화설’ 등이 쏟아졌다. 주관 방송사인 SBS는 “방송 전부터 예정됐던 작가 교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3일 뒤 이번엔 연출자 오종록 PD까지 교체되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만 갔다. 그러다 보니 방송사, 외주제작사, 연출자, 작가, 배우 등 드라마를 만드는 주체들이 모두 충돌하는 기형적인 관계가 <대물>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물>은 박인권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박인권 화백의 또 다른 작품인 <쩐의 전쟁>을 드라마로 만들어 히트시킨 외주제작사 이김프로덕션은 2007년부터 <대물>을 기획해왔다. 이김프로덕션 조윤정 대표는 “여성대통령이라는 획기적인 설정이 드라마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혔었다.
<대물> 제작이 가시화된 건 2008년 3월. 톱스타 고현정을 캐스팅한 제작사는 곧바로 권상우를 또 다른 주인공으로 결정한 뒤 그해 7월 SBS를 통해 방송한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방송을 불과 한 달여 앞둔 6월 중순부터 제작진 내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등장했다. 당시 연출을 맡으려던 김형식 PD가 제작사와의 의견 충돌로 드라마에서 손을 뗀 것. 곧바로 SBS 드라마국 PD들은 ‘외주제작사의 연출 관여’를 문제 삼아 <대물>의 편성을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결국 SBS는 <대물> 편성을 포기했다.
<대물>의 편성이 무산되자 출연하기로 했던 배우들도 방향을 틀었다. 고현정은 MBC <선덕여왕>의 주인공 미실 역을 맡았고 권상우 역시 MBC <신데렐라 맨>에 출연했다. 이번에는 이김프로덕션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해 4월 고현정을 상대로 계약금과 위약금을 포함해 5억 6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고현정은 같은 해 10월 “<대물> 제작이 지연되며 드라마 3편의 출연 기회를 놓쳤다”며 맞소송을 냈다.
배우와 제작사의 맞소송으로 방송 무산 위기에 몰린 <대물>이 3년여 만에 방송될 수 있던 데에는 고현정의 역할이 컸다. 고현정이 <선덕여왕> 촬영을 끝낸 뒤 이김프로덕션과 합의해 <대물> 출연을 결정한 것. 이에 권상우 역시 다시 합류하면서 이김프로덕션은 MBC와 방송 편성 논의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MBC 파업이 제동을 걸었다. 올해 초 진행된 MBC 장기 파업 여파로 <대물>은 MBC와 정상적인 편성 논의를 하지 못했다. 결국 <대물>은 본래 방송이 예정됐었던 SBS에서 편성을 받아냈다.
햇수로 3년 동안 이어진 갈등 탓에 방송 전 <대물>은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톱스타를 기용해놓았지만,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방송관계자들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물>의 뚜껑이 열리자 그동안 나온 우려는 모두 기우였다는 게 증명됐다. 방송 첫 회부터 두 자릿수 시청률을 보이는 등 단숨에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같은 시간 KBS 2TV가 방송하는 비, 이나영 주연의 <도망자 플랜B>와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예상마저 빗나갔다. 탄탄한 스토리로 경쟁작을 압도한 <대물>은 안방극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질겼던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방송 4회가 끝난 후 황은경 작가는 돌연 집필을 중단했고 새롭게 유동윤 작가가 투입됐다. 황은경 작가는 하차 이유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정치 외압설’ 의혹까지 받았던 그는 “하차는 오종록 PD와의 의견 충돌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발 더 나아가 “오종록 PD가 직접 대본을 고치며 설정을 바꾸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SBS 측은 “<대물>의 초반 작업은 유동윤 작가가 진행했다”며 “편성이 지연되며 유 작가가 개인 사정으로 제작 일선에서 빠졌다가 다시 투입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황은경 작가의 하차가 이미 7월 말 결정된 사안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SBS의 해명으로 작가 하차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변수는 또 등장했다. 촬영장에 오종록 PD를 대신해 김철규 PD가 투입된 것. 이에 오종록 PD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여 왔던 고현정 등 일부 출연자들이 “PD를 교체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알려 달라”며 3시간여 동안 촬영을 거부하기도 했다.
오 PD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의적인 선택으로 드라마에서 손을 뗐다고 밝혔다. 오 PD는 “이런 결론을 예상하진 못했다”고 밝히면서도 “분명한 것은 난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제작사 역시 언론을 통해 오 PD 하차의 본질이 작가들과의 문제라고 밝혔다. 거듭해서 작가와 충돌을 빚어 하차하게 된 것일 뿐 다른 문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의혹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혹 오 PD와 제작사 사이에 또 다른 갈등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대물> 제작 초기 김형식 PD가 제작사와의 의견 충돌로 하차한 뒤 SBS 드라마국 PD들은 ‘외주제작사의 연출 관여’를 문제 삼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촬영을 거부했던 고현정 역시 여전히 심기가 불편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