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프랑스 영화계는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배우들로 넘쳐났다. 레오스 카락스, 뤽 베송, 장 자크 베네 등이 이른바 ‘누벨 이마주’를 이끌었다면 줄리엣 비노쉬, 엠마누엘 베아르, 이자벨 아자니, 소피 마르소 등이 떠오르며 새로운 스타덤을 형성했다. 선배 여배우들과 비교할 때 그녀들의 특징이라면 노출 연기에 과감했다는 점. 그리고 베아트리체 달은 그 정점이었다.
1964년 12월 19일에 브르타뉴 지방의 브레스트에서 태어난 그녀는 18세가 될 때까지 딱히 무엇이 되겠다는 꿈이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걷던 그녀는 어느 사진작가의 눈에 들어왔고 우연히 픽업되어 사진 잡지의 커버 모델이 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화가인 장 프랑소와 달과 결혼한 것도 이즈음. 베아트리체 카바루라는 이름은 그렇게 베아트리체 달로 바뀌었다(1985년에 결혼한 달은 1988년에 이혼한다).
에이전트에 속하게 된 베아트리체 달은 당시 <베티 블루>(1986) 여주인공을 오디션 중이던 장 자크 베네 감독을 만나게 된다. 베네 감독은 첫눈에 그녀가 베티 블루임을 알아봤고 그녀는 데뷔작에서 인생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필립 지앙의 소설 <37.2도 아침>을 영화화한 <베티 블루>에서 그녀는 ‘사랑에 미친 여자’ 베티 블루 역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베아트리체 달이 보여준 캐릭터는 야생의 여성이었다. ‘거대한 입’(La Grande Bouche)이라는 별명이 말하는 것처럼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170센티미터의 키, 그리고 36-25-35의 글래머러스한 육체를 가감 없이 드러냈던 그녀는 단숨에 ‘제2의 브리지트 바르도’라는 찬사를 받았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헐렁한 옷, 제모되지 않은 겨드랑이 털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 결국 미쳐 버린 베티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다가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허망한 눈빛으로 죽어간다.
데뷔작 이후 수많은 러브콜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역할이었고 그녀의 강렬함은 대서양 너머에도 인상을 주어 짐 자무시의 <지상의 밤>(1991)을 통해 미국 관객과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정작 유명해진 것은 스크린 밖에서의 행동 때문이었다. 1991년에 파리의 어느 부티크에서 보석을 훔치다가 체포된 이후, 베아트리체 달에겐 스캔들과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1996년엔 마약으로 기소되어 벌금형을 물었고 1998년엔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대다가 주차 요원과 시비가 붙어 폭행죄로 또 벌금을 내야 했다.
아벨 페라라 감독의 <블랙아웃>(1997)을 촬영하던 마이애미 현장에서도 코카인 소지로 체포되었는데 이 일은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오점을 남겼다. 그녀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1999)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아내 역에 캐스팅되었지만 마약 전과로 인해 미국 입국이 금지되었고 결국 그녀는 그 역할을 놓쳤다.
영화 속에선 강렬하다 못해 섬뜩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실생활에서 그녀는 사랑의 피해자였다. 이혼 후 <토니>(1999)에서 만난 배우 알레산드로 가스만과 약혼했지만 가스만은 베아트리체 달에게 알리지도 않고 사브리나 나플라츠라는 여배우와 결혼했다. 눈 뜨고 코 베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긴 세월 동안 연인이었던 프랑스의 래퍼 조이 스타와는 결국 그의 마약과 폭행 때문에 헤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처를 보상받으려는 듯 그녀의 두 번째 결혼은 진정 극적이었다. 고향인 브레스트의 형무소에 자원 봉사를 간 달은 그곳 재소자인 구엔나엘 메지아니와 첫눈에 필이 통했고, 2005년 교도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메지아니는 과거 여자친구를 폭행하고 강간한 죄로 12년형을 선고받은 상태. 메지아니와의 결혼 생활도 평탄하진 않았는데 2009년에 메지아니는 가석방되었지만 베아트리체 달을 폭행해 그녀가 경찰에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한때는 프랑스 영화계 최고의 유망주였던 베아트리체 달. 최근엔 식인종, 사이코패스 같은 ‘쎈’ 역할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지만 조금은 역부족이다. 하지만 베티 블루라는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베아트리체 달이라는 이름은 영원히 남을 듯. 그 거칠고 생생한 느낌은, 모방은 가능해도 복제될 순 없는 그녀만의 것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