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나무 단풍은 노랗게 물들고, 홍시 빨갛게 익는 낙안읍성민속마을. |
갈대꽃 하얗게 핀 순천만
전남 순천만은 동쪽으로 여수반도, 서쪽으로 고흥반도에 둘러싸인 말발굽의 형태의 바다다. 순천의 젖줄인 이사천과 동천이 합수해 이 바다로 흘러든다. 그런데 순천만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이곳은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인정받을 정도로 드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그 면적이 무려 2568㏊에 이른다.
영양소가 풍부한 순천만에는 망둑어, 준치, 숭어, 농게, 칠게, 방게 등의 갯벌생물들이 차고 넘친다. 이것은 철새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그래서 순천만은 철새들의 정거장이다. 해마다 재두루미,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 홍조롱이, 노랑부리백로, 넓적부리도요, 가창오리 등 천연기념물 19종, 멸종위기종 6종, 보호종 13종을 비롯해 수많은 철새들이 순천만에서 겨울을 난다. 찬바람이 일찍 불어서일까. 천연기념물 제228호로 지정된 흑두루미가 올해는 예년보다 1주일가량 빠른 지난달 21일 순천만에 날아들었다. 이제 다른 철새들도 서서히 순천만에 입소 신고서를 낼 것이다.
▲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순천만 ‘S’자 수로. |
해질 무렵이면 순천만에서는 가창오리들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해지기 1시간 전쯤부터 월동을 위해 날아온 가창오리들이 군무를 펼치며 갈대밭 위를 맴도는 것이다.
용산전망대는 반드시 올라가봐야 한다. 표고 100m 정도 되는 야트막한 언덕에 마련된 이 전망대는 순천만의 비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20분쯤 경사로를 올라가면 마치 미스터리서클 같은 갈대숲과 그 사이로 ‘S’자를 그리며 흘러가는 물길이 보인다. 어느 훌륭한 미녀의 라인도 그 섹시미를 따르지 못 한다. 이 물길로는 순천만 탐방선이 수시로 다닌다. 배가 무동력선이 아닌 것이 다소 아쉽다. 갈대 사이에 숨었던 철새들이 놀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은행단풍과 홍시 탐스런 낙안읍성
낙안읍성도 가을여행지로 손색없다. 낙안읍성은 여전히 과거의 시간을 사는 마을이다. 200여 채의 초가와 동헌, 객사 등이 읍성에 있다. 마을을 두르는 성곽은 총 연장 1410m로 동서남북에 네 개의 성문을 두었다. 마을에는 현재까지도 120세대 280여 명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낮이면 성 밖으로 나가 농사를 짓고, 저녁이 되면 들어와 여행객들에게 민박을 놓는다. 옛날 그대로의 초가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특별하다.
낙안읍성은 이맘때면 이엉작업을 시작한다. 초가지붕에 새 옷을 입히는 것이다. 이 작업에는 동네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참여한다. 서로 도와가며 오늘은 어디, 내일은 또 어디 하는 식으로 새 지붕을 입힌다.
마을 곳곳에는 은행나무가 노란 단풍을 뽐내고 있다. 감나무에는 단풍보다 더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마을에는 전통공예체험장들이 곳곳에 있다. 비어 있는 초가에서 기능인들이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짚풀, 삼베, 염색 등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낙안읍성이 조선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면 조례동에 자리한 순천 오픈세트장은 1960년대 시가지 풍경을 완벽히 재현해 놓은 곳이다. 이곳도 낙안읍성처럼 과거의 추억을 곱씹으며 들러볼 만하다. 조례삼거리에서 광양 방면으로 가다보면 보인다. 순천읍세트장, 서울변두리세트장, 서울달동네세트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법 규모가 크고, 세트장의 완성도 또한 높다.
절을 닮아 수줍은 선암사 단풍
선암사는 송광사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절이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창건된 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 불교 태고종의 총림이다.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 경전교육기관인 강원, 계율전문교육기관인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절을 총림이라고 한다. 절은 조계산 동남쪽 기슭에 있다. 송광사는 반대편 산등성이에 있다. 선암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산을 넘어가면 송광사다.
선암사는 조계산 속에 조용히 묻혀 있다. 태고종의 총림임에도 사세를 과시하기 위해 건물을 크게 짓는다든지 하지 않았다. 딱히 표현을 하자면 ‘있는 듯 없는 듯하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경내에는 보물 제395호 삼층석탑과 보물 제1311호 대웅전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다. 선암사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로 안내하는 숲길은 단풍이 좋다. 절을 닮아 화려하게 타오르지는 않는다. 1.5㎞가량 숲길이 나 있는데, 단풍이 수줍게 들어 있다. 길 왼쪽으로 계곡이 흐른다. 부도밭을 지나자 멋진 돌다리를 만난다. 무지개 모양의 승선교(昇仙橋)다. 풀자면 ‘신선세계로 오르는 다리’다. 밑으로 작은 누각인 강선루가 보이고, 그것이 계곡물에 또렷이 반영되는데, 선인들의 미적 감각이 경탄스럽다.
선암사와 함께 둘러볼 절이 하나 더 있다. 금전산 자락에 자리한 금둔사다. 낙안읍성에서 약 2.5㎞ 떨어진 자그마한 절이다. 선암사에서 주지 생활을 했던 지허 스님이 아기자기하게 꾸며가는 절이다. 선암사처럼 무지개다리를 만드는가 하면 돌계단을 놓아 산책로를 조성하는 등 공력을 많이 들였다. 무지개다리 주변에 은행단풍이 아주 좋다. 절에는 보물 제945, 946호로 각각 지정된 삼층석탑과 석불비상이 있다. 두 작품은 통일신라의 것으로 절 오른편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약 5m 거리를 두고 함께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호남고속도로 서순천IC→22번 국도→남교오거리→순천만 ▲먹거리: 순천만에 가면 짱뚱어탕을 맛보자. 가을이 가장 살이 오를 때라 맛있다. 탕을 끓여 내놓는데, 추어와 비슷한 별미다.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조금 못 미쳐 향미정(061-725-3885)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짱뚱어탕과 함께 꼬막정식도 내놓는데, 이 또한 입맛이 돌게 한다. ▲잠자리: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주변에 순천만풍경(010-4299-2289), 순천만한옥펜션 현우각(061-744-4400), 순천만흑두루미펜션(061-722-1510) 등 묵을 만한 곳들이 있다. ▲문의: 순천시 문화관광포털(http://tour.suncheon.go.kr) 관광기획과 061-749-3308, 순천만자연생태공원(http://www.suncheonbay.go.kr) 061-749-3006, 3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