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총리실이 청와대 지시에 의해 대포폰을 사용한 것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소총폰이라도 지급하라고 쓴소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낯 뜨거운 대포폰 파문으로 청와대는 죽을 맛이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몸통 로비 의혹’ 논란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총리실 사찰 몸통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또다시 청와대와 여권의 목을 옥죄고 있다. 지난 여름 정국을 발칵 뒤집어놨던 총리실 불법사찰 파문과 관련해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청와대가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받은 문건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의원은 청와대 개입정황을 뒷받침하는 문건공개와 더불어 청와대가 불법사찰 기록을 삭제하려는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대포폰까지 지급했다고 폭로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이 와중에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사건의 ‘몸통’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직접 지목하면서 ‘대포폰 게이트’로 확전되고 있는 형국이다. ‘청와대 몸통론’으로 비화되고 있는 민간인 사찰 의혹을 둘러싼 진실게임 속으로 들어가 봤다.
민간인 사찰 논란은 이석현 의원이 11월 1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남○○ 관련 내사건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하면서 재점화됐다. 문제의 문건은 2008년 9월 25일에 지원관실 공직 1팀이 작성한 A4 2장짜리로 이 내부보고서에서 지목한 여당 의원은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다. ‘청와대가 사찰에 직접 개입한 증거’라며 문건을 공개한 이 의원은 이 문건의 존재는 ▲청와대가 지시만 한 것이 아니라 일일이 보고를 받고 있었다는 것 ▲지원관실이 파기한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완전하게 복원되었거나 USB에 내사보고서들이 충분히 들어있었다는 것 ▲국정원이 내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지원관실의 사찰사건에 BH(청와대)가 개입됐다는 증거가 없으며 하드디스크 파기 등 증거인멸로 윗선 개입 여부를 밝힐 수 없다”고 한 검찰 수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셈이다.
청와대의 불법사찰 개입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의원은 청와대가 사찰 정황을 삭제 하려는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일명 대포폰을 지급했다고 폭로하면서 치열한 진실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총리실 점검1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윤리관실 기획총괄과 소속 장 아무개 주무관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영구삭제하기 위해 수원에 있는 컴퓨터 전문업체로 찾아갈 당시 대포폰을 이용해 업체와 통화한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의원은 “검찰이 해당업체의 통화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포폰 5대를 발견했는데 그 대포폰들은 그후 청와대에 넘겨졌다. 이 대포폰들은 청와대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들의 명의를 도용해서 만들어 비밀통화를 위해 지원관실에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은 물론 증거인멸 작업까지 사실상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추진한 사건으로 비칠 여지가 높아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 지원관실에 대포폰을 지급했다는 것은 사찰을 직접 지휘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청와대 ‘윗선’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명확히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당초 ‘윗선’으로 지목된 사람은 대포폰을 지급한 최 아무개 행정관의 직속상관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 전 비서관 혼자 추진했다고 보기에는 사건이 너무 크며 따라서 그 이상의 윗선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상태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총리실의 지시를 받아서 김종익 씨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그런 일을 한다고 하면 민간인 불법사찰의 몸통이 누구겠나. ‘형님’ 아니냐. 형님이 있으니까 총리실이 이런 권한을 쓸 수 있는 것”이라며 이상득 의원을 ‘몸통’으로 거론해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또 ‘몸통’의 존재는 청와대의 불법 사찰 개입 의혹 수사에 대한 검찰 안팎의 외압설로 이어지고 있다. 대포폰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이석현 의원은 청와대를 기소하지 않은 이유가 외압에 의한 것인지, 자의에 의한 것인지를 캐물으며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야당은 지원관실과 고용노사비서관실이 대포폰으로 통화를 한 사실을 검찰이 인지하고도 수사결과로 발표하지 않았다고 압박하고 있다.
▲ 남경필 의원 관련 내사건 보고서 사본. |
대포폰 도입의 목적으로 ‘비밀통화’가 거론되는 등 청와대가 대포폰을 지급한 정황과 관련해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의혹이 양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전 비서관과 최 행정관이 포항 출신이고, 이미 기소된 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김충곤 점검1팀장, 장 아무개 주무관이 모두 동향이라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아울러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시인했듯이 검찰 수사팀이 시내 모처에서 최 행정관을 수사했는데 당초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그 조사를 반대했다는 부분도 풀어야 할 의혹으로 남아있다.
대포폰 관련 진실공방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대포폰의 존재 및 전화기 숫자, 법정 공개, 수사진행 여부 등에 대해 이귀남 법무부 장관과 검찰, 청와대의 해명이 엇갈리고 있어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법무부 수장과 검찰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두고 검찰의 부실수사 및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 여부에 대한 축소·은폐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이 전 비서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6시간만 조사하고 무혐의 처리해 형식적인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월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청와대 최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 명의의 대포폰 5대를 만들어 지원관실 직원들에게 지급했고, 1대는 지원관실 장 주무관이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된 문서가 저장된 하드디스크를 외부로 반출해 삭제하는 과정에서 사용했다”는 이석현 의원의 질의에 “사실”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지원관실이 어디에서 증거를 인멸했는지 컴퓨터 업체와의 통화명세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포폰의 번호를 발견한 것뿐”이라며 “증거인멸 과정에 사용된 전화는 KT대리점 주인 가족 명의로 된 1대뿐이고 나머지 4대는 총리실 직원이나 그 가족 명의 전화”라고 주장했다.
수사진행 사항에 대해 청와대와 검찰의 의견도 엇갈렸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11월 2일 “수사 중인 사안이다. 수사 후 연락이 오면 밝힐 것은 밝히고 징계할 것은 징계할 것”이라고 했으나 지난 10월 7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노환균 지검장은 증거인멸과 관련된 수사에 대해 “종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대포폰은 물론 민간인 사찰이나 수사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김희정 대변인은 “(대포폰과 관련해) 청와대에 공식 보고된 바 없다”며 일각에서 제기된 ‘윗선’ 의혹에 선을 그었다.
‘청와대 몸통’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야권과 이를 부인하고 있는 여권, 외압설 및 부실수사 논란에 휩싸인 검찰이 대포폰 정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