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초 방송통신위원회는 KMI의 제4이동통신 사업 심사에서 최종 불허 판정을 내렸다. 이를 두고 정치적 논란을 의식한 청와대와 방통위 사이에 ‘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
이번 방통위 결정에 대해 정가에서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KMI를 정치쟁점화하기 위해 여러 소문들을 추적해왔던 민주당 내에선 “‘정치적 고려’가 방통위 심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 연루, 주가조작 의혹, 먹튀설 등으로 구설이 끊이지 않던 KMI에 대해 여권 핵심부가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것이다. KMI 사업자 심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을 따라가 봤다.
KMI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조카사위 전종화 씨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일요신문> 952호). 전 씨는 KMI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씨모텍에서 한때 등기이사직을 맡은 바 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씨모텍에 대한 ‘특혜’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7월 말 사직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 씨가 막대한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해 뒷말은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씨모텍이 지난 3월 이명박 정권 핵심 사업 중 하나로 꼽히는 전기자동차 사업에 진출하고, 6월엔 컨소시엄 참여를 통해 제4이동통신 사업자 신청자격을 따낸 것을 놓고 ‘권력형 게이트’일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또한 KMI 참여 업체들의 자금조달 능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주가 급등락에 따른 개미들 피해도 줄을 이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물론 사정기관들도 KMI와 관련된 첩보들을 꼼꼼히 수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6월 11일 사업자 허가 신청서를 냈던 KMI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월 27일부터 3일간 사업계획서 심사를 받았다. 결과는 탈락. 방통위 측은 “KMI는 100점 만점에 65.5점을 받았다. 기간통신사업 허가를 받기 위해선 70점이 넘어야 한다”면서 “후발주자인 KMI가 제시한 시장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었고, 자금능력에 의문이 들었다. 휴대인터넷과 서비스 기술 전반이 미흡하다”고 밝혔다. 당초 무난한 통과를 점치고 있던 KMI는 방통위 발표에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참여 업체들 사이에선 심사 자체를 문제 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공종렬 KMI 대표는 “(심사의) 공정성·신뢰성·객관성에 문제가 있다. 기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심사위원들이 참여했다. 방통위의 존엄성과 권위를 스스로 해치는 결과”라며 강경한 어조로 방통위를 비난했다.
그동안 KMI 관련 의혹을 추적해오던 민주당은 이번 방통위 결정에 대해 여권 핵심부의 ‘뜻’이 반영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심사 탈락은) 일단 수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KMI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대통령 친인척 이름이 오르내리고, 특혜설이 끊이지 않자 여권 핵심부가 사업 허가에 부담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최시중 위원장이 직접적으로 압력을 받진 않았더라도 그러한 기류를 읽고 불허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목소리는 방통위 내부는 물론 KMI 컨소시엄을 이루고 있는 업체들 사이에서도 들린다. 익명을 요구한 방통위의 한 고위 인사는 “엄격하게 기준대로 처리했을 뿐이다. 다만,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이 심사 허가에 부정적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분위기가 KMI 측에 불리한 쪽으로 흘렀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KMI 컨소시엄에 들어가 있는 자티전자 관계자 역시 “6월 달에 신청서를 낼 때만 해도 온통 청사진이었다. 그런데 전종화 씨 등이 구설에 오르면서 청와대가 주시하고 있다는 말이 퍼진 이후엔 어두운 전망 일색이었다. 이번 불허 역시 실세들 의중이 담겨 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 민주당은 이번 KMI의 심사 통과를 내심 바랐었다고 한다. 앞서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자체적으로 판단하건대 ‘KMI 건’은 향후 권력형 게이트로도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래서 그동안 몇몇 의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이번에 통과되면 새로운 의혹들을 제기하려고 했는데 잠시 미루게 됐다. KMI가 더 ‘폭발력’ 있는 문제가 되려면 통과되는 게 우리로서는 더 나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최근 대기업 사정, 대포폰, 청목회 사건 등으로 어수선한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여권을 공격할 ‘무기’ 중 하나로 내년 초 KMI를 꺼내들 가능성이 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로 민주당 일부 당직자들이 증권가와 통신업계를 상대로 제4이동통신 사업자 과정에 관해 ‘스터디’를 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되기도 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현재 민주당을 중심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KMI 관련 의혹은 세 가지다. 우선 한나라당 현역 의원 A 씨가 KMI에 참여하고 있는 특정업체 배후에 있다는 의혹이 첫 번째다. MB 대선 캠프 출신인 A 씨는 2008년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고, 그 이후 한나라당의 주요 당직을 맡아왔다. A 씨는 KMI 참여 업체 중 한 곳의 CEO와 수년 전부터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신업계 ‘마당발’로 불리는 A 씨가 이 업체의 KMI 컨소시엄 참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발휘했고,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청탁이 오갔을 것이란 게 의혹의 골자다.
두 번째는 MB 조카사위 전종화 씨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한다. 비록 전 씨가 KMI 사업에서 발을 빼고, 지금은 일본에 머무르고 있지만 사업 참여 초기 단계에서 정권 실세 인사 B 씨가 도움을 준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구체적인 증거확보에 나선 상태다.
마지막 의혹은 여권 핵심부가 KMI를 둘러싼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덮어버렸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KMI 문제는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다. 청와대가 일찌감치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조사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정도 선에서 무마해서 안 될 것이다. 무조건 숨기려고만 하면 나중에 더 큰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우선 청와대가 조사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KMI X파일’을 모으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권 핵심부 역시 KMI를 둘러싼 소문들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참여업체 및 심사과정 등에 대해서 예의주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전종화 씨에 대해선 민정팀이 조사를 했다. (사업 참여는) 전 씨 자체의 문제고, 청와대완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 여러 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게 사실이다. 최근엔 참여업체들이 출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무리한 방법을 동원한다는 말이 있어 금융당국이 확인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던 전 씨가 지난 10월 8일 일본으로 출국한 배경에 청와대가 있을 것이란 추측이 돌았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청와대는 민주당 등 야권이 문제를 제기할 만한 대목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스크린을 실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청와대 내에서 KMI 문제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자 방통위 내부에선 ‘심사 통과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설득력을 얻었다고 한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사태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KMI 심사 불허로 가닥을 잡았고, 이를 방통위에 전달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청와대 측은 “방통위 심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야권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하다. 앞서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우리도 정권을 잡아봐서 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는 제4이동통신사업자 선정과 같은 국가 주요 정책은 청와대 뜻이 가장 먼저 고려된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방통위를 이끄는 최시중 위원장이 여권 핵심부와 ‘핫라인’을 구축해 놓고 있는 정권 실세라는 점에서 KMI 심사를 둘러싼 청와대와의 ‘교감설’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