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느 멋진 날>의 한 장면. |
얼마 전 한 드라마를 보니 오랜 세월을 서로 그리워하던 남녀가 재혼하는 장면이 나왔다.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의 결혼방식이다. 남자는 연인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주고 싶어 했지만 여자는 간소한 가족 모임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고 둘만의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40대 재혼커플의 아름다운 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이 늘다 보니 20대 이혼녀, 이혼남도 드물지 않은 세상이다. 예전엔 ‘재혼’ 하면 나이 지긋한 중년을 연상했지만 이제는 겉으로만 봐서는 초혼인지 재혼인지 구별이 어렵다.
올해 29세의 O 씨도 겉으로 봐선 평범한 20대 후반의 미혼여성 같다. 불과 1년 사이 결혼과 이혼을 연달아 경험한 그녀는 아픔을 딛고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생겼다. 상대는 5년 연상의 직장 상사. 그도 아이 하나를 둔 이혼남이다.
아직 젊고 능력 있는 딸이 더 좋은 신랑감을 만났으면, 하는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서 결혼을 결정했다. 별 탈 없이 알콩달콩하게 연애를 하며 잘 지내던 두 사람이 부딪히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그녀는 화려하진 않아도 남들처럼 예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대충 하자”는 식이었다. 그녀는 한발 양보해서 비용이 저렴한 예식장을 예약했다.
하지만 갈수록 태산이었다. 딸을 ‘애 딸린’ 이혼남에게 결혼시키는 처부모의 서운한 마음을 안다면 예물이나 혼수도 잘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는 “예전에 해보니까…”라며 자꾸 첫 결혼의 경험을 들먹였다. 역시 재혼이지만, 그와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그녀는 시작도 하기 전에 기대와 신뢰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주변에 재혼사실 알리고 정식으로 새출발해야
“재혼하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결혼식을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결혼식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한낱 형식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의 논리다.
결혼식은 단순히 축의금이나 받자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행사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결합을 축하받고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는 약속의 자리다. 재혼 또한 마찬가지다. 각자에겐 두 번째, 세 번째 결혼일지 몰라도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는 첫 번째 결혼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변에 두 번, 세 번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결혼식을 생략하기도 한다. 두 사람이 그렇게 합의했다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떳떳하게 새 출발하고 싶은 상대의 마음을 무시하고 ‘도둑결혼’을 하듯 절차를 생략하려는 경우를 보면 과연 그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비록 재혼, 삼혼이라고 해도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주변 사람은 그렇다 쳐도 결혼할 상대로부터 대충 결혼하자는 말을 듣는 건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소박하게라도 절차를 밟아 부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혼은 결혼이지, 동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혼하면서 사람들 불러 모으는 게 정 부담스럽다면 결혼식을 가족모임 형태로 대신할 수는 있다. 이럴 경우 청첩장이나 인사장을 만들어 주변에 재혼 사실을 꼭 알리는 것이 좋다. 앞으로 함께할 사람이 단순히 동거남 동거녀가 아닌 정식 남편과 아내라는 사실을 주변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재혼이든 삼혼이든 결혼을 할 때마다 반드시 결혼식을 올리라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배우자로 인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웅진 좋은만남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