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수출 1조 5000억 원을 달성하며 효자산업이 된 게임 산업. 그러나 화려한 급성장 이면에 일고 있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게임 중독에 빠져 천륜을 저버린 극악무도한 범죄들이 빈발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이 친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한 후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 아무개 군(15)은 밥을 먹는 시간과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빼고는 대부분 게임에 빠져 있었고, 사고 당일 게임을 말리는 어머니를 우발적으로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단 최 군의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게임을 한다고 꾸짖는 어머니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20대 청년이 경찰에 붙잡힌 바 있고, 3월에는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부모가 생후 3개월 된 딸을 굶겨 죽게 만드는 사고도 있었다.
게임중독을 막기 위해 다양한 예방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게임업체의 반발로 인해 도입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게임사업의 막힘없는 질주 뒤편에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게임 중독자들의 사례를 들여다봤다.
지난 11월 16일 오전 7시30분. 부산 남구 대연동의 한 빌라에서 이 아무개 씨(여·43)와 중학생 아들 최 아무개 군(15)이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최 군의 컴퓨터 옆에는 ‘할머니, 게임 때문에 엄마한테 몹쓸 짓을 해 미안합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최 군은 화장실 가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게임에 몰두할 정도로 심각한 중독증상을 보였다. 최 군이 빠져든 게임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무기를 구매한 후 다른 유저와 함께 상대팀을 총기로 살해하는 폭력 게임이었다. 최 군이 게임에 빠져든 것은 게임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경찰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 군이 가정환경에서 느끼는 상당한 스트레스도 그를 컴퓨터 앞에 장시간 앉아있게 하는 요인이 됐다.
최 군의 아버지는 10년 전부터 중국에서 거주하며 매월 일정 생활비만 보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나마 보내오던 생활비 지원도 뚝 끊겼을뿐더러 연락 횟수도 줄었다. 최 군의 어머니 김 씨는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사진관 보조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벌이는 시원치 않았고, 거주지를 김해에서 부산 대연동 부근의 전세방으로 옮겼다.
갑자기 달라진 가정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최 군이 선택한 것은 컴퓨터 게임이었다. 사는 곳이 달라지며 어울릴 친구들도 없었기에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편리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어머니가 돈 벌이를 위해 가정을 비우는 시간 동안 최 군은 불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점점 더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최 군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들었을 무렵 게임중독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을 집중관리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벌어지기도 했지만 최 군은 게임을 하지 않는 것처럼 응답했다. 어머니 김 씨가 뒤늦게 최 군의 중독 사실을 인지하고 학교에 상담치료 를 받게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는 최 군의 여동생이 경찰에 한 진술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최 양(12)은 “어머니와 오빠가 평소 자주 말다툼을 했다”며 “사건 당일도 최 군의 방에서 고성이 오고갔다”고 진술했다. 이후 주검으로 발견된 최 군 어머니의 얼굴과 목에는 타박상과 함께 긁힌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경찰은 최 군이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중독이 천륜을 저버리는 범죄로까지 이어진 사례는 최 군뿐만 아니다. 지난 2월에도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온라인 게임을 한다고 꾸짖는 친모를 살해한 혐의로 오 아무개 씨(22)가 구속된 것이다. 오 씨의 경우는 심지어 친모 살해 전 성폭행을 한 정황도 발견돼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오 씨의 인생 스토리도 최 군의 사례와 비슷하다. 오 씨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를 오가며 불안정한 유년기를 보냈다. 성인이 된 후에도 특별한 직업 없이 PC방을 전전하며 지내던 오 씨는 오로지 게임에만 열중해왔다. 그런 오 씨를 만류한 사람 역시 어머니였다. 결국 오 씨는 게임을 방해하는 어머니를 살해하기 위해 오후 1시경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고 안방으로 건너갔다. 낮잠을 자던 어머니를 성폭행 한 후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숨지게 했다. 게다가 범행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실에서 4시간가량 TV를 본 뒤 근처 PC방에서 또다시 게임을 하기도 했다. 모텔과 친구 집을 오가며 은신하던 오 씨는 인근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결국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방에 살고 있던 김 아무개 할머니(70)가 흉기로 난도질당한 채 살해된 사건의 범인도 게임중독자였다. 20대 청년인 한 아무개 씨(22)는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이웃에 사는 할머니를 찔러 숨지게 한 뒤 가방에 남아있던 700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경찰 조사결과 한 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상태로 심각한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에도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 절도를 저질러 세 차례나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출소 후에도 여전히 게임을 끊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게임중독에 따른 패륜 사건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각종 실태조사 결과도 게임중독이 이제 소수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09년에 실시한 ‘인터넷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인터넷 중독자는 전체의 12.8%에 이르는 93만8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한부모 가정 등 자녀에게 신경 쓸 시간이 부족한 가정의 경우에는 게임 중독 성향이 더 심각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실태조사 결과 한부모 가정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은 양부모 가정보다 31.7% 더 높게 나타났다.
게임 중독 때문에 상담을 받은 사례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게임 중독과 관련해 청소년상담원의 상담을 받은 청소년은 2007년 3440명에서 2008년 4만 706명으로 13배정도 늘어난 데 이어 2009년에는 4만 5476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