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인천 해경부두에서 연평도를 빠져나온 주민들이 배에서 내려 거처로 이동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낚싯배를 예약한 손님이 있어 선착장에 나가 여객선을 기다리고 있는데 포격이 시작됐어요. 깜짝 놀라 집으로 뛰어갔죠. 집 부근에서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울고 있더라고요. 하굣길에 놀란 딸을 데리고 집에 가니 마침 굴 캐러 갔던 부모님도 집에 막 돌아오셨더라고요. 가족들을 대피소로 데려간 뒤 출항을 준비해 놓은 낚싯배를 정박시키고 나니 다시 북측에서 포격을 시작했어요. 1차 포격 때보다 소리가 훨씬 컸고 포격도 민가 부근인 매립지에 집중돼 정말 아찔했죠.”
평범한 40대 가장인 한 연평도 주민이 들려준 북한 포격 당시의 정황이다. 그처럼 여객선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선착장에 나와 있던 주민들이 많았고 굴 철이라 굴을 따러 나가 있던 이들도 많았다. 다행히 포격은 선착장과 굴을 따는 갯벌은 피해갔다. 다만 학교가 일찍 끝난 저학년 학생들과 집에 있던 노인층이 민가에 있었는데 다행히 빠른 대피로 큰 피해는 없었다. 연평도를 떠나 인천으로 온 학생들은 인천시에서 임시학교를 배정해줘 현재 인천 소재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주민들은 군과 행정 당국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우선 포격이 시작될 당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준 데 대한 불만이 많았다. 한 주민은 “1차 포격이 시작됐을 당시 무슨 일인가 싶어 인근에 있던 군인에게 물어보니 사격 훈련하다 오발이 된 것 같으니 걱정 말라더라”며 “대피 사이렌도 안 울리고 대피하라는 안내방송도 없더니 2차 포격 때서야 비로소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다”고 말한다.
갖가지 의혹을 제기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안은 중국에서 북의 연평도 포격을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다. 그 근거로 주민들은 “가을 꽃게 철이라 중국어선 20~30척 가량이 북측 해상에서 조업을 하곤 하는데 보름쯤 전부터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이에 대해 한만희 연평도 수협출장소장은 “가을에는 봄보다 적은 20~30척가량의 중국 어선이 조업을 한다”면서 “예전처럼 중국 어선이 기승을 부리지 않아 신경을 쓰진 않아 보름 전부터 중국 어선이 보이지 않았다는 얘길 듣진 못했다”고 말했다. 만약 중국이 북측으로부터 미리 포격 관련 사항을 듣고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에 이를 알렸다면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이는 연평도 주민들이 제기하는 의혹들 가운데 하나일 뿐 확인된 사안은 아니다.
연평도 주민들은 북한이 마구잡이로 포격한 것이 아닌 정밀타격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1차 포격 당시 군부대, 유료고와 탄약고, 통제소, 면사무소 등에 포격을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포격을 받지 않은 군부대도 있다. 한 주민은 “그 부대는 정보를 다루는 부대로 알고 있는데 그곳은 군부대지만 포격이 없었다”라며 “정보 부대를 타격해 레이더 시설 등이 고장 날 경우 한국군이 정확한 연평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전면전으로 확산될까봐 그런 게 아닌가 싶다”는 나름의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북측의 주장처럼 한국군이 사격 훈련 도중 실수로 북한 지역을 먼저 포격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이 질문에 “한국군 사격 훈련에 응사하는 듯한 북측 포격이 시작됐다” “그날 오전부터 이어지는 사격 훈련 소리를 들으며 저러다 한 방만 북쪽으로 잘못 가면 큰일 날 텐데라고 생각했었다” 등의 얘길 전해주는 주민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한국군의 서북도서 해상사격 훈련은 오후 2시 25분에 종료했고 북측의 포격은 2시 34분에 시작됐다. 채 10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응사로 보기엔 긴 시간이다. 한편 군에선 당일 사격훈련이 호국훈련의 일환이라고 했다 다시 월례훈련이라고 하는 등 혼선을 보였지만 주민들은 “종종 벌이는 일상적인 사격훈련이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연평도를 떠난 200여 명의 주민들은 여객선에서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획기적인 대책이 없는 한 주민들은 연평도에서 살 수가 없다”는 한 주민은 “정부지원도 중요하지만 민간투자가 있어야 하는 데 누가 연평도에 투자하겠냐? 관광호텔 설립 등 민간투자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다 물거품됐다”며 한숨을 내쉰다. 연평도에서 숙박업을 한다는 한 주민은 “천안함 사건 이후 서해 5도 관광객이 크게 줄었는데 그나마 연평도가 피해를 덜 입었었다”며 “이제 연평도도 끝이다. 누가 연평도에 관광 오겠냐?”며 참담한 심정을 내보였다.
지금이 한창 꽃게와 굴 철인데 주민들이 모두 연평도를 빠져나오면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꽃게 조업을 하는 한 주민은 “마지막 꽃게 조업을 하고 굴 따서 겨울 날 준비를 한창 할 시기에 이런 일이 생겨버렸다”라며 “그날 따온 굴을 창고에 그냥 두고 왔는데 그것도 다 버리게 생겼다”고 아쉬워했다.
이번 포격으로 너무 놀란 터라 연평도를 떠날 거라는 주민들도 있고 그래도 생업이 있는 연평도를 떠나지 못한다는 주민들도 있었다. 그러나 연평도에 남건 떠나건 당장 앞이 막막한 것은 모든 연평도 주민이 매한가지일 터다. 연평도를 방문한 송영길 인천시장은 “북한 인접 지역에서 자리를 지키고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애국적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주민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이어진 각종 정부 보조는 주민들을 볼모로 이용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이번 포격이 이를 입증했다”라며 “포격이 이뤄진 연평도의 낡은 대피소만 봐도 안다. 그 위로 포격이 떨어지면 대피소가 무너져 내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뭔가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연평도 주민들의 놀란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평도=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