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의 <웃찾사>와 MBC의 <하땅사>가 폐지되면서 생계를 걱정하는 개그맨들이 많아졌다. |
<웃찾사> 출신의 개그맨들은 요즘 농담 삼아 자신들을 ‘직찾사’로 부르곤 한다. ‘웃음을 찾는 사람’이 아닌 새로운 ‘직업을 찾는 사람’들이 돼버린 자신들의 신세를 빗댄 말이다. 방송출연료 수입이 없어진 요즘, 실제로 <웃찾사> 출신의 개그맨들은 상당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무명의 신인부터 한때 주목을 받았던 스타 개그맨들까지 대다수의 출연 개그맨들이 생계를 위해 개그 무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
‘잭슨 황’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개그맨 황영진은 현재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리포터 활동으로 수입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웃찾사>가 폐지된 후에 자신이 직접 프로필을 만들어 방송국을 돌았다고 하는데, 문전박대는 물론 동정어린 시선을 받아 자존심 상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다행히 (프로필을) 돌린 만큼 연락이 왔다”며 현재 4개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라고 자신의 근황을 전한다. 하지만 자신의 분야가 아닌 곳에서 일한다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을 터. 그는 얼마 전 (방송 오프닝에서) 자신을 리포터로 소개하라는 PD의 말에 발끈해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리포터 활동을 하고 있지만 자신은 영원히 개그맨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자부심을 지키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개그맨 C 또한 리포터 활동으로 수입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대박 코너를 여럿 터뜨리며 한때 활발한 방송 활동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개그 프로그램의 폐지로 활동도 뜸해진 상황이다. 그는 주로 아침 방송이나 지역 방송 등 시청층이 적은 곳에서만 리포터 활동을 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개그 무대로 복귀할 그날을 위해 최대한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나름의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그는 얼마 전 사석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그 방송들을 보고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정말 창피스러웠다”며 자신이 개그 무대가 아닌 프로그램에서 활동해야 하는 현실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김하늘 흉내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웃찾사>의 고참급 개그맨 윤성한은 <웃찾사> 폐지에 대한 입장을 표현했다. 그는 “상업방송인 이상 방송국 입장에서는 시청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인지 오래전부터 폐지의 조짐이 있었다”며 “하지만 설마 없어지겠나 하는 마음으로 개그맨들이 안전불감증을 가졌던 것 같다”고 개그맨들한테도 일부 책임이 있음을 시인했다. 그는 또 “예전과 달리 행사장에 가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며 “예전에는 ‘웃찾사’의 윤성한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이제는 ‘웃찾사’로 소개를 하기조차 머쓱한 상황이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현재 단짝 정만호와 함께 팀을 이뤘던 개그듀오 ‘사스’의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고 한다. 어렵게 구한 제작자들이 ‘웃찾사’의 예전 같지 않은 인기에 중도에 손을 뗀 일이 수차례였다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옛 영광을 재현해보고 싶다는 게 그의 간절한 소망이다.
<웃찾사>의 인기 코너였던 ‘서울나들이’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개미핥기’ 이광채와 ‘브로콜리’ 박영재. 간간이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서울나들이’의 한 식구 이동엽을 제외하면 이제 이들의 모습은 여간해서 보기 힘들다. 이광채는 현재 자신의 별명을 딴 공연기획사 개미엔터테인먼트를 차린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활동이 어렵게 된 이상 자신의 특기인 마술 등을 공연 무대에서 선보이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박영재는 <웃찾사>가 폐지되기 전인 올해 초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 식당을 차려 이미 전업을 예고했다. ‘서울나들이’ 이후 마땅한 후속 코너가 나오지 않자 스스로 한계에 부딪쳤다는 생각이 드는 데다 행사 수입도 예전 같지 않아 새로운 곳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는 오는 12월 초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개그맨들과는 달리 출연료만으로 근근이 생활하던 무명의 개그맨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꽃이 피기도 전에 꿈을 포기할 수는 없고, 꿈을 위해 달려가자니 당장의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한때 <웃찾사>의 높은 인기로 대학로 공연장에는 수백 명의 연습생이 몰렸지만, 지금 현재는 50여 명도 안 되는 인원만이 남아있다. 대학로를 떠난 대부분이 꿈을 포기했거나 군 입대를 준비 중이며, 일부는 공개 코미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KBS <개그콘서트>에 입성하기 위해 공채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웃찾사>의 인기 코너에 고정 출연했지만 얼굴과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개그맨 L은 현재 대학로 등지에서 가판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목도리와 장갑 등을 팔고 있는 그는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볼까 하는 마음에 상당히 위축된 모습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또한 개성 있는 외모로 주목받았던 신인 개그맨 H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행사 무대를 전전한다고 하는데, 일당 5만 원 행사도 마다하지 않아 주위 개그맨들로부터 자존심까지 파냐는 핀잔을 듣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없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한편 스탠딩 토크를 선보여 인기를 얻었던 개그맨 Y 등 몇 명은 보험설계사로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마땅한 기술 대신 입담과 주위의 인맥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보험설계사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MBC <하땅사> 출신 개그맨들은 유독 유부남이 많아 더더욱 생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C 공채 출신 개그맨 오정태 김완기를 비롯해 2006 MBC <연예대상> 신인상까지 수상했던 김주철, KBS <개그콘서트>에서 이적해온 오지헌 등이 이른바 처자식이 딸린 몸들이다. 이들은 분유 값 한 푼을 더 벌기 위해 행사 무대는 물론, 출연료가 적은 라디오 스케줄까지도 소화하고 있으며 각종 사업에도 손을 대는 등 어느 때보다 치열한 ‘쩐의 전쟁’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