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추신수 선수(왼쪽)와 연기자로 활동 중인 동생 추민기가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도중 동생 추민기가 메달을 깨무는 시늉을 하며 장난치고 있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금메달보다 더 진한 형제애
추신수 동생 추민기는 형이 아시안게임 결승전 승리 후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다가 결국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고 한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를 바라보고 있는 형의 심정이 어떠하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형이 어떻게 해서 그 자리까지 오르게 됐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기쁘면서도 형언할 수 없는 심정이 됐던 거죠. 전 형이 노란색 메달을 들고 올 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이 목표로 세운 건 반드시 이뤄내는 성격이었거든요. 평범한 스타일이었다면 미국에서 그렇게 고생하면서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추민기는 지난해 방송된 형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형이 미국에서 얼마나 어렵게 야구를 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루키 시절 40℃가 넘는 뜨거운 땡볕에 앉아서 햄버거 먹은 얘기를 들으니까 진짜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어디 가서 추신수 선수 동생이라고 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요. 제 생활하기 바빠서 형한테 제대로 안부 전화도 못하고, 부모님이 주시는 돈으로 학교 다닐 때 형은 애리조나의 그 뜨거운 폭염 속에서 야구하고 햄버거 먹고 그랬던 거잖아요.”
가만히 동생 얘기를 듣고 있던 추신수가 입을 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걸 가족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고생은 저 혼자하는 걸로 충분했거든요. 그 방송 보시고 가족들이 다 울었나 봐요. 하지만 그런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부터 빅리그에서 뛰었다면 그 자리의 소중함을 몰랐을 겁니다. 잊지 못할,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어요.”
“형 덕분에 내가 편했어^^”
▲ 추신수와 추민기 형제. |
“제가 자식을 키워보니까 동생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만약 부모님께서 저한테 신경 써주신 만큼 동생한테 해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돼 있을 거예요. 그런데도 나쁜 길로 안 빠지고 연기자의 길을 택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걸 보면 너무 고맙죠.”
추민기가 ‘진지 모드’로 인터뷰에 열중하고 있는 형한테 한방 먹인다.
“형이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전 형한테 오히려 고마웠다니까요. 우리집 ‘두목’이신 아버지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데요(웃음).”
메이저리그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형에 비해 동생의 현실은 조금 고달프고 팍팍하다. 드라마 <친구> 이후 후속작이 없는 상황이라 지금은 학습용 CF랑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톱스타나 주연 배우 아니고선 조연 단역 등의 연기자들은 모두 생활고 때문에 힘들 거예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고요. 하지만 이제 그런 고민은 넘어섰어요. 살아가는 건, 어떻게든 살아가게 돼 있더라고요.”
추신수 또한 동생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털어놓았다.
“잘될 거란 믿음은 있지만 하루 빨리 자리를 잡았음 하는 바람은 있어요. 지금은 추신수 동생 추민기지만 언젠가는 제가 동생 덕을 보고 살 날이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이전에 박정태 선수의 조카 추신수였다가 지금은 추신수 삼촌이 박정태라고 불리는 것처럼 동생도 절 더 빛나게 해줄 거라고 믿어요. 동생이 분명 그랬거든요. ‘형 호강시켜 준다’고.”
“형, 연습했나? 말을 이리도 잘하나.”
“형이랑 한 달 정도 같이 살면 이렇게 말이 나온다.”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한 번씩 치는 대화들이 폭소를 터트리게 하는 형제들이다.
우리 집에 ‘출생의 비밀’이?
형이 야구를 할 때 동생은 엄마가 사다 준 스케치북을 갖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동생은 형이 좋아하는 터미네이터를 그린 후 형이 운동 마치고 돌아오면 제일 먼저 보여줬다.
“그림을 따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디테일한 부분까지 아주 잘 그리더라고요. 제 입장에선 마냥 신기했죠. 똑같은 엄마 뱃속에서 나왔는데 전 그림에 완전 ‘꽝’이고 동생은 엄청난 소질이 있었으니까요. 부모님도 미술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그때 갑자기 궁금해지더라고요. 우리 집에 출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나 싶어서요(웃음).”
동생이 기억하는 유년시절의 대부분은 형 추신수로 채워져 있다. 성격은 달랐지만 서로 취미가 비슷해 자동차나 장난감 등을 조립하는 걸 좋아했고 동네 공터에서 팽이치기나 딱지치기도 즐겨했다. 서로 싸운 적이 없었느냐고 묻자,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형한테 대들었다가 한 대 얻어터진 후에는 ‘이 사람을 이기기 어렵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 다음부터는 순한 양으로 변모했다”고 설명한다.
추신수는 이런 말로 동생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설명한다.
“아버지가 우리를 앉혀 놓고 자주 하셨던 말씀이 부모 죽고 나면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너희 둘밖에 없으니까 죽을 때까지 동생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동생은 제가 보호해줘야 할 사람으로 인식돼 있어요. 연기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을 텐데 TV에 나오는 동생을 보면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져요.”
“형 은퇴하면 내가 책임질게!”
추신수는 <일요신문>에 연재하는 자신의 일기를 통해 항상 희생만 해온 동생한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동생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 또한 힘든 상황이라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한 부분들이 항상 마음 속 그늘이 돼 왔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저한테 손을 안 내밀어요. 부모님한테도 마찬가지고요. 동생이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엄청 커요. 다른 사람들은 제가 금메달 땄다고 축하해주지만 동생은 지금 당장보다는 제가 미국 가서 더 고생할 것 같다며 마음 아파하더라고요. 이래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신수는 미국 생활 10년 동안 시애틀 입단 초기 때 말고는 부모님이 한 번도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식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에서다.
“애리조나에 집을 사놓고선 부모님께 보여드리질 못했어요. 내년에는 부모님과 동생을 미국으로 초대해서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제 모습도 보여드리고 좋은 곳도 구경시켜드리면서 자식 노릇 한 번 해보려고요. 금메달 따서 가장 좋은 게 뭔지 아세요? 비로소 우리 가족들이 부담을 덜고 야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생도 더 이상 마음 졸이지 않을 것 같아요.”
추민기는 형에 대한 바람을 이렇게 전했다.
“전 형이 연봉을 얼마를 받고 몸값이 어떻게 되는지 관심없어요.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만 있어요. 선수 생활 마치고 은퇴하면 그 후엔 제가 형을 책임질테니까요(웃음).”
갈 길이 다르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두 남자의 시선은 참으로 따뜻했다. 부산 사나이들의 진한 형제애가 인터뷰 내내 기자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다. 참으로 가진 게 많은 추신수다.
인터뷰 후 추신수와 ‘다섯 자 토크’를 진행했다. 한참 고민을 하던 그가 이런 대답을 늘어놓는다.
‘추신수한테 아시안게임은? 인생 반환점, 추신수한테 선수촌이란? 할 거 없는 곳, 추신수한테 대표팀이란? 완전 최강팀, 추신수한테 박경완이란? 나의 롤모델, 추신수한테 마이너리그란? 눈물 젖은 빵, 추신수한테 메이저리그란? 참,어렵죠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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