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동북지방에 진도 9의 강진이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난 14일 오후 일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에서 피난민들이 쓰나미 피해지역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내에서 지진과 해일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동해안 지역을 찾아가 재난에 따른 가상 시나리오 및 대피소 실태와 실제 대피요령 등을 살펴봤다.
지진은 밀도가 높은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밀려들어가면서 생기는 충돌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해양판과 유라시아 대륙판 경계 위에 위치한 일본은 지진의 빈도가 잦은 지역이다. 한국은 그 경계선에서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뿐이지 동일한 유라시아 대륙판 위에 있어 ‘지진의 안전지대’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최대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어디일까. 한국지진연구소 측에 자문을 구한 결과 동남권 해역, 즉 포항, 울산, 경주 지역으로 나타났다. 경주의 경우 통일신라시대인 779년 역대 최대 진도인 6.5~7.0의 지진이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주는 양산단층과 울산 단층이 만나는 곳으로 경주, 포항, 울산 일대는 최근까지 단층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실제 기상청에서 제공한 국내 역대 지진 피해사례에 따르면 울산 해역에는 1992년~1994년 사이 진도 4.0~4.9의 지진이 관측됐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국내 16기 원자력발전소가 운전 중이거나 건립 중인 곳이다. 또 국내 석유화학단지가 밀집돼 있어 지진 발생 시 석유저장탱크가 폭발하면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것은 물론 유독가스까지 배출될 우려가 높다. 어느 지역보다 지진과 해일에 대한 대비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실제 안전실태는 어떨까. 기자는 한국의 동남권 해역을 찾아가 봤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부산시 기장군이었다. 이 해안가 바로 앞에는 고리원자력 발전소가 자리잡고 있다. 고리원전은 1978년 가동된 후 1호기부터 4호기까지 모두 313만 7000k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번 쓰나미로 위험에 노출된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와 비슷한 설립연도인데다 같은 업체가 설계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지진 발생 시 동일한 양상의 피해가 진행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여기에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7.9의 진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만 고리원전의 경우 7.0으로 맞춰져 있다. 때문에 일본을 강타한 진도 9.0을 대입해 볼 때 고리원전의 피해는 더욱 심각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고리원전을 제외한 인근 월성원자력(4기), 울진(6기), 영광(6기)의 경우 내진설계는 리히터 규모로 6.0~6.5 정도로 맞춰져 있어 원자로 폭발에 따른 방사능 유출 가능성은 일본보다 국내가 더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안전대비는 센다이 시보다 훨씬 뒤떨어진 것이 국내의 현실이다. 비단 원자력발전소만의 문제에 국한돼 있지도 않은 실정이다. 소방방재청에서 제공한 인근 건축물 내진설계 현황에 따르면 이곳에 들어선 발전소를 비롯한 석유화학공장 시설물들의 내진설계는 모두 리히터 규모 6.0~6.5까지의 지진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 즉 7.0 정도의 지진만 발생해도 석유화학공단의 석유탱크가 폭발하고, 화학공장으로부터 유독가스가 도시 전역에 퍼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일반 건물의 위험성도 마찬가지다. 최근 소방방재청에서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 부산에 6.5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건물의 60~70%가 완파 또는 반파되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한 울산의 경우는 건물의 2.1% 만이 내진설계를 갖추고 있는 실정이다.
방사능 피폭의 위험과 함께 도시가 사전에 이 같은 위기를 인지한다면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기장군청 재난안전과에서 밝힌 지진 및 해일 예측 가능 시간은 최대 10~15분 전이라고 한다.
기자는 최악의 위험단계인 ‘대피명령이 떨어졌다’고 가정하고 국가재난정보센터의 안내에 따라 인근 대피소를 찾아가 봤다. 부산 기장군 인근 대피소는 두 곳뿐이었다. 민간 상가 지하와 읍사무소 지하에 마련돼 있었다. 먼저 민간상가 지하(165㎡)로 지정된 대피소로 찾아갔다. 그러나 낡은 대피소 팻말만 간신히 붙어 있을 뿐 대피소가 있어야 할 지하는 노래주점으로 쓰이고 있었다. 지하가 노래주점으로 쓰이지 않았더라도 대피소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지은 지 30년 이상된 건물은 겉으로 보기에도 곳곳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인근 주민들 역시 이곳이 대피소란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읍사무소 지하에 위치한 다른 대피소로 찾아가봤다. 우수영 민원계장은 “(20년 전) 부임 이후 한 번도 문을 열어 본 적이 없다. 지하에 20㎡(6평) 정도의 공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며 대피소 개방을 꺼렸다. 그는 대신 “건물이 워낙 오래되다보니 신축 건물로 대피소를 이전해야 한다고 관할 군청에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기장군에는 대피소로 지정된 장소라도 존재하지만 나머지 월성, 울진, 영광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진도 7.0의 지진만 발생해도 폭발 위험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인근 대피소가 전무했다. 관할 군청에 전화해 직접 조회한 결과 어렵게 상가 건물 지하주차장에 있는 대피소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차량으로 20~30분 정도 이동해야 도착이 가능한 곳이었다.
기장군을 벗어나 이번엔 관광객들이 몰리는 해운대로 가봤다. 일본 대지진의 여파인 듯 해안가 곳곳에 드문드문 대피로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안내된 대피로를 따라 호텔이나 아파트 주차장을 제외한 민간시설물과 상가 지하에 마련된 대피소로 이동했다. 낡은 건물 사이로 온천탕 지하 주차장에 위치한 대피소 푯말이 눈에 띄었다. 이 건물 역시 1970년대에 지어진 4층짜리 낡은 건물이었다. 심지어 건물 업주는 이 건물이 유사시에 대피소로 활용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건물 주인인 김 아무개 씨(여·54)는 “10년 전 건물을 매매했을 때부터 대피소 푯말이 있었다”며 “별다른 유사시 행동요령이나 대응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대피소가 하나같이 낡은 상가건물 지하로 지정된 이유가 무엇일까. 대피소의 경우 각 군청 재난관리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기장군청 재난관리과 관계자는 “군사정권 시절 규모가 큰 건물 지하로 대피소가 지정됐다”며 “아마 그 당시엔 신식건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낡은 건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피소와 원전의 내진설계 보강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아직까지 한반도에 7.0 이상의 지진이 올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과 백민 과장은 “국내 원전은 0.2g의 지반 가속도(지진으로 실제 건물이 받는 힘, 리히터 규모 6.5에 해당)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우리나라 지반은 일본과 달리 판 경계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원전 건설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도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은 리히터 규모 5.2가 최고였다”며 “지난 100년 동안 5.0 이상 지진은 5번에 불과하지 않냐”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쓰나미 역시 140년 만에 불어 닥친 이례적인 진도 9.0이었다는 점에서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최소한의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 2008년 리히터 규모 7.9를 기록하며 유례없는 대재난을 맞았던 중국 쓰촨성 지진 사태 역시 한반도가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
2~3년 주기로 출렁출렁
기상청 지진센터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는 건물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알려진 진도 6.2~6.9 이상의 지진이 100여 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치는 예년에 비해 다소 증가한 것이지만 그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질학적 원인이 거론되고 있거나 지진의 발생 추이에 대한 다양한 학설만 제기되고 있을 뿐이지 어떤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는 판단을 내리긴 어렵다고 한다.
이번 대지진 참사를 입은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연해 지역 역시 ‘불의 고리’라 불리는 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있으나 지난 100년 동안 큰 지진이 일어난 기록이 없었고 이 같은 이유로 그동안 지진 취약지역으로도 분류되지 않았다.
국내 역시 통일신라시대 때 6.5~7도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5.5도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국내에도 매해 끊이지 않고 4.5~5.0 이상의 지진이 서해안, 동해안 부근을 흔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진 관측이 시작됐던 1978년부터 기록을 살펴보면 충청북도 속리산 부근 지역에서 9월 16일 5.2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같은 해 10월 7일에는 충청남도 홍성읍에서 5.0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1980년 1월 8일에는 평안북도 서부 의주-삭주-귀성 지역에서 5.3도의 강진이 발생했다.
1981년 4월 15일에는 포항 동쪽 약 65㎞ 해역에서 진도 4.8의 지진이 발생했다. 1982년에는 울진, 황해도, 서해중부 덕전도 서쪽 해역과 서해중부 영흥도 해역에서 각각 진도 4.0의 지진이 휩쓸고 지나갔다.
1985~1991년 사이 잠잠하던 지진은 1992년을 시작으로 남동쪽 해안, 울산에서 관측됐다. 울산 남동쪽 약 175㎞ 해역에서 진도 4.0, 4.0, 4.6, 4.5의 지진이 네 차례 발생했다.
남동쪽 해안에서 관측된 지진은 1994년부터는 휴식기를 가지지 않고 1, 2년 주기로 계속해서 한반도를 흔들어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4년 전라남도 홍도 서북서쪽 100㎞ 해역, 1995년 7월 24일 백령도 북서쪽 약 30㎞ 해역에서 각각 4.9, 4.2의 지진이 관측됐다. 1996년 강원도 양양 동쪽 약 80㎞ 해역에서 4.2, 같은 해 영월 동쪽 약 20㎞ 지역에서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바로 다음해에는 경주 남동쪽 9㎞ 해역에서 4.2도의 지진이 바다를 울렸다.
1999년~2001년까지 진도 4.1, 4.2 에 불과하던 지진은 2003년부터는 그 힘이 더 강해졌다.
전라남도 홍도 북서쪽 약 50㎞ 해역에서 발생한 4.9도의 지진은 해일을 몰고 왔으며 4억 원의 재산 피해를 내고 끝났다. 바로 3일 후 인천광역시 백령도 서남서쪽 약 80㎞ 해역에서 5.0도의 지진이 또 발생했고, 다음해엔 경북 울진 동쪽 약 80㎞의 해역에서 5.2도의 지진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