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흙벽돌집에는 곰방대를 문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
경인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보름만 지나면 달력을 바꿔야 하고, 정묘년 토끼와 만난다. 호랑이와 작별을 고해야 할 이때, 어느 누구보다 아쉬워하는 곳이 있다. 경기도 안성의 복거마을이 바로 거기다. 두리마을 공동체의 일원인 이 마을은 예부터 ‘호랑이마을’로 불려왔던 곳이다. 실제로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한다. 그런데 그게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요즘도 호랑이가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는데, 그 믿기지 않는 이야기 마을 속으로 한 번 찾아가 보자.
일곱마을 모인 두레마을공동체
복거마을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신양복리에 속한 아담한 농촌이다. 이 마을은 주변의 다른 여섯 동네와 함께 두리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두리’는 순우리말로 ‘뭉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리마을공동체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문화특별자치구다. 보개면 양복리 양협, 금광면 신양복리 복거·신기·동신곡·홍익아파트, 내우리 구송동 등이 이에 속한다. 행안부의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시범지구로 선정되면서 안성시가 이들 동네를 한데 묶어 특별한 문화벨트로 만든 것이 바로 두리마을공동체다. 안성시는 이곳을 세계적인 예술문화도시로 가꿔나간다는 계획인데, 각 동네마다 옹기체험장·플로랜드·생태연못·창작스튜디오·자연예술공원 등을 건설하고 자전거하이킹코스를 개발하면서 추천할 만한 하나의 여행지가 되었다.
두리마을공동체 중앙부에 자리한 복거마을은 ‘아름다운 미술마을’로 새롭게 태어났다. 설치미술품과 벽화들이 마을의 허전한 공간들을 채웠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작품들이 아니었다. 마을과 꼭 어울리는 주제의 작품들, 그것은 바로 ‘호랑이’였다.
호랑이가 살던 마을
복거마을은 120가구 300여 명의 주민들이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조용한 마을이다. 호랑이는 이 마을의 상징적인 존재다. 마을의 이름도 호랑이에서 유래됐다. 마을 뒷산의 형세가 바짝 엎드린 호랑이 모양 같다고 해서 복호리(伏虎里) 혹은 호동(虎洞)으로 불려왔다. 실제로 이 마을 노인들은 뒷산에 호랑이가 살기도 했다고 말한다. 현재는 ‘엎드릴 伏(복)’자 대신 ‘복 福(복)’자를 쓰는데, 풍요를 기원하며 개명한 것이다.
‘아름다운 미술마을’ 프로젝트는 지난해 1월 21일부터 7월 31일까지 추진됐다. 지역 예술가들과 미대생들이 참여해 복거마을의 대변신을 이뤄냈다. 일단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호랑이구조물이 설치됐다. 마치 장승처럼 우뚝 서 있다. 고철을 이용한 작품이다. 부리부리한 눈과 날카로운 이빨, 큼직한 발이 위용을 더 한다. 악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려다가도 이 호랑이를 보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칠 판이다.
한길을 따라서 조금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흙벽돌집 외벽에 민화풍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는 작품이다. 긴 곰방대를 문 호랑이 옆에서 토끼가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위트 넘치는 그림은 스러질 듯 허름한 집과 잘 어울린다. 아주 오래전 지은 이 집은 흙으로 벽돌을 만든 후 정성껏 쌓아 외벽을 구축했다.
이 작품 옆으로는 인물벽화가 보인다. 몇 점 안 되는 다른 주제의 작품이다. 복거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담겼다. 주민들은 이 앞을 지날 때마다 거울을 보듯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며 미소를 짓는다.
▲ 고려 전기에 세워진 안성객사. 사신들이 내왕할 때 묵었던 곳이다. |
주민들 참여한 벽화작업
그런데 이들 주민들은 어엿한 화가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미술마을 프로젝트에 주민들도 직접 참여했다. 여느 농촌처럼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인데, 난생 처음 그림을 그려본다는 이들이 태반. 그러나 훌륭하게도 벽을 곱게 메워나갔다. ‘꽃밭과 소’를 그린 유정숙 할머니(75)는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 여행객들이 마을을 찾을 때면 말 붙이기를 좋아하고, 슬쩍 그림 얘기를 꺼내며 자랑을 한다. 벽화작업 이후로 할머니는 손녀가 사다 준 크레파스로 열심히 그림과 사랑에 빠졌다.
호랑이방앗간도 대표적인 벽화건물 중 하나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는 호랑이와 흥겹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측벽에 그려져 있다. 옛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다. 농특산물 가공 공동작업장으로 고추 건조, 참기름과 들기름 추출, 절임라인 가동 등으로 주민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이곳에서 질 좋은 먹을거리를 믿고 구입할 수 있다.
마을에는 이들 작품 외에도 ‘하늘에서 호랑이가 내려온다’, ‘옥상 위의 호랑이’ 등 모두 52개 작품이 있다. 한가하기 그지없는 마을을 뚜벅뚜벅 걸으며 작품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 고즈넉한 고삼지는 수질도 깨끗해 붕어와 잉어가 많다. |
금광호수와 안성객사
한편, 복거마을 인근에는 둘러볼 곳도 많다. 일단 고삼지와 함께 안성을 대표하는 금광지가 있다. 1965년 9월 준공된 V자 계곡형의 이 호수는 겨울철 새벽이면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나 아름답다. 빙어낚시로 유명하기도 하다. 호수를 따라 돌다보면 곳곳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을 쉽게 만난다. 호수변에는 미평문학관도 자리하고 있다. 시인 김윤배 씨가 세운 곳이다. 안도현, 김기택, 정호승 등의 육필원고를 전시하고 있다.
안성객사도 들러볼 만하다. 보개도서관 앞에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사신들이 내왕할 때 묵었던 장소로 유형문화재 154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전국적으로 모두 360개의 객사가 있었는데, 안성객사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두리마을 내의 플로랜드도 좋다. 플라워와 랜드의 합성어로 국립 한경대학교가 운영하는 친환경자연학습공간이다. 300여 종의 식물이 계절별로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데, 겨울이라 그 모습은 볼 수 없다. 하지만 플로랜드 가장 높은 언덕에 마련된 비지터센터에서는 동의보감약초사진전이 개최되고 있다. 잘 몰랐던 약초의 모습과 그 효능을 알아갈 수 있는 전시다. 이곳에서는 카페도 운영하는데, 전망이 참 좋다.
두리마을의 체험프로그램을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장어잡기, 약초비누만들기, 전통옹기만들기 등의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평택제천간고속도로 남안성IC→57번국도→302번지방도→복거마을. 중부고속도로 이용시 일죽IC→38번국도→종합운동장삼거리→안성종합운동장→복거마을. ▲먹거리: 복거마을 바로 옆 조령천 자연예술공원에 먹뱅이푸드빌리지가 있다. 두부요리가 일품인 국보966(031-671-0966), 유황오리백숙과 토종닭백숙을 잘하는 시골농장(031-673-6620) 등 22개의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잠자리: 복거마을 인근의 금광호수를 따라 돌다보면 목화촌펜션(031-674-5900), 비치호텔(031-671-0147) 등이 있다. ▲문의: 두리마을공동체(www.doori7.co.kr) 031-671-3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