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성이 지난 13일 아스널과의 홈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포효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지성이가 아시안컵 이후 은퇴할 것이라고 말하니까 어떤 축구인이 ‘지성이 몸은 개인이 아닌 국가의 몸이다’라고 말한 기사를 읽었다. 지성이도 항상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은퇴를 발표하는 데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그래서 내가 나선 것이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놓는 게 지성이의 부담을 줄여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성이가 자유로운 몸이라면 월드컵 이후 확실하게 입장 정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은퇴 운운했을 때의 후폭풍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대표팀 마무리만큼은 좋은 이미지로 정리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동안 은퇴 발표를 미룬 것이다.”
박 씨는 남아공월드컵 이후 은퇴 시기와 관련해서 박지성한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느냐는 물음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성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여론이었다. 나이가 들고 수술한 무릎이 비행기를 탈 때마다 물이 차는 게 반복되면서 월드컵 이후 은퇴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은퇴한다고 말했을 때 이런저런 비난 여론이 몰릴까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 가지가 아닌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고, 결국 아시안컵 이후 소속팀에만 전념하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박 씨는 체력적인 부분보다 무릎이 좋지 않았던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박지성이 아시안컵 이후 은퇴할 것이라는 부분은 맨유 퍼거슨 감독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이 나온 김에, 박 씨에게 박지성과 퍼거슨 감독이 대표팀 은퇴와 관련해 사전 교감을 나눴는지에 대해 물었다.
“지성이가 은퇴 문제를 놓고 감독과 상의할 사람인가. 이건 지극히 선수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감독과 상의할 사안이 되지 못한다. 단, 퍼거슨 감독도 이번 아시안컵이 지성이의 마지막 대표팀 무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굳이 선수 입으로 얘길 듣지 않아도 언론을 통해 다 알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감독 입장에선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이례적으로 지성이를 일찍 대표팀에 들어가게 해주는 걸 보면 뭔가 배려를 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박지성이 A매치를 뛴 횟수는 모두 94번. 6번을 더 뛰면 센츄리 클럽(A매치 100회 이상)에 가입할 수 있다. 한국이 아시안컵 4강까지 올라가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에 대해 박 씨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지성이도 센츄리 클럽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100경기를 채우면 좋겠지만 99경기, 98경기로 끝난다고 해도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그건 단순히 숫자일 뿐이다. 100경기에 뛰지 않았다고 해서 지성이의 축구인생이 달라지진 않는다. 지성이한테 오히려 100을 다 채우지 않고 여운을 남겨놓는 것도 좋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리고 우승까지 간다면 그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다.”
박지성이 대표팀 은퇴를 발표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다. 만약 대표팀 감독이나 축구협회에서 박지성의 은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설 경우, 그리고 박지성에게 조건부 제안을 하면서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까지 남아주길 바란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미 은퇴한다고 말해놓고 협회에서 조건부 제안을 한다고 주저앉는다면 더 바보되는 거 아닌가. 지성이를 대표팀에 자주 소집 안하고 중요한 대회에만 부른다는 제안을 해와도 (은퇴)결심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박 씨는 최근 박지성의 경기력이 정점에 올라선 상황에서 아시안컵에 합류하는 부분에 대해 이런 입장을 내세웠다.
“맨유 입단 5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풀시즌을 뛰어본 적이 없다. 아시안컵이 이전처럼 6월에 개최됐다면 지성이는 처음으로 풀시즌을 소화하고, 한두 골 더 터트린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표팀에 집중했을 것이다. 가장 좋은 시기에 맨유를 잠시 나와 있어야 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아시안컵에서 그에 상응하는 활약을 펼친다면 만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 박지성의 동료인 리오 퍼디낸드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박지성한테 온 선물, 초코파이’ 때문에 새삼 초코파이가 축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데 대해 박지성은 리오 퍼디낸드에게 곤란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얼마 전 지성이가 이사를 했는데 에브라랑 퍼디낸드가 ‘집들이’ 차 집을 방문했다. 그때 지성이가 ‘자꾸 초코파이 운운하면 간접광고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강하게 얘기하는 걸 들었다. 리오가 재미삼아 했던 일이 이상하게 확대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맨유 선수들 중 가장 많은 선물을 받는 걸로 유명한 박지성이 꼽은 가장 이색적인 선물은 무엇일까.
“아마도 ‘돈’일 것이다. 어느 팬이 신권이 나올 때마다 새로 나온 돈이라면서 보내준다. 웬만큼 돈을 버는 지성이한테 돈을 보내주는 팬의 마음이 신기해서 그 돈을 잘 보관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5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박지성을 만났을 때 기자가 “월드컵 이후 은퇴할 생각에는 변함이 없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박지성은 “체력적인 한계를 노출하는 선배들보다는 앞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선수들한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월드컵 이후 난 체력적인 문제를 포함해서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안 선다. 그래서 대표팀에서 은퇴할 계획을 세운 거고,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대답했다. 박지성은 당시 3,4년 정도 더 유럽에서 뛰다가 선수 생활도 은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자신의 축구인생 로드맵을 확실히 세운 그가 이번 아시안컵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후 아름다운 퇴장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