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호타이어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11월 직원 폭행 물의를 빚은 박래권 사장에 대한 퇴출 집회를 벌였다. 결국 금호타이어는 박 사장의 용역업체와 청소용역 계약을 해지했다. 사진제공=금호타이어 비정규직지회 |
지난 11월 말에 일어났던 SK그룹 최철원 씨의 화물노동자 폭행 사건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재벌가의 폭행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재벌가 폭행 사건’ 후속편의 주인공이 된 곳은 금호그룹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6촌 동생인 박래권 금동산업 사장(64)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폭행한 사건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박 사장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수년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이들의 임금을 착복한 의혹을 받고 있어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개인적인 폭행사건을 넘어 금호그룹과 노동계로 불똥이 튀고 있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금호타이어 노동조합 비정규직지회(지회)가 밝힌 금호그룹 폭행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지난 11월 6일 오전 박래권 사장은 비정규직 직원인 박 아무개 씨(48)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으로 급히 호출했다. “청소 상태가 불량해 다시 청소를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금동산업은 금호타이어 내 청소용역 사업을 맡은 도급업체로, 직원 11명이 방대한 작업장 청소를 모두 담당하고 있었다.
불호령에 급히 달려온 박 씨가 청소작업에 문제가 없다고 반발하자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당시 박 씨를 커터칼로 위협하고 얼굴과 눈 주위를 폭행하는가 하면 왼손 검지를 붙잡아 비틀었다. 이 과정에서 박 씨의 손가락은 부러졌고, 결국 전치 5주의 상해를 입었다. 박 사장은 경찰 진술에서 “조합원(박 씨)이 먼저 욕을 하고 때려 어쩔 수 없이 칼을 들었다”며 “손가락이 부러진 것은 알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박 씨는 12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박 사장이 ‘나이 어린 놈이 못 배워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사장도 몰라본다’며 욕설을 시작했다”며 “재벌가 사장님에게 그것도 나이 많은 사람에게 먼저 손찌검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곧바로 박 사장을 고소했고, 이에 질세라 박 사장도 “박 씨가 멱살을 세게 잡아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며 박 씨를 맞고소했다. 하지만 분쟁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 측의 발빠른 대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4일 뒤인 11월 10일 박 씨는 200만 원을 받고 합의했다. 금호타이어 노조가 이 사실을 파악하기도 전이었다. 박 씨는 23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사장이 ‘상황을 나쁘게 만들어서 좋을 게 뭐가 있냐’며 합의하자고 했다”며 “합의하면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사건이 불거지자 금호타이어도 신속하게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금호타이어는 지난 12월 22일 금동산업과의 청소용역 사업 계약을 해지했다. 김현오 부장은 “최철원 씨의 폭행 사건 불똥이 SK그룹에 튀자 금호그룹도 후폭풍이 두려워 황급히 사건을 덮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건 확전을 차단하려는 금호 측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폭행사건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등 노조 측의 조사 과정에서 박 사장의 오랜 ‘폭행 역사’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 속에는 어김없이 ‘비정규직 직원’과 ‘노조 관련 문제’가 중심에 있었다. 박연수 노조 지회장은 “박 사장은 수년 동안 박 씨를 포함한 노조 조합원에게 욕설을 일삼고 문제거리가 아닌 일로 꼬투리를 잡았다”고 주장했다. 박 지회장에 따르면 박 씨는 올해 초 금호타이어 지회에 가입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박 사장의 폭언이 지속되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금동산업 11명의 직원 중 4명이 노조에 가입했는데 박 사장은 이들을 상대로 눈에 띄는 ‘노조 탄압’을 자행했기 때문이었다. 가을철 수없이 떨어지는 낙엽 한 장에도 “청소가 불량하다”며 조합원을 호출하기 일쑤였다. 또 박 사장은 “○○새끼가…” 등의 욕설을 입에 달고 살기도 했다. 그래서 박 씨는 결국 노조 가입을 보류했고,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9월에야 가입을 결심하게 됐다. 박 씨가 노조에 가입하자 그도 박 사장의 타깃이 됐다고 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노조 탄압의 연장선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회가 밝힌 박 사장의 비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회 측에 따르면 박 사장은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을 수차례 착복하기도 했다. 박 지회장은 “자체 조사 결과 직원 4명의 임금 250만 원을 박 사장이 수년 동안 10만 원 정도씩 착복해 왔다”고 말했다. 직원 임금이 수년 동안 박 사장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자는 박 사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박 사장은 매번 전화를 받자마자 끊었고, 기자의 거듭된 문자메시지에도 응답이 없었다.
논란이 일자 진보신당은 지난 12월 20일 논평을 통해 금호그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심재옥 대변인은 “재벌권력의 비정규직 노동자 폭행 그 자체가 권력에 굴종을 강요하는 폭력”이라며 “당시 치료비가 200만 원에 합의된 과정에서 외압이나 협박 등 2차 가해가 없었는지 철저히 재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
“최악의 사태 피하려 합의했다”
폭행 피해자인 박 씨는 지난 12월 22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사건의 전말과 소회를 피력했다. 박 씨는 원만한 사태 해결을 위해 합의를 했고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합의금으로 200만 원은 너무 적은 액수 아닌가.
▲사장 멱살 잡았으니 나도 잘한 건 없지 않나. 도덕적인 면에서 (사장님이) 잘못했지만 서로 좋게 좋게 끝나야 최악의 사태를 면할 것 같아 합의했다.
―조합에 들었다는 이유로 박래권 사장이 수년 동안 폭행을 했다는데.
▲사장이 노조 싫어하는 것은 이해한다. 어떤 사장인들 그렇지 않겠나. 직원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고, 사업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금동산업의 노조원은 몇 명이나 되고 실태는 어떤가.
▲11명 중 3~4명이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한 상태다. 회사가 이들을 냉랭하게 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상태는. 복직은 할 수 있나.
▲현재 산재 처리 승인이 나서 5주간 쉬고 있는 중이다. 월요일(12월 27일)에 끝나는데 1월 4일까지만 더 쉬고 복귀할 것이다. 복귀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건에 대해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미 사건 해결이 다 됐기 때문에 기자와의 인터뷰도 불편하다. 사장님이 불명예스럽게 퇴진하시니 마음이 안 좋다. 일 때문에 그러신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