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조폭 출신이 주가 조작에 뛰어드는 영화 <작전>의 한 장면. |
전도유망한 코스닥 상장사였던 CTC사가 3년 만에 빈껍데기로 전락했다. 여기에는 사채시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업사냥꾼들의 검은 손이 작용했다. 기업사냥꾼들은 인수과정과 회사경영에 조폭들까지 끌어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3년간 회사 돈 306억 원을 먹어치웠다. 이 중 상당수는 유흥비로 탕진했다. CTC사는 2010년 3월 코스닥에서 자취를 감췄고, 생산시설 역시 가동이 멈췄다. 한때 연매출 100억 원 이상을 기록했던 유망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실상을 낱낱이 파헤쳐 봤다.
산업용 필터와 공기청정기를 제조하는 CTC사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벤처기업이었다. 지난 2001년에는 여타 후보자들을 제치고 대한민국 벤처기업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2002년 코스닥 상장 이후에도 꾸준히 100억 원대 이상의 연매출을 올렸다.
그러던 CTC사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지난 2007년. 회사는 모 제약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사채를 끌어다 썼다. 하지만 이는 큰 무리수였고 결국 회사는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CTC사에 사채를 꿔줬던 기업사냥꾼 김 아무개 씨(44)는 회사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김 씨는 무전 M&A 방식으로 회사를 인수하려 했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고, 사채업자 최 아무개 씨(63)의 돈을 끌어다 썼다. 또한 당시 김 씨와 같이 CTC사에 사채를 꿔줬던 조폭 김제읍내파 두목 이 아무개 씨(46)까지 끌어들였다. 김 씨는 조폭 이 씨를 통해 부족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었고, 이들을 공동사주로 참여시킴으로써 폭력근성을 적절히 이용할 수도 있었다. 조폭 이 씨 역시 잘만 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겠다는 심산으로 기업사냥에 뛰어들었고, 이에 정통한 김 씨의 머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상호 계산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다. 결국 CTC사는 지난 2007년 3월 기업사냥꾼-조폭-사채업자의 이른바 악의 트라이앵글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사주가 된 김 씨와 이 씨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을 등기에 올리지 않고 타인을 내세우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들은 회사인수 이후 2008년 3월까지 사채이자 변제, 회사인수 대금, 자문 수수료 등 각종 명목으로 77억 원 상당의 회사자금을 횡령했다. 더불어 246억 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진행하면서 24억 원의 가장납입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들이 회사를 인수한 2007년 CTC사 연매출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2008년 4월 이들은 다른 기업사냥꾼 노 아무개 씨(46)에게 회사를 넘겼다. 노 씨 역시 조폭 광주콜박스파 장 아무개 씨(41) 등과 손잡고 69억 상당의 횡령을 자행했다. 특히 2대 사주 노 씨는 1대 사주 김 씨보다 기업사냥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노 씨는 인수한 CTC사 이외에도 5개의 회사를 갖고 있었다. 상장폐지나 관리종목으로 편입될 위기에 처하면 사채업자에게 빚을 내어 자금이 상환된 것처럼 눈속임을 하거나 자신이 소유한 타사 명의로 차용증을 작성해 감사를 넘기기도 했다.
이들은 주가조작 세력에게 조종금 110억 원을 먹이고 주가조작에 나서기도 했다. 이러한 주가조작 작업에는 콜박스파 조직원 장 씨 등이 적극 나섰다. 장 씨 등은 대량매도로 주가가 하락했다는 이유로 회사 인수진행자를 폭행해 주식 300만 주(15억 상당)를 매수하도록 강요했다. 또 주가조작 세력들을 호텔에 가두고 조종금 110억 원 중 20억 원을 다시 뺏기도 했다.
2대 사주 노 씨는 2009년 2월 다시 다른 기업사냥꾼 윤 아무개 씨(43)에게 회사를 넘겼다. 3대 사주 윤 씨 또한 횡령과 가장납입 수법을 동원해 160억 원 을 챙겼다. 콜박스파 조직원들은 계속 회사에 남아 3대 사주 윤 씨의 뒤를 봐줬다.
3명의 사주와 조폭들에 의해 3년간 농락당한 CTC사는 2010년 3월 결국 상장폐지됐다. 이로 인해 개미투자자들은 600억 원대의 피해를 입었다. 생산시설이 있는 천안공장 직원들 역시 2~3억 원 상당의 밀린 월급을 받지 못했다. 검찰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당시 강남 사채시장에 소문만 무성했던 이들의 금융시장 교란행위는 결국 검찰의 첩보망에 걸려들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2010년 12월 27일 CTC사 횡령 등에 관련한 혐의자 15명을 특가법 위반 혐의로 적발했다고 밝혔다. 12월 29일 기자와 만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담당검사에 따르면 검찰은 2010년 7월부터 사건을 인지하고 내사를 벌였다. 수사 결과 1대 사주 김 씨와 김제읍내파 이 씨 등 2명은 구속됐고, 2대 사주 노 씨 등 8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콜박스파 조직원 장 씨 등 5명은 현재 지명수배 중이다. 조사 결과 이들은 횡령금 중 상당액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검사는 “이번 사건은 현재 코스닥의 위험한 상황을 반영한다. 최근 사채시장이 내외부 감사 시스템이 허술한 코스닥 상장사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기업사냥꾼 3명 역시 강남 사채시장에서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여기에 최근 3년 전부터 조폭들이 코스닥에 손을 대면서 상황은 더 위험해지고 있다. 이들 대부분 등기이사를 차명으로 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어도 책임을 물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12월 29일 기자와 만난 한 주식투자자 역시 “코스닥 상장사 대부분은 코스피 상장사와 비교하면 구멍가게에 불과하다. 기업사냥꾼과 조폭들이 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번 CTC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금융당국의 추가적인 투자보호책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유흥업→부동산→코스닥’ 무대 이동
이번에 적발된 CTC 사건은 조폭들의 활동범위가 금융권까지 뻗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맡은 담당검사에 따르면 조폭들의 진화는 3세대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70~80년대 1세대 조폭들의 경우 유흥업소 갈취와 주류도매상 운영 등으로 활동을 펼쳤다. 90년대 들어서는 2세대 조폭들이 등장한다. 당시 부동산 붐이 일면서 조폭들은 부동산 시행사 운영, 상가 분양시장 진출 등 부동산 영역으로 손을 뻗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조폭들이 최근 또 한 차례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일명 3세대 조폭이라 불리는 이들은 금융시장에 진출하기에 이른다. 3세대들은 2007년을 전후로 코스닥에 진출해 무자본 M&A, 횡령, 주가조작 등 교란행위를 일삼기 시작했다.
담당검사는 “조폭들은 결국 돈의 흐름을 좇아 변화한다. 최근 이들이 기업사냥꾼들과 손잡고 금융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잘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