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결과 해당 공무원은 주민들에게 자신과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보험설계사가 판매하는 보험을 강매하고 자신의 내연녀가 받은 고액의 보험수당으로 짭짤한 잇속을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친분이 있는 보험설계사의 보험을 농민들에게 강매한 혐의(제3자 뇌물수수)로 김천시 공무원 A 씨를 구속했다.
지역 주민들을 허탈하게 만든 지방 공무원의 황당 행각을 들여다봤다.
사건은 몇 달 전 대구지검에 한 통의 진정서가 접수되면서 시작된다. 진정서는 김천시청 소속 공무원 A 씨의 부당행위를 고발하는 것이었는데, 수많은 지역 주민이 피해를 입고도 끙끙 앓고만 있다는 내용이었다. 진정서 내용은 실로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A 씨가 평소 가깝게 알고 지내던 보험설계사 B 씨가 판매하는 보험상품을 다수의 지역 농민들에게 강매했다는 것이었다.
‘공무원이 보험 강매라니?’
진정서를 접수한 검찰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즉시 수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포착되기에 이른다.
가장 이상한 점은 A 씨가 근무하는 관할지역 농민들 중 특정인이 판매하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특정 직업군에 종사하는 이들이 특정인이 판매하는 보험상품에 공통적으로 가입되어 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조사결과 M 사에 근무하는 보험설계사 B 씨가 판매하는 보험에 가입한 지역 주민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자의가 아니라 반 강제적으로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관내에서 생업활동을 하는 농민들이었다.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파악한 피해자만 무려 30여 명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보험에 가입하게 된 과정에 공무원인 A 씨가 개입했다는 사실이었다. A 씨가 직접 보험설계사 B 씨를 소개하고 보험가입을 권유했다는 것은 공무원의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분명 석연치 않은 일이었다. 피해자들은 A 씨의 요구에 의해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보험에 가입했으며 매달 납부해야 하는 보험금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떠한 조치를 취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상당한 기간 동안 속앓이를 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조사결과 이처럼 이상한 일은 2007년 12월경부터 최근까지 이어져 왔는데 검찰이 A 씨의 강요나 강압에 의해 보험에 가입했다고 판단한 사람은 모두 23명에 달했다. 이들은 관내에서 가축을 키우는 축산업자들로 소득이나 사업 규모로 보건대 영세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확인결과 이들은 B 씨가 판매하는 화재보험과 비슷한 보장내역의 다른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어 굳이 B 씨의 상품에 가입할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가입한 상품이 여타 상품들과 비교해볼 때 상당히 고가라는 사실이었다. 고가의 상품에 가입할수록 보험설계사가 높은 수당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이 B 씨의 추천을 받아 가입한 상품은 제각기 달랐는데 이들 중 9명은 보험납입액만 무려 월 100만 원에 상당하는 고액보험에 가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세업자인 이들이 매달 거액의 보험료를 납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매달 빠져나가는 거액의 보험료로 인해 큰 부담을 안고 있었으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보험설계사 B 씨의 상황은 달랐다. 고액 상품에 가입한 이들로 인해 B 씨는 그간 수령한 보험수당만도 4700만 원이 넘는 등 눈에 띄는 영업실적을 달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려 20명이 넘는 축산업자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B 씨의 보험에 가입해야 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검찰 조사결과 풀렸다. 사건의 핵심에는 지역 공무원인 A 씨가 있었다. 환경○○과 소속 공무원인 A 씨는 가축을 키우는 과정에서 오·폐수 등을 배출할 수밖에 없는 축산업자들과 업무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관내 업자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A 씨는 축산업자들에게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오물과 폐수처리 등 환경과 밀접한 직종의 특성 때문에 축산업자로서는 벌금이나 징계를 받지 않도록 항시 조심해야 했고, 담당 공무원에게 괜한 꼬투리를 잡히거나 눈밖에 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심적 부담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수십 명의 농민들이 A 씨가 요구하는대로 B 씨가 판매하는 보험에 가입해야 했던 이유였다. 일부는 보험 가입을 거절해서 받게 될 불이익도 불이익이지만 추후 문제가 생겼을 경우 수월한 해결을 위해 ‘보험용’으로 가입한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A 씨가 노골적으로 보험가입을 권유했거나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서는 안되게끔 하는 무언의 압력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A 씨가 농민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A 씨가 농민들에게 굳이 B 씨의 보험을 강매한 이유가 석연치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적으로는 공무원인 A 씨가 B 씨를 소개하거나 보험에 들도록 요구한다 해도 실제로 얻게 되는 이득은 없었다. 하지만 A 씨와 B 씨의 관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의문은 풀렸다. 바로 지역 공무원인 A 씨가 B 씨와 단순한 친분을 넘어서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연관계였던 두 사람은 보험강매로 B 씨가 받은 수당금 일부를 나눠 가지는가 하면 유흥비와 숙박비 등으로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조사에서 A 씨는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긴 했지만 보험에 가입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거나 강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보험설계사를 돕기 위해 단순히 소개만 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A 씨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보험 강매를 했던 것으로 판단,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A 씨를 구속했다. 피해 농민들이 A 씨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었다.
결국 가뜩이나 어려운 수많은 영세 농민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이 사건은 실세나 다름없는 공무원 눈치보기로 인해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할 공무원이 되레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주민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A 씨와 B 씨가 내연관계인 것으로 드러나 피해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A 씨와 B 씨의 관계에 대한 것은 사생활이기에 자세히 밝히기 곤란하다”면서도 B 씨가 받은 수당을 A 씨가 일정부분 공유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