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밝은 2011년, 새해의 새로운 다짐을 위해 해오름 명소를 찾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첫 주. 대부분 동해 바다로 달려가겠지만, 이곳 어떨까. 나지막한 산 위에 올라 물안개 자욱이 핀 호수 위로 뜨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북 임실 옥정호. 특별한 해오름이라 분명 그 기억도 오래 갈 터. 그렇다면 새해의 다짐 또한 작심삼일로 끝나진 않지 않을까.
오늘만은 청명하리란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가지 않길 빌며, 새벽이 찾아오기 전에 일찌감치 옥정호를 찾아간다. 다행히도 옥정호 가는 길의 하늘은 완전히 열려 있다. 유리 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별들이 금세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다. 크고 선명한 해오름을 감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옥정호에 점점 가까워지자 여태껏 그리 좋았던 하늘이 갑자기 닫히기 시작한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것이 물안개 때문인 줄 모르고,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가려버렸다는 오해로 인해 잉태된 불안감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이름을 올린 옥정호 순환도로는 살얼음으로 무척 미끄럽다. 호수가 피워 올리는 수증기들이 얼어서 도로 위에 사르르 내려앉은 탓이다. 마치 제설작업을 하지 않은 도로가 결빙된 것 같다. 가속페달보다는 브레이크에 자꾸만 발이 간다. 긴장감과 불안감에, 먼 길을 달려오고도 그냥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뒤엉킨 마음이 참 무겁다.
어슴푸레 사위가 밝아오기 시작하면서야 안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마음이 여유를 되찾는다. 차고 끈적끈적한 안개는 사위를 완전히 지우고 옥정호만의 해오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호숫가에서 해를 맞을 수는 없다. 안개가 더 이상 점령하지 못 하는 높은 곳으로 걸음을 옮겨야 한다.
▲ 옥정호 한가운데 ‘사는’ 붕어. 수몰되면서 붕어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
옥정호 순환도로를 타고 입석리 방향으로 향한다. 이곳에 옥정호를 내려다보는 국사봉이 있다. 해발 475m의 야트막한 산이다. 국사봉에서 옥정호를 조망하는 포인트는 두 곳이다. 하나는 붕어섬을 보는 전망대, 또 하나는 정상 바로 못 미쳐 해오름을 보는 전망대.
등산은 힘들지 않고 또한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붕어섬전망대까지는 약 10분, 해오름전망대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단,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겨울철 등산의 특성상, 아무리 낮은 산이라고 해도 반드시 안전장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용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쌓인 눈이 언 구간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만약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좋다.
붕어섬전망대를 지나쳐 곧장 해오름전망대로 간다. 해오름전망대는 붕어섬전망대처럼 따로 나무데크를 설치해놓지는 않았다. 안개 위에 올라서자 시야가 뚫려 시원하다.
단, 해오름전망대에서는 옥정호 붕어섬이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는 해오름전망대를 지나 국사봉 정상과 오봉산으로 이어진다. 국사봉 정상에 서면 붕어섬이 보이긴 하지만 섬의 일부분이 살짝 가린다.
해오름전망대에서는 동쪽으로 너울 치는 수많은 능선들이 장관이다. 그 능선과 능선 사이에는 하얀 솜이 박혀 있다. 물안개가 구름을 이룬 것이다. 잘 벼린 칼날처럼 퍼런 하늘과 관측 가능한 마지막 능선 사이에 낀 붉은 띠가 더욱 커지고 점점 짙어진다. 해가 곧 떠오른다고 예고를 하는 것이다. 해오름전망대에 선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집중한다. 이윽고 멀리 능선 위로 크고 선명한 태양이 올라오자, ‘와’ 하는 탄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가 동시에 터진다. 해가 하늘로 더 오르기 전에, 그래서 붉은 빛이 퍼져서 옅어지기 전에 그 멋진 풍경을 마음과 카메라에 담느라 사람들은 바쁘다.
해오름의 감동을 뒤로하고 다시 붕어섬전망대로 내려간다. 왜 이름이 붕어섬전망대인가 하면 이곳에서 붕어와 꼭 닮은 옥정호의 섬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정호는 섬진강다목적댐이 1965년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호수다. 본래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에 동진농지개량조합에 의해 건설된 저수지가 그 효시다.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와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에 댐을 막아 물을 가두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 호수는 섬진강의 홍수조절뿐만 아니라 김제와 호남평야 등까지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대는 등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붕어섬은 댐 건설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탄생한 섬이다. 그 모양이 붕어를 닮았다고 해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었다. 본 이름은 ‘외앗날’(또는 외얏날)이다. 수몰로 다 떠났지만, 지금도 농사를 지으며 사는 팔순의 노인이 있다. 외앗날로 들어가려면 용운리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한다. 입석리에는 요산공원이 있는데, 이곳에 망향탑 하나가 서 있다. 이 탑은 수몰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2년 전 세워졌다.
붕어섬은 강수량에 따라 살이 찌거나 수척해진다. 비가 부족했던 2년 전에는 호수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면서 붕어의 형체를 찾아보지 못 할 정도였다. 올해는 적당히 비가 와서 그 모양이 아주 또렷하다.
물안개 속에 잠긴 붕어섬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애간장을 꽤나 태운다. 이곳 전망대에서 담길 원하는 장면은 주변에 안개가 낀 가운데, ‘붕어’가 노니는 곳만 환히 걷히는 드라마틱한 순간이다. “차라리 그림을 그리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학수고대하며 기다린 보람일까. 실제로 옥정호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호남고속국도 익산JC →익산포항간고속국도 완주IC→17번 국도→상관교차로→21번 국도→27번 국도→옥정호(좌회전)→749번 지방도→국사봉 ▲먹거리: 임실은 알다시피 치즈가 유명한 곳이다. 치즈마을 내에 산들미향(063-644-2811)이라는 집이 있다. 치즈를 이용한 비빔밥과 흑돈삼겹살이 별미인 곳이다. 치즈를 넣은 된장찌개도 있다. 한 곳 더 추천하자면 임실장터에 삼미식당(063-643-1413)이 있다. 평일 점심장사만 하는 곳이다. 백반이 끝내준다. 가마솥에 지은 밥과 묵은지로 맛을 낸 뼈다귀탕, 얼큰한 갈치조림 등이 나온다. ▲잠자리: 옥정호 근처에 하얀집모텔(063-221-2590)과 운암호수팬션(063-643-7656) 등이 있다. ▲문의: 임실군청 문화관광과 063-640-2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