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에게 가장 낯익은 PD는 단연 KBS <해피선데이> ‘1박2일’의 나영석 PD다. 강호동 등 출연진들과 복불복 내기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역할로 자주 화면에 얼굴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젠 ‘1박2일’의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캐릭터가 됐다. 방송에서 나 PD가 시크한 표정과 말투로 외치는 “안됩니다!” “땡!” 등의 말은 이제 하나의 유행어로 거듭났고 ‘1박2일’ 멤버인 이승기가 방송에서 성대모사까지 했을 정도다. 연예인들을 쥐락펴락하는 그의 모습 탓일까? 상당수 시청자들은 그를 타고난 끼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정작 그의 대답은 다르다.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상당히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입사 초기만 해도 연예인들과 눈도 잘 못 마주쳤다고 한다.
이랬던 그가 예능감에 물이 올랐다는 소리를 들으며 출연 연예인 못지 않은 확고한 캐릭터의 주인공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모든 공(?)을 출연진 중 수장 강호동에게 돌렸다. 그는 “애초에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콘셉트 상 (자신의) 출연 부분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는데 그게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해졌을 뿐”이라며 “다만 멤버의 부재가 있는 요즘 상황에서 강호동이 (나를) 많이 써먹는 것 같다”며 최근 들어 자신의 출연 분량이 늘어난 이유를 분석했다.
그는 자신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나 PD는 “일주일에 이틀 촬영, 삼일 편집, 이틀 회의의 살인적인 일정으로 지내다 보면 유명세를 느낄 시간조차 없다”면서 “방송국 근처 식당에 가면 직장인들이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정도”라고 달라진 상황을 설명했다.
‘1박2일’의 경우 나 PD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제작 스태프가 종종 방송 화면에 등장한다. 제작 스태프가 각종 게임에 동참하기도 하고 함께 고생하며 동고동락하는 모습이 자주 방송에 노출되는 것. 그러다 보니 ‘1박2일’의 높은 인기가 제작 스태프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신입 PD 몰래카메라 편’의 주인공이었던 유호진 PD는 방송 출연 이후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말한다. 자신을 감쪽같이 속였던 강호동과 친해졌음은 물론이고 어디를 가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로 인해 약국 식당 택시 등에서 적절한 유명세를 즐기게 되었다는 것. 카메라 울렁증에 시달릴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에겐 상당한 변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방송 이후 지하철 안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점을 가장 불편한 점으로 꼽았다. 하루는 출근길에 지하철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초등학생 무리들이 자신을 폰카로 찍고 있더라는 것. 그일 이후론 무슨 일이 있어도 지하철에선 졸지 않으려 노력한다며 어느 정도 연예인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예능 PD의 방송 출연에 대해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OK”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실제로 그는 ‘1박2일’을 떠나 새로 배정된 <승승장구>에서도 개편 첫 방송 때 직접 출연해 출연진들과 질문 숫자를 두고 능숙하게 협상을 벌이는 등 ‘1박2일’에서 갈고 닦은 버라이어티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프로그램을 위해서라면 출연은 물론이요, 막춤도 마다하지 않는 열혈 PD들도 있다. 얼마 전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서 정체 모를 골반막춤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폭소케 했던 박상현 PD 역시 방송가의 소문난 열혈 PD다. 그가 체면불구하고 골반막춤을 선보인 이유는 다름 아닌 게스트의 춤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춤을 춰달라는 MC 강호동의 요구에 탤런트 윤유선이 “데뷔 후 37년 동안 단 한 번도 방송에서 춤을 춘 적이 없다”며 “담당 PD가 직접 춤을 추면 나도 추겠다”고 완곡히 거절을 했던 것. 하지만 윤유선의 노림수는 빗나갔다. 박상현 PD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무대에 올라 원초적 댄스 실력을 선보였다. 결국 이로 인해 윤유선은 결국 춤을 춰야만 했다. 윤유선은 물론 시청자들도 깜짝 놀랄 만한 상황. 이 부분은 편집 없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고 네티즌들은 “나영석 PD의 라이벌이 등장했다” “PD가 진짜 강심장”이라며 박수 갈채를 보냈다.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한 그의 열정은 이미 연예계에선 유명하다. <강심장>의 게스트 섭외를 수차례 거절했던 윤종신에게 콘서트마다 화환을 보내 결국 출연 승낙을 얻어낸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한편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비추는 요즘의 예능PD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직접 캐릭터를 설정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했던 PD도 있었다. <세바퀴> <명랑히어로> 등을 연출한 MBC 예능국의 김유곤 PD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03년부터 방송된 <코미디하우스>의 인기코너 ‘노브레인서바이벌’에 정준하 문천식 등과 함께 ‘김 PD’라는 캐릭터로 수개월 동안 고정 출연했다. 당시 <코미디하우스> 조연출이었던 그는 예능국 송년회 자리에서 문천식의 바보 가발을 쓰고 개그맨 못지않은 끼를 선보였는데 이를 눈여겨본 선배 PD에 의해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 ‘10분토론’ 코너에 가제트 분장을 하고 출연하는 등 한동안 PD와 개그맨을 겸업하기도 했을 정도. 당시 시청자들은 토익 940점대의 명문대 출신 PD의 바보 연기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의 방송 데뷔작은 따로 있었다. 그가 2000년 MBC에 입사한 뒤 FD로 배정받은 첫 프로그램은 <생방송 음악캠프>(현재 <쇼! 음악중심>)였다. 당시 그는 TV로만 보던 가수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그만 넋이 나가 생방송임을 잊고 헤드셋을 낀 채 신나게 가수의 춤을 따라 춘 것. 그런데 그가 서 있던 곳은 무대 뒤가 아닌 무대 위, 다시 말해 자신도 모르게 무대에 난입했던 것이었다. 이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은 많지 않지만 MBC 예능국에선 김 PD의 무대 난입을 카우치의 알몸소동과 함께 <생방송 음악캠프>를 대표하는 방송 사고로 손꼽고 있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