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자전>의 조여정 |
지난해 9월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배우 배두나는 영화 <청춘>에 출연하며 노출 장면에서 대역 배우를 쓴 것에 대해 “창피한 과거다. 내가 생각해도 프로답지 못했다. 여배우가 일단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면 뭘 시키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이후 <복수는 나의 것> <공기인형> 등의 영화에서 대역 없이 노출 연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모든 여배우가 배두나 같지는 않다. 여배우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노출은 두렵다. 때문에 캐스팅부터 난항을 겪곤 한다. 지난해 개봉됐던 <방자전>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시나리오가 좋다’고 소문이 났지만 여배우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연출을 맡은 김대우 감독이 ‘노출 불사’ 입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자전> 제작사 관계자는 “전작 <음란서생>이 ‘19금’ 판정을 받았지만 ‘기대보다 야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런 아쉬움 때문에 김대우 감독이 <방자전>에선 확실한 노출을 원했다”고 귀띔했다. 이로 인해 여러 여배우와 출연 여부를 타진하가 결국 조여정이 ‘춘향’으로 캐스팅됐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김대우 감독의 계산은 정확했다. <방자전>은 3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조여정은 배우로서 재평가받았다.
2008년 개봉된 <박쥐>도 마찬가지였다. 거장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지만 선뜻 나서는 여배우가 없었다. 시나리오 속 노출 수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 결국 <박쥐>를 선택한 김옥빈은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까지 밟으며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역시 수위 높은 노출 때문에 수많은 여배우들이 고사했다. 결국 가수 출신인 엄정화가 주연배우로 파격 캐스팅됐다. 이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엄정화는 현재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성장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계에 ‘배우는 벗고 스타는 벗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연기보다 이미지로 평가받는 여배우들은 노출에 상당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반면 배우로 재평가받고 변신의 기회로 삼으려는 여배우들은 노출 연기에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충무로가 체계화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노출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철저한 계산에 의해 노출 수위가 결정되고 이는 계약서를 통해 문서화된다. 다만 ‘얼마나 구체적인가’에선 차이가 있다. ‘감독과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가 합의하는 선에서 이뤄진다’는 열린 합의가 있는 반면, 특정 신체 부위의 노출 정도를 세세하게 명시하는 경우도 있다.
<색즉시공> 시리즈는 노출 계약서의 시초로 손꼽힌다. <색즉시공>에서 과감한 노출을 선보인 진재영은 ‘상반신 노출’ ‘뒷모습 전라 노출’ 등을 구체적으로 계약서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색즉시공2>에 출연한 이화선 역시 노출 계약서를 쓰고 영화 촬영에 임했다. 당시 시사회가 끝난 후 이화선은 “가슴노출 계약서가 있었지만 강제로 노출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영화를 위해 연기했다”고 밝혔다.
할리우드의 노출 계약서는 보다 구체적이다. 할리 베리는 영화 <스워드 피쉬>를 촬영하며 가슴 노출 수당을 따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시카 비엘은 영화 <파우더 블루>에서 스트리퍼로 출연하며 특정 부위를 노출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당시 미국잡지 <US위클리>는 “제시카가 가슴과 엉덩이를 포함해 일정 부위의 노출을 해야 한다는 세부내용이 명시된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보도했다. 한 외화수입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보다 몸값이 월등히 비싼 할리우드 배우는 몸짓 하나하나가 돈과 연관된다. 때문에 일단 계약이 성사되면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계약 조건 외에 임의로 노출을 요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노출 수위를 높이려는 감독과 노출을 최대한 줄이려는 여배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강압으로 노출이 이뤄진다는 풍문은 옛말이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과거에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강압적으로 노출을 요구해 여배우가 촬영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매니지먼트 산업이 체계화되면서 모든 노출은 철저히 상업적 논리와 계산에 의해 이뤄진다. 이유 없는 노출은 없는 셈”이라 말했다.
반면 여배우가 스스로 벗는 경우가 있다. 지난 2006년 할리우드 톱스타 샤론 스톤이 <원초적 본능2>를 촬영하며 작성한 계약서가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당시 계약서에는 ‘노출 없음(no nudity)’이라 분명히 명기돼 있었다. 계약서에는 대역이 샤론 스톤의 노출 연기를 대신하기로 했지만 촬영 당일 샤론 스톤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샤론 스톤은 “처음에는 마흔 넘은 알몸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서 노출불가를 선언했다. 하지만 촬영 중 스스로 영화에 빠져 직접 노출 연기를 펼쳤다”고 밝혔다.
충무로에서는 김혜수가 비슷한 사례를 보여줬다. 그는 2007년 영화 <타짜>에 출연하며 상반신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당초 시나리오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촬영하던 김혜수는 노출의 필요성을 느끼고 최동훈 감독과 상의 후에 그 자리에서 옷을 벗었다. 이런 김혜수의 프로 정신 덕분인지 해당 장면은 <타짜>의 최고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힌다.
시대가 변하며 노출에 대한 의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편견은 ‘돈이 필요해 노출한다’이다. 김민선(개명 후 김규리)과 송지효는 각각 영화 <미인도>와 <쌍화점>에서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하녀>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배우 전도연은 ‘칸의 여왕’으로 불린다. 개연성이 있다면 노출은 작품 전체를 위한 일부일 뿐 흥행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영화 제작사 PD는 “영화가 끝났을 때 노출 장면만 떠오른다면 실패다. 작품 전체를 위한 노출이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작품도 살고, 여배우도 빛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