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만 소도시 커피전문점만 150개
▲ 정동진 앞바다에 썬크루즈 외에 새로 배 한 척이 생겼다. 럭셔리 요트 모양이다. 이곳 2층에도 커피전문점이 있다. |
그런데 강릉은 정말 커피 마시러 갈 만하다. 어쩌면 정확히 내 기호에 맞는 커피를 뽑아내고,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한 커피전문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궁금하거든 강릉으로 가보라.
단지 ‘바다의 도시’였던 강릉은 이제 ‘커피의 도시’가 되었다. 강릉에는 커피전문점이 무려 150개가량 있다. 인구 21만의 도시에 그처럼 많은 커피전문점이라니. 놀라긴 아직 이르다. 하나 더 보태자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매한가지 커피 맛을 내는 곳들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풍미로 유혹하는 곳들이란 것이다.
전체 커피전문점들 중에서 직접 커피콩을 볶고, 갈아서, 내리는 곳은 30개쯤 된다. 그들에게 커피는 자존심이다. 남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 표현 수단이다. 똑같은 매뉴얼대로 커피콩을 볶지 않고, 부수는 과립의 입자 크기와 커피를 내릴 때의 온도도 경험으로 찾은 ‘정답’만을 고집한다.
안목 해변 추억의 자판기
고상한 전문점의 향기로운 커피와 전국 어디서나 맛이 똑같은 자판기의 커피는 매치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싸구려라고 자판기 커피를 괄시하지는 말자. 적어도 강릉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강릉의 커피 역사는 그 싸구려 자판기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강릉에 커피전문점이 처음으로 생긴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경포호 주변에 몇 집이 들어섰지만 그것은 별 특색이 없는 그저 그런 커피숍에 지나지 않았다.
다방의 조금 세련된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들 커피전문점보다 사람들은 강릉항이 있는 안목해변의 자판기 커피를 더 선호했다. 그 해변에서는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들고 방파제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모래사장을 거니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안목해변에는 한창 때, 80개가 넘는 커피자판기가 즐비하게 늘어섰더랬다. 그 유행의 종말이 온 지금까지도 그곳에는 약 30개의 자판기가 남아 있다.
이 자판기 커피의 해변이 전문 고급 커피의 메카로 자리바꿈을 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테라로사와 보헤미안 등의 커피전문점이 강릉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와인과 함께 커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시기다.
‘전설’의 커피 내리는 ‘보헤미안’
▲ 개성이 강한 해변의 커피숍 |
그중 몇을 소개한다면 주문진권의 ‘보헤미안’은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우리나라 커피의 전설 중 하나인 박이추 씨(61)가 운영하는 곳이 바로 보헤미안이다. ‘1서 3박’을 빼고는 우리나라 커피를 논할 수 없다. 커피 1세대로서 1서는 서정달, 3박은 일본에서 유학한 박상홍·박원준·박이추를 말한다. 그 4명 중 현재도 커피를 만들어내는 이는 박이추 씨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세상을 뜨거나 이민을 갔다.
보헤미안은 연곡해변에서 7번 국도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에 있다. 해변에 있는 다른 커피숍들에 비해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 초행이라면 찾기도 힘들다. 글로는 자세한 설명조차 어렵다. 내비게이션에는 등록이 되어 있다. 반드시 지참할 것을 권한다.
바리스타 박이추는 커피 만드는 모든 과정을 혼자 다 한다. 남에게 맡기는 법이 없다. 어렵게 보헤미안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커피를 건네주기 위해서다. 그는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도는 그 순간을 사랑하고 즐기며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다.
보헤미안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쉰다. 모르고 찾아온 이들을 위해 박이추는 대신 자신이 꼽은 근처의 괜찮은 커피전문점 리스트를 문 앞에 내걸어 그곳으로 가도록 유도한다. 그가 추천하는 곳이 연곡해변에도 한 곳 있다. ‘커피브라질’이다. 보사노바 음악이 감미로운 곳이다.
국제적 감별사 보유한 ‘테라로사’
▲ 위 사진 왼쪽부터 구정면 어단리의 ‘테라로사커피공장’. 건물 1~3층 모두가 커피숍인 안목해변의 ‘더굳커피’. 지중해 산토리니섬의 어느 건물을 옮겨다놓은 듯한 커피숍 ‘산토리니’. 그리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커피향을 즐길 수 있는 커피숍. |
분위기와 전망이라면 정동진의 썬크루즈와 델라루즈도 훌륭하다. 정동진에 가면 절벽 위에 배 한 척이 놓여 있는데, 그것이 바로 썬크루즈호텔이다. 이제는 정동진의 상징이 된 호텔로 이곳 10층에 커피전문점이 있다. 이곳은 서울타워처럼 천천히 자전한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창밖의 풍경이 달라져 있다. 델라루즈는 정동진 바다에 새로 생긴 요트다. 파도가 달려드는 바다 한가운데 요트가 있다. 2층에 커피전문점이 있다.
비록 해안에 자리하진 않았지만 테라로사를 뺄 순 없다. 남강릉IC로 진출하면 곧 구정면 어단리가 나오는데, 이곳에 테라로사가 있다. 커피에 미쳐 전 세계 커피여행에 나섰던 김용덕 씨(53)가 주인이다. ‘테라로사’는 지중해 지방의 붉은 흙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한국인 최초로 ‘컵오브엑설런스 국제심판관’(각국 농장에서 출품한 커피의 품질을 매기는 전문가)에 초청된 이윤선 씨가 커피감별사로 있는 곳이다. 그런 만큼 커피콩이 질적으로 아주 훌륭하다. 테라로사에서는 테이스팅커피를 주문하면 원산지가 다른 세 종류의 커피를 마셔볼 수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your@ilyo.co.kr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강릉분기점→강릉IC→35번국도→강릉항(안목) ▲먹거리: 강릉 하면 역시 순두부다. ‘초당할머니순두부’(033-652-2058) 등 순두부 전문 음식점이 마을에 즐비하다. ▲잠자리: 정동진의 상징물 중 하나인 ‘썬크루즈호텔’(033-610-7000)을 추천한다. 주중(일~목요일)에는 주말요금의 60% 수준인 7만~9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 인근의 모텔보다는 비싸지만,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그 값을 한다. ▲문의: 강릉시청 관광과 033-640-5125, 관광안내소 033-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