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과 흙과 돌을 적절히 섞어 쌓은 담장이 매력적인 개평마을. |
일찍부터 함양은 선비의 고장이었다.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면 따로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정신문화의 수도’로 불리는 안동에 견줄 만큼 함양에는 유서 깊은 향교와 정자, 누각 등이 곳곳에 널려 있다. 이런 함양에는 안동의 하회마을과 종종 비교되는 전통마을이 한 곳 있다. 바로 지곡면 도숭산 자락에 자리한 개평마을이다.
105가구 194명이 어울려 사는 개평마을은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탄생지로 유명한 곳이다. 가옥의 대부분이 한옥인 이 마을은 시간의 흐름에서 비껴선 것처럼 보인다.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60여 채의 기와집들과 마을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토석혼축담의 골목길이 마치 민속촌에라도 찾아간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개평마을은 14세기에 하동정씨와 경주김씨가 들어와 살다가 15세기에 풍천노씨가 합류해 마을을 이뤘다. 현재는 김씨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정씨와 노씨 일색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몇 집들이 있는데 짧게는 100여 년 전, 길게는 400년 쯤 전에 지어진 것들이다. 그중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집은 누가 뭐래도 정여창고택이다.
정여창(1450~1504)은 조선조를 대표하는 성리학의 거물이다. 전국 234개 향교와 9개 서원에서 받들어 모실 정도로 그는 조선 성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여창고택은 국가지정민속자료 제186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대하드라마 <토지>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이 집은 정여창 선생 타계 1세기 후, 생가 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우람한 솟을대문이 집의 크기를 말해준다. 안채,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된 이 집은 곡간만도 10칸이나 된다.
정여창 선생의 후손들은 대대로 과객의 접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흥선대원군과 추사 김정희도 한동안 머물렀다고 전한다. 여러 개의 중문을 두었는데, 집 오른편에 자리한 일두홍보관으로 드나드는 곳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라서 눈에 띈다. 정여창 선생의 기를 받아서일까. 개평마을은 예부터 학자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겨우 100가구 남짓한 이 마을에서 대학교수만 150명이 배출됐다고 하면 믿을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대문
▲ 정여창고택 곡간 뒤편으로 일두홍보관과 통하는 홍예문이 있다. |
정여창 선생의 일가로 눈을 돌리면 1830년대 지어진 하동정씨 고가와 오담고택이 있다. 하동정씨 고가는 1880년에 지어진 것으로 경남문화재자료 제361호에 이름을 올렸다. 건립 당시에는 사대부가답게 사랑채를 비롯해 그 규모가 컸으나 현재는 작은 사랑채와 안채, 대문간채만 남아 있다. 오담고택은 조선 말엽 문장가였던 오담 정환필 선생의 집이다. 시도유형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랑채는 1838년, 안채는 1840년에 지어졌다. 조선 후기 양반가의 건축양식과 가구기법을 연구하기 좋은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평마을이 여느 옛 마을과 다른 점은 이들 고택들을 둘러보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은 대문을 걸어놓게 마련인데, 개평마을에서는 그런 곳이 많지 않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문을 활짝 열어둔다. 누구라도 와서 구경하고 가라는 배려다. 마당 한편을 서성이고 있으면 “누구신데 그러느냐?”고 한소리 할 법도 하건만, 으레 구경 온 사람이거니 하며 주인행세를 하지 않는다. 외려 “마음껏 둘러보다 가시라”며 한쪽으로 피해주는가 하면,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며 권하는 개평마을 사람들이다.
언덕서 내려다보는 조망 일품
돌담길을 따라 고택을 둘러보다보면 일두 선생 산책로를 만나게 된다. 평소 정여창 선생이 산책을 즐기던 코스를 재현한 것이다. 이 산책로는 참 운치가 넘치는 길이다. 언덕바지의 소나무군락을 지나 대숲을 스치고, 논두렁도 걷는다. 소나무군락은 풍수지리사상에 의거해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심은 것이다. 수령 300~400년생으로 10~15m 높이의 적송들이다. 현재 개평리에는 이러한 소나무들이 100주 정도 남아 있다. 소나무 중에는 특별한 것들도 있다. 시도기념물 제211호로 지정된 소나무다. 약 500년 수령의 성황나무 역할을 하는 당송이다. 광복 이후까지도 주민들이 이 나무에서 당제를 지내며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한편, 소나무군락지가 자리한 언덕에는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선 개평마을이 한눈에 다 보인다.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연통에서 피어오르고,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돌아온 주인을 맞는 백구가 연신 꼬리를 흔든다.
▲ 풍천노씨 대종가. |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지곡IC→24번 국도→지곡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지곡보건소 지나 개평교 건너면 개평마을
▲먹거리·잠자리: 개평마을에 함양정일품농원(http://www.jung1poom.kr, 1577-8958)이 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의 16대 손이 운영하는 곳으로 한옥에서 숙박을 하며 식사도 해결 할 수 있다. 숙박은 2인실 기준 5만 원이다. 이 농원은 전통식품연구소도 운영하는데, 그 덕분인지 식사 때 나오는 장아찌와 된장박이매실, 죽순된장죽 등이 아주 일품이다.
▲문의: 개평마을이장(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추진위원장) 055-962-7200
설맞이 제대로 해보자!
이번 설에는 다양한 문화행사와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한 전통마을들이 몇 군데 있다. 집에서 멀지 않다면 체크해두었다가 가족과 함께 한번 찾아가보도록 하자.
◇남산골한옥마을
2011년 신묘년을 맞아 2월 2일~4일 ‘남산골 설날 한마당’을 개최한다. 차례상 전시, 토정비결보기, 가래떡 썰기 등 설 풍습과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각종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행사다. 남산골한옥마을을 찾는 김에 역사박물관으로도 걸음을 옮겨보자. 설날 오전 11시 30분~오후 5시 30분 ‘설맞이 전통문화행사’가 열린다.
◇한국민속촌
2월 2일~6일 한국민속촌에서는 ‘설맞이 민속 한마당’을 마련했다. 소원성취 12거리 큰굿과 큰북공연, 정초고사,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토정비결보기, 얼음썰매타기, 제기차기, 윷놀이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전주한옥마을
우석대학교가 운영하는 한옥마을 한방문화센터에서 2월 2일~6일 다양한 행사를 연다. 이곳에 가면 사상체질을 무료로 진단해 준다. 이외에 떡메치기, 윷놀이, 제기차기, 한방비누 만들기 체험 등을 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