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히트맨>의 한 장면. |
문제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흡연 장면이다. 배우들이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금연 의지가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최근에는 과학적으로 이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다트머스대학의 연구팀이 <신경과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TV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흡연 장면을 주기적으로 보면 실생활에서 담배를 끊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연구를 공동진행한 딜런 와그너 교수는 “금연을 계획한 사람들은 보통 주위로부터 다른 흡연자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피하라거나 혹은 주변에서 담배용품들을 모조리 없애라는 충고를 귀가 따갑게 듣는다. 하지만 이제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흡연 장면이 나오는 영화”라고 말했다.
17명의 흡연가들과 17명의 비흡연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실험에서는 피실험자들 모두에게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매치스틱 맨>을 30분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피실험자들의 뇌가 반응하는 모습을 MRI로 촬영했다.
연구진이 <매치스틱 맨>을 선택한 이유는 이 영화에 음주나 폭력, 섹스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 대신 흡연 장면이 유독 두드러지게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또한 피실험자들에게는 이 실험이 흡연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영화를 보는 내내 흡연가들의 뇌는 등장인물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담뱃불을 붙이는 손동작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그리고 왕성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이에 반해 비흡연가들의 뇌는 별다른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와그너 교수는 “이번 결과는 흡연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나타낸 과거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한다. 흡연 장면을 본 사람은 영화가 끝난 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열망이 강했던 반면, 흡연 장면이 나오지 않은 영화를 본 사람은 흡연 욕구가 상대적으로 덜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일반적으로 흡연가들의 경우에는 영화 속에서 성냥불을 켜는 손동작만 봐도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된다. 담배를 피울 때의 작은 손동작 하나하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강하게 박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소 자신이 하던 친숙한 동작을 인지한 뇌가 스스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행동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뇌의 반응은 비흡연자들에게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질병통제 및 예방센터’ 역시 “흡연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많이 본 청소년들일수록 장차 흡연을 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지적하면서 할리우드나 방송국이 흡연 장면 노출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금연 캠페인 덕분에 지난 10년 간 할리우드에서는 꾸준히 흡연 장면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도 흥행작의 절반가량에서는 흡연 장면이 나오고 있어 주의가 촉구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들은 니코틴이나 약물의 중독 증상은 담배나 약물 그 자체로만 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나 영상, 혹은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