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시라노연애조작단>처럼 실제 실제 연애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온라인상에 유행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속 장면들. |
온라인상에는 모두 5곳의 연애 매니지먼트 회사가 존재했다. 취재 과정에서 그 중 한 사이트에 옛 연인과의 관계 회복을 의뢰한 김 아무개 씨(29)와 1월 24일 연락이 닿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2년 전 사귀던 여자친구에게서 갑작스런 이별을 통보받은 김 씨. 다시 여자친구를 만날 순 없을까. 몇 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마음을 되돌릴 방법을 고민하던 순간 온라인에 올라온 몇 가지 사이트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심난한 마음에 포털사이트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잡는 법’이란 문장을 검색하자 재회 전문 사이트 5곳이 등장한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연인과의 관계회복에 성공한 사람들이 남긴 후기 수십 건이었다. 글에는 하나같이 연애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받은 후 맞춤형 감동 이벤트, 적당한 밀고 당기기 방법으로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었다는 성공담이 담겨 있었다. 마음이 동한 김 씨는 이용안내를 눌렀다. 안내서에는 상담비용인 15만 원을 우선 계좌이체를 통해 송금한 후 게시판에 헤어지게 된 경위 및 현재 심경, 연락처를 남기면 상담원으로부터 연락이 갈 것이라 공지돼 있었다. 김 씨는 ‘어떤 경우에도 환불 불가’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지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결국 상담비용을 결제했고, 하루가 지나자 한 여성 상담원이 김 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상담원은 ‘만약 얼마의 돈이 들까 계산할 정도의 미련이라면 전화 상담만 받는 것으로 그치고, 평생 후회할 바에야 한번은 해보는 데까지 노력해보자는 심정이라면 우리를 끝까지 믿어보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 씨가 망설이는 찰나 상담원은 헤어지게 된 경위를 봤을 때 충분히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지만 그동안 김 씨가 여자친구의 성향에 맞지 않는 노력들만 한 것이라며 각종 노하우와 성공에 이른 다른 의뢰인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결국 상담원의 화려한 입담에 15만 원의 지출로 시작했던 김 씨의 연애상담은 한 달 후 400만 원의 지출로 이어졌다. 김 씨는 “어떤 사람일지라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성을 잃게 될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김 씨에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상담원은 더 늦기 전에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릴 작은 이벤트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연인이었을 당시 찍었던 사진과 하고 싶은 말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후 CD로 제작해 여자친구에게 전해주는 이벤트였다. 만일 지금 바로 결제하면 반값으로 할인한 5만 원에 제작해 주겠다고 말했다. 솔깃한 김 씨가 지불의사를 밝히자 상담원은 자연스레 전달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CD 제작 후 직접 전달하기가 망설여진다면 기획팀에 의뢰해 대신 전달할 수도 있고, CD를 봤을 때 여자친구의 반응이 궁금하다면 몰래카메라로 촬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담원은 구체적인 내용은 기획팀을 직접 만나 자세한 내용을 듣고 계약하는 것이 낫다고 권유했다.
오프라인 만남 역시 선결제의 조건으로 이뤄졌다. 김 씨는 CD 제작비용을 결제한 후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을 만났다. 한 명은 정신과 상담사라 자신을 소개하고 한 명은 이벤트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한 후 본격적인 컨설팅에 들어갔다. 먼저 정신과 상담사인 여성이 전 여자친구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세세한 연애담과 상대방이 좋아했던 것, 싫어했던 행동들, 이전에 주고받은 메시지, 키와 몸무게, 가족관계, 지인, 혈액형을 확인한 후 성격 및 스타일, 주민등록번호나 주소를 질문하기도 했다. 이후 여성은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영상메시지 내용을 작성해주는 가하면, CD에 들어갈 사진 선택을 도왔다.
CD 제작에 모든 논의가 끝나자 남성이 전달 방식에 대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가격대별로 A, B, C 코스로 나눠져 있었다. 단순히 전달만 해주는 것은 택배비에 서비스 비용이 추가된 정도였고, 리무진을 빌려 내부를 풍선과 꽃으로 장식한 후 영상을 보여주거나 동물 탈을 쓰는 이벤트를 겸하면 50만 원, 만일 여성이 영상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여부를 촬영한다면 100만 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김 씨가 망설이자 기획팀 직원은 ‘그 정도까지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단순히 전달하는 정도로 계약하기를 권유했다.
김 씨는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본 서비스를 받는 데 만족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사인했고, 며칠 후 기획팀으로부터 CD가 전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상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답답해진 김 씨는 기획팀 직원이 보여줬던 비싼 코스의 서비스들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여성이 영상을 보고 어떤 표정변화를 보였는지, 그의 심리는 어떤 것인지 반응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김 씨는 다시 기획팀 직원에게 연락했다.
CD 전달 이후부터 더 본격적이고 세세한 서비스들이 가격대별로 마련돼 있었다. 사생활 침해를 우려할 법한 내용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김 씨의 경우 전 여자친구와 그가 동시에 친분이 있는 A 씨가 있었다. 기획팀 직원은 넌지시 A 씨에게 부탁해 옛 여자친구를 만난 후 김 씨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떤 표정변화를 보이는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하는 서비스를 제안했다. 이때 A 씨가 어떤 말을 할지도 사전에 김 씨와 계획한다는 조건이었다. 이 서비스는 별도로 100만 원을 더 내야 했다. 김 씨는 “얼마를 내든 상관없으니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달라”고 말했다. 결국 그렇게 한 번의 시도를 할수록 더 많은 돈이 들었고 한 달 만에 400만 원의 돈이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그러나 아직 상대여성과의 관계회복은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김 씨만은 아닌 듯 보였다. 그가 찾은 사이트에는 하루 평균 700~800명의 방문자가 오고 가고 있었고, 상담비 결제 후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사람도 하루 평균 10~15명은 돼 보였다. 다른 네 곳의 사이트도 방문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긴 마찬가지였다. 김 씨는 각자의 이별 상황과, 요구에 따라 다른 이성이 생겼는지까지 추적한 후 알려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평생 후회하며 살기보다 얼마간의 지출은 감수하겠다는 그들. 과연 이 사이트들은 그만큼 신뢰할 만한 곳일까. 취재결과 홈페이지에 업체 주소와 전화번호를 명확히 기재한 것은 다섯 업체 중 두 곳뿐이었다. 그중 강남구 소재 B 업체 대표이사는 1월 2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벤트 기획이나 특수앨범제작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라는 것은 그저 홍보 콘셉트 중 하나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강남구에 위치한 또 다른 C 업체는 “우선 15만 원을 결제해야만 상담이 가능하다”고 잘라 말한 후 ‘본사를 방문할 수 없느냐’고 질문하자 “직원들이 항시 외근 중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세 곳의 사이트는 회사 전화번호나 사업자 등록번호도 홈페이지 상에 게재돼 있지 않았다. 업체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문의전화가 폭주해 진짜 상담할 사람만 받기 위한 방편이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업체의 실체를 찾기 위해 홈페이지 상에 기록돼 있는 주소로 직접 찾아가 봤다. 그러나 아예 없는 주소이거나, 다른 업체가 해당 주소의 상가를 쓰고 있는 곳도 있었다. 서비스 도중 갑자기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이 두절된다 할지라도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뢰인이 요청한 이성에 대한 추적과 염탐 행위는 법적인 문제가 없을까. 인천남부경찰서 지능팀 박종배 형사는 “사업자등록이 된 합법적인 업체라 하더라도 몰래카메라, 도청장치, 개인신상제공은 모두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며 “만약 의뢰 도중 연락이 두절된다면 의뢰인은 업체를 사기 혐의로 고소할 수 있다”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의뢰인이 요청한 상대방 측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유로 업체와 의뢰인을 동시에 고소할 수 있으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법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태에도 정작 김 씨는 물론 후기 게시판에 올라있는 의뢰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김 씨는 “비록 400만 원의 지출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치유할 수 없었던 마음의 미련을 놓을 수 있었다”며 아깝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