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비밀상자가 엄마 무덤이었다
애절한 사랑 얘기가 아니다. 지난 1월 12일 서울시 용산구 한 다세대 주택에서 50대 여성의 사체가 발견됐다. 피의자는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아내를 죽인 후 사체를 박스에 담아 방 언저리에 12년간 보관해 온 남편은 “숨진 부인과 딸에게 미안해 시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때문에 딸은 8세 때부터 20세가 될 때까지 12년간 같은 공간에서 어머니의 사체와 기막힌 동거를 해야 했다.
한 가정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과 12년간 숨겨진 기막힌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지난 1월 12일 저녁 9시 46분께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한 다세대 주택. 지하 2~3평짜리 방에서 혼자 살던 이 아무개 씨(여·20)는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단촐한 자신의 짐에 비해 방 한 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m가량 크기의 종이 상자는 옮기기에 너무 무거웠다. 결국 내용물을 나눠담기 위해 종이 박스를 뜯었고, 겹겹이 쌓인 겉포장 비닐을 뜯자 이상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 아버지의 짐이 가득 들었을 것이라고만 여겼던 그 박스에 들어 있던 것은 놀랍게도 한 여성의 사체였다. 여러 겹의 비닐과 은박 종이로 단단히 밀봉됐기 때문인지 미라 형태로 보존된 사체는 거의 부패하지 않아 형체를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씨는 경찰에서 “이사하려고 남자친구와 함께 상자를 운반하는데 너무 무거워 열어보니 안에 사체가 있었다. 옛날부터 아버지 짐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시신이 있는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에 용산경찰서는 지문 감식을 통해 이 여성이 이 씨의 친어머니인 윤 아무개 씨(50·사건 당시 39세)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살해된 지 12년 가까이 경과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용산서 강력1팀 관계자는 “얼굴과 목 주위에 흉기로 여러 차례 찔린 흔적도 발견됐다”며 “보관 상태가 좋아 12년된 사체라고 하기에는 부패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고, 상흔도 명확히 남아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렸을 때라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며 “1999년 6월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 아버지가 시신이 들어있는 상자를 테이프로 밀봉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이 씨의 아버지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소재 파악 이틀 만인 2월 15일 부천시 역곡동의 은신처에서 검거됐다. 그는 아내의 시신이 딸에게 발견된 이후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자신을 숨겨준 지인에게 “정리를 하고 자수하려 했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된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모든 범행을 자백하고 “숨진 부인과 딸에게 미안해 시신을 가지고 있었다”며 “영원히 시신을 보관하고 싶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간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살던 이 씨는 용산구 후암동의 한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사를 하루 앞둔 6월 19일 밤 11시께 “새 방을 구했으니 그쪽으로 가자”는 그의 말에 아내 윤 씨는 “더 좁은 집으로 왜 이사를 가냐”며 완강히 거부했다. 심한 말다툼이 이어졌고 참다못한 이 씨는 부엌에서 과도를 가져와 우발적으로 윤 씨의 목을 찔렀다. 목에서 피가 솟구치자 당황한 이 씨는 어쩔 줄을 몰랐다. 윤 씨의 목 동맥이 손상돼 피가 흥건히 흘러나왔다. 그는 부인의 시신을 흰색 이불로 둘둘 만 뒤, 가로·세로 50cm, 높이 1m 크기의 종이 상자에 담고 그 위로 흰색 비닐과 은박 종이로 닥치는 대로 밀봉했다. 다음날 이사 당일 아침이 밝자 이 씨는 부인의 시신이 들어있는 박스를 이삿짐인 양 후암동의 새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김 아무개 씨(45) 등 이웃들에게는 “아내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둘러댔다.
그로부터 3년 후 집을 나간 이 씨는 한 달에 한두 차례만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 등 단기 일자리로 돈벌이를 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이에 당시 8세였던 그의 딸은 2~3평 남짓한 이곳에서 방 한편에 고이 보관된 어머니의 사체와 함께 12년간이나 살아야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이 씨의 이웃들은 매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씨 부녀와 같은 건물에 사는 강 아무개 씨(여·54)는 기자에게 “그럴 줄 몰랐다. 이 씨는 가끔 보았을 뿐이지만 딸에게도 잘하는 것 같았다”며 “말을 걸면 쑥쓰러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사건이 공론화되자 일각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된 의문점들이 너무 많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윤 씨에 대한 실종신고나 사망신고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 씨의 친족들이 윤 씨의 실종에 의문을 갖지 않은 점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경제적인 문제로 10년이 넘게 연락을 끊고 살아 온 것으로 보인다”며 “친족이 없는 줄 알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친족이 있음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피해자 친족들이 현재 장례를 준비하고 있다”며 “12년간 윤 씨를 찾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친족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씨의 친족인 김 아무개 씨(54)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할 말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더불어 주민등록법 시행상의 구멍이 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피해자인 윤 씨가 12년 동안 행방불명됐음에도 가출신고나 실종신고 없이 주민등록상의 실존자로 버젓이 등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통계청에서는 5년마다 온·오프 라인을 통해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각 동 주민센터에서도 통장의 주도하에 전입자의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후암동 동사무소 관계자는 “통계청 인구 조사와 동사무소 측의 인구 조사는 대리인이 응해도 되기 때문에 세대주가 대신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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